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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양원준 ]



  그해에는 유난히 초파리가 기승을 부렸다. 고등학교 시절, 여름이면 교실에 있는 쓰레기통 주위에 초파리 떼가 날아다녀 학생들이 기겁하곤 했다. 3년 내내 분리수거와 쓰레기 배출을 담당한 나는 쓰레기통 근처에 갈 때마다 귀에 울리는 ‘윙-’ 소리에 언제부턴가 익숙해져 버렸지만, 3학년 여름 학생들의 원성이 폭발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1학년 때 우연히 분리수거 당번을 담당하게 된 뒤 굳이 변경하고 싶지 않아 계속 유지했을 뿐이었던 역할에 대해 나름의 책임감이 생기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학생들은 쓰레기통을 관리하던 나에게 사태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고, 해결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사오정처럼 벌레를 빨아들이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한참 동안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통을 바꿔도 보고, 뚜껑을 확실하게 닫아달라고 당부도 해보았는데도 초파리 사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고민 끝에, 2학년 영어 수업 시간에 배운 뒤 빠져들었던 행동경제학에서 사태에 대한 대응 방안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인간을 전제로 한 기존의 경제학과 달리,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비합리성을 인정하고 실제 상황에서 인간의 행동과 선택을 연구한다.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의 「넛지」를 통해 대중화된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심리를 기반으로 경제적 선택을 분석하는, 경제학과 심리학의 하이브리드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이 비현실적인 인간을 내세우던 경제학에 현실성을 더해준 것이다. 나는 팔꿈치로 슬쩍 찔러 행동을 유도하는 ‘넛지’를 활용함으로써 반 학생들의 행동을 변화시켜 초파리 문제를 해결할 계획을 세웠다.


  우선 문제의 원인부터 정리해보았다. 쓰레기통에 초파리가 들끓는 것은 학생들이 음식물이 담겨 있던 페트병이나 플라스틱 용기를 제대로 씻지 않고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를 행동경제학적으로 표현해보면, 용기를 씻으러 화장실에 가는 귀찮음(단기 비용)보다 초파리로 인한 고통(장기 비용)이 더 큰데도 학생들은 순간의 귀찮음을 모면하기 위해 비이성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행동을 변화시킬 방법을 모색했다. 사회적 영향력은 행동경제학계에서 가장 다방면으로 연구된 주제 중 하나로, 다양한 세부 이론이 존재한다. 집단 동조 혹은 양떼 효과는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 하는 현상으로, 다수로부터 배제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거울 뉴런은 자코모 리촐라티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신경세포의 일종인데,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할 때 활성화된다고 한다. 이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게 되는 데에도 영향을 주는데, 육체적 매력이 있는 의복 모델들을 보고 충동적인 구매를 하게 되는 것은 거울 뉴런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저들처럼 되고 싶다’라는 욕구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회적 영향력을 실제로 활용하기 위해, 교실 곳곳에 페트병과 플라스틱 용기를 세척하는 사람의 사진을 부착했다. 학생들은 쓰레기를 버릴 때가 아니더라도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페트병을 세척해야 한다는 ‘넛지’를 당한 것이다. 사진 부착 이후 실제로 쓰레기를 그냥 버리려다가 화장실로 가져가 씻어오는 학생들이 관찰되었고, 얼마 안 가 초파리는 거의 사라졌다.



  내가 고안한 초파리 소탕 작전이 성공을 거두자 처음으로 분리수거 당번이라는 역할에 자부심이 생겼다. 절로 신이 난 나머지, 쓰레기와 관련된 또 다른 문제들에도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그때 발견한 것이 쓰레기통 주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들이었다. 이번에 나의 무기가 된 행동경제학 이론은 '감시의 눈’ 효과였다. '감시의 눈’ 효과는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더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무인 커피 판매대에 눈 사진을 부착하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비용을 제대로 내는 사람이 몇 배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같은 원리로 쓰레기통에 눈 사진을 부착하니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도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학생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내가 만들어낸 작은 변화를 계기로 학생들의 행동이 변해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은 재밌고도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사회적 영향력을 활용한 공익광고 캠페인 사례는 매우 많다. 미네소타주에서 진행된 조세법 이행 캠페인은 대다수 주민이 세법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동조 심리를 자극, 납세를 증대시켰다. 몬태나주에서는 청년 음주가 만연하는 인식이 오히려 청년 음주량을 늘린다는 사실을 간파했고, 청년 음주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통계 자료를 통해 인식을 바꿈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인간은 쉽게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만큼 또 작은 개입으로도 쉽게 행동을 바꾼다. 평소 우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기업들이 소비자의 심리를 공략한 광고로 이윤을 얻는다는 사실을 접한다. 누군가가 나의 머릿속을 들여다본다는, 이에 더해 나의 심리를 이용해 나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썩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넛지」 저자들의 가르침과 분리수거 당번으로서의 경험을 통해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행동경제학을 활용해 하루에도 여러 번 비이성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인간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면,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가 평소 자기 자신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스스로도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참고자료>

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안진환 역, (2009), 「넛지」, 리더스북.

마틴 린드스트롬, 이상근 역, (2010), 「쇼핑학」, 세종서적.

하워드 댄포드, 김윤경 역, (2011), 「불합리한 지구인」, 비즈니스북스.

김경년, (2021), 「거울뉴런(mirror neurons)의 존재, 상징적 상호작용론과의 관계 및 교육학적 의미」, 한국교육사회학회, 2021.2 (2021): 99-121.

Oda Ryo‧Kato Yuta‧Hiraishi Kai, (2015), "The Watching-Eye Effect on Prosocial Lying", Evolutionary Psychology. 13(3):1474-7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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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9-24 09:36:41
  • 수정 2021-09-24 13: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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