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양원준 ]




여름의 불쾌함


  어려서부터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었다.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4월부터 9월까지 내내 여름인 듯한 한국 날씨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초등학교 시절 언젠가부터 다한증을 앓기 시작했다. 다한증 환자에게 한국의 여름은 지옥과도 같았다. 집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해야 했고, 밖에 나가는 날이면 티셔츠가 흠뻑 젖어 돌아오곤 했다. 여름은 고통과 짜증의 계절이었다. 2016년의 어느 여름밤도 마찬가지였다. 한 노래가 그 생각을 송두리째 바꾸기 전까지는.



한 여름밤에 흘러나온 노래


  2016년 7월,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특목고 진학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뒤늦게 특목고 도전을 결정하게 돼 급하게 입시 정보를 알아보는 중이었는데, 생각보다 준비할 게 많아 막막한 상황이었다. 찌는 듯한 여름 더위는 문제를 더욱 악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숨 막히는 열대야와 도저히 쓰이지 않는 자기소개서로 머리끝까지 차오른 짜증을 식히려 이어폰을 끼고 밖으로 나갔다. 오히려 밖의 습한 밤공기에 더 짜증이나 안으로 돌아가려던 순간, 어떤 노래가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왔다. 


  1.   나의 여름 가장 푸르던, 그 밤”. 세상의 색깔이 달라진 것만 같았다. 뜨거운 더위에 뿌옇게까지 보였던 풍경이 물을 끼얹은 듯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수의 목소리도, 멜로디도 듣자마자 온몸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반가운 산들바람이 몸을 어루만지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짜증나고 답답하기만 했던 밤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당시의 기온은 여느 한여름 밤처럼 30도를 훌쩍 넘었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느낀 시원함은 순전히 마음속 느낌이었을 터. 상쾌함도 감정이라면, 노래를 듣고 그렇게 강한 감정에 휩싸인 순간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노래가 상기시키는 감정


  플레이리스트에 담은 기억이 없는, 우연히 듣게 된 그 노래. 여름만 되면 짜증만 남아 회색으로 메마르던 감정을 다양한 색채로 차오르게 한 노래. 아이유의 <푸르던>이라는 노래였다. 어떤 음악을 들은 순간의 정서는 기억 속에 함께 저장된다. 〈푸르던〉을 들은 그날 밤의 공기와 습도, 바람과 함께 느꼈던 감정이 지금도 머릿속에 분명하게 떠오른다. 이 곡 외에도 몸과 마음이 힘들던 때 들은 음악이나, 여러모로 기분이 좋았던 때 들은 음악을 후에 다시 들으면 그 순간에 느낀 감정이 생각난다. 모두 마음이 편해지고 싶을 때나 펑펑 울고 싶을 때 듣는 음악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암묵적 기억에 저장된 감정


  음악을 들으면 과거의 감정이 느껴지는 이유는 암묵적 기억 때문이다. 암묵적 기억은 우리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기억이다. 의식적으로 기억되는 명시적 기억과는 달리 암묵적 기억은 더 오래 지속되고, 기억 너머에 잠들어 있다가 특정한 계기로 인해 표면으로 올라온다. 이는 음악을 통해 형성될 수 있는데, 음악을 들으면 그 순간 느끼는 기억과 감정이 저장되기도 한다. 우리가 듣는 음악은 대뇌의 주름에 기록된다. 음악이 특정 화학물질을 자극해 정서를 느끼게 하면 이것이 뇌에 하나의 패턴으로 남게 된다. 따라서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음악과 감정이 서로 연결되어 음악을 들으면 저장된 기억의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다.



여름의 상쾌함


  여전히 내게 여름은 덥고 습한 계절이다. 5월 즈음 빨갛고 노랗던 꽃이 지고 나무가 초록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더위를 기억하는 몸이 진저리를 친다. 하지만 이제 걱정하지 않는다. <푸르던>이 내 정서적 에어컨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불쾌한 열대야의 공기에 기분이 다운되면 곧장 이어폰을 끼고 <푸르던>을 재생한다. 그러면 “나의 여름 가장 푸르던, 그 밤”의 기억과 함께 그 순간의 상쾌하고 시원한 감정이 느껴진다. 여러분도 우울한 일이 있다면 과거 행복했던 순간에 들은 음악을 재생해보자. 마법 같은 기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성진규, 「왜 음악을 들으면 옛 추억에 젖어들까?」, 『하이닥』, 2021.9.17., https://www.hidoc.co.kr/healthstory/news/C0000634833

이종철, “음악이 기억을 불러오는 이유”, HMG Journal, 2014.8.20., https://news.hmgjournal.com/TALK/Story/hyundai-kia-music-memory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2436
  • 기사등록 2021-11-29 14:20:44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