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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실현이 조롱거리인 세상 이소연 2022-09-06 13:48:32

[The Psychology Times=이소연 ]


브랜딩을 진행하면서,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론을 차용해 스토리를 쌓아 올렸다. 매슬로우의 이론이 아주 개론적인 수준의 심리학이어서 포인트만 차용해왔었는데, 이번에 심리학도 신입생의 마음으로 다시 자세한 내용을 접하고는 시무룩해져 버렸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매슬로우는 먹고 자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차츰 상위의 욕구를 추구한다고 보았고, 최상위의 욕구가 자아실현/자기 초월이라고 보았다.


워낙 잘 알려진 이론이라 살짝 그림만 제시한다, 이미지 출처는 <마이어스의 심리학 개론>

얼마 전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 한국에 귀화한 한 프랑스인이 출연해 삶의 최종 목표를 자아실현이라고 했다가 웃음거리가 되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연예인들은 결국 청약 당첨, 내 집 마련이 최종 목표라고 반강제로 정리해주고 박수를 치며 끝냈다. 아무리 예능이지만, 수준 높은 삶의 영위하고자 하는 의지가 조롱거리가 되는 상황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국민들의 수준을 다 같이 아래로 끌어내리는 행동이다.


욕구 위계론에서 집을 통해 안전을 추구하는 단계는 배고픔의 바로 다음 단계다. 동물에 가까운 삶이다. 우리는 동물처럼 살아야 비웃음 당하지 않는 걸까. 지도층들은 당연히 국민들이 우민화되길 바란다. (그리고 정치권과 연예계는 아시다시피 한통속이다.) 그래야 통제하기 쉬워질 테니. 양 떼를 몰듯 우우하고 감정적으로 몰면 냄비근성으로 흥분하며 정권을 교체해준다. 그리고 다음에는 반대로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것이 지도층들이 국민을 조롱하며 피를 빨아먹는 방식이다.


이 무한 루프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개인은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그래, 그렇게 믿었을 뿐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추상적인 오차원의 자아실현을 구체화한 정의가 이론적으로 이미 존재했었고, 거기까지 가기엔 올려다보다 목이 꺾일 지경이었다.


매슬로우는 에이브러햄 링컨과 같은 사람을 연구했다. 자아실현을 이룬, 생산적인 삶을 산 사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자기실현을 구체화하고 정의 내렸다.


자기실현을 이룬 이들은 자각적이고 자기 수용적이며, 개방적이고 자발적이며, 자애롭고 남을 보살피며, 다른 사람의 견해로 인해서 위축되지 않았다(Kaufman, 2018). 자기 감이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관심사가 자기중심적이기보다는 과제 중심적이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불확실성을 포용하고 스스로 새로운 경험을 찾아 나섰다(Compton, 2018; Kashdan, 2009).

일단 특정 과제에 에너지를 집중하면, 그것을 삶의 의무 또는 소명으로 간주한다(Hall & Chandler, 2005). 많은 피상적 관계보다는 소수의 심층적 관계를 즐겼다. 일상의 의식을 뛰어넘는 영적이거나 개인적인 정상 경험으로 감동을 받았다.


- <마이어스의 심리학 개론> (데이비드 G. 마이어. 네이선 드원 지음, 신현정.김비아 옮김) 중에서



‘자기감의 안정’이라니,

난 아직 자기감이 안정돼있지 않다. 사업이든 공부든 목표는 쫓아다니지만 아직도 불안정한 감정에 휘둘린다.


‘관심사가 자기중심적이 아니’란다. 난 지금도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니 뭐, 그렇다고 타인의 임상사례를 가지고 오기엔 여러 가지로 문제가 생기니까,라고 툴툴거려본다.


그래서, 자기감이 안정된다는 게 대체 뭘까?


매슬로우에 따르면 이러한 특성이 성숙한 인물의 자질인데, 삶에 대해서 많은 것을 터득함으로써 다정다감하며, 부모를 향한 복합적 감정을 극복하였고,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였으며, 평판에 연연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도덕성을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용기를 획득한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자질이다.


- <마이어스의 심리학 개론> (데이비드 G. 마이어.네이선 드월 지음, 신현정.김비아 옮김) 중에서


‘다정다감’에서 이미 끝났다. 난 오늘 아기에게 두 번이나 꽥꽥거렸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황을 이해해도 체력이 빠지면 목소리부터 높아진다. 상황을 통제할만한 힘이 없으니까. 어쨌든 결론은 성숙하긴 글러먹었다. 


평소에는 ‘평판에 연연하지 않는’ 것 같긴 한데 이 글 쓰면서 이미 눈치 보고 있다. ‘공개적으로 도덕성을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면 하늘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하는데 뭐 그것도 쥐쥐다. 의견이 맞지 않는 가족과 투닥거리며, 이딴 멍청한 지능을 준 하늘에 툴툴거리며 힘들다고 곡소리인데 말 다했다.


자아실현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을까 공부하다 나는 한참 모자란 나만 또 들여다봤다. 아니 뭐, 링컨이니까, 링컨같이 엄청난 사람과 어떻게 비교할 수가 있겠어하면서 또 삐죽거린다. 그래서, 모자란 나의 자기감의 안정을 위한 공부를 한다. 그리고 이를 일반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좋은 건 나만 하면 안 되니까.




좀 딥한 얘기지만 혼자 정리하는 차원에서 언급하자면,


자아실현의 일반화에 대한 고민을 하려다가 발견한 것이 이 매슬로우의 욕구위계론을 발전시킨 새로운 이론, Spiral Dynamics (나선역학)이다. 아직까지 국내에 번역된 도서조차 없다. 유튜브에서 민병은 대표님이 설명하시는 강의가 있기는 하다. (한국말이 약간 서투르셔서 성격 급한 나는 듣기가 좀 어렵긴 했다.)



이 이론은 매슬로우의 욕구위계론처럼 차츰 성장하는 위계적 단계를 8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에 색깔을 부여했다.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집단의식에 대한 언급이다.


여기서 물질중심주의인 한국 사회에서 자아실현을 언급하면 웃기는 일이 되는 이유가 설명된다. 한국의 집단의식 단계가 5단계인 주황 정도까지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각 단계에 머무른 사람들은 자기만의 세계관이 옳고 가장 최선의 관점이라고 믿는다. 만약 외부의 위협을 받으면 맹렬히 공격한다.


5단계인 주황은 물질적 풍요, 과학, 성취, 경쟁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쟁사회이며 집단의식보다는 개인의식으로 표현된다. 그들은 6단계인 녹색의 공동체 지향, 내적 평온, 공감, 상대주의적 태도를 기반으로 한 평등주의와 인도주의를 무가치하고 나약하게 여긴다.


각 단계를 충분히 경험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 의식의 진화다. 우리는 하루빨리 6단계로 넘어가야만 한다.


물질만능주의로 지구땅은 이미 멸망 직전이다. 이상기후와, 전염병과, 자연재해가 몰려오고 경제는 요동친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으면 빙하는 녹고 바닷물은 차오르고 기온은 올라가고, 땅이 없어 더 이상 먹을 곡식을 농사지을 수도 없는 시대가 온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과학잡지 한 권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 현실이다.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충분한 증거를 제공해도 보지 않는다. 물질적 풍요에 익숙한 이들은 이것이 영원하리라 믿는다. 눈앞에 코로나가 닥치고 물가가 폭등해도 애써 외면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속의 환상만 본다.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기를 바란다. 나는 현재에 불만을 가지고 이 세상이 뒤집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류의 사람이 아니다. (그러기엔 잘 벌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대단한 성취욕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남들 앞에서 한마디만 하려 해도 얼굴이 시뻘게진다.) 지성인인 척 위세 부리고 싶지도 않다. (그러기엔 가방끈도 짧고 공부도 덜했다.)


단지,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어서 한다. 아무리 도망쳐도 자꾸 하도록 만드는, 내 운명이기에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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