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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경미 ]


아이들을 이만큼 키워 놓고 보니 아이를 키우는데 너무 많은 것들이 필요치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키울 때는 알아야 하는 것도 많고 구비해 놓아야 할 것도 많다고 느껴졌었다. 그러나 이것은 꼭 있어야 돼, 이 장난감이 그렇게 좋다더라로 집을 채우기엔 아이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자라 가고 그 시간은 금방 지나가 버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해 간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금방 지나갈지 모르고 많은 말들에 귀를 기울이고 많은 것들을 알아보느라 바빴다. 많은 정보들은 내 마음을 춤추게 했고 들은 것들을 따지고 묻고 비교하고 고르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했다. 좋다는 것을 구비하느라 정작 그것을 활용하고 아이랑 시간을 보내는 것에 소홀할 때가 생겼다. 덜 중요한 것을 하느라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일들이 생겼으니 주객이 바뀐 것이다.


아이에겐 작은 것 하나라도 엄마와 함께 몸을 비비며 가지고 논 것은 교감, 추억이라는 선물을 주어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물건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특별한 장난감이 쌓여 있어도 그 안에 담김 스토리가 없으면 아이에게도 몇 번 흥미를 가지고 노는 것에서 그치게 된다. 얼마나 더 좋고 많은 것들을 제공해 주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돌아보니 가장 좋은 놀잇감은 엄마의 재잘거림과 이야기 세상이며 아빠의 몸 놀이터였다.      


첫아이를 키울 때는 아이랑 책이랑 함께 정말 많이도 놀았다. 얼마 안 되는 책으로 풍성한 책 세상을 만들어 갔다. 둘째도 있어 같이 볼 동생도 생기고 큰 아이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책을 좋아하는 큰아이를 위한 과감한 투자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잠들면 아이의 연령에 맞는 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어떤 책들이 좋은지 출판사부터 책 내용까지 폭풍 검색을 하느라 새벽에 잠드는 일이 많아졌다. 어느새 나는 아이와 책으로 노는 정성보다는 여러 평가에 귀를 기울이며 좋은 책들을 찾느라 바빴다. 그러다 책을 저렴하게 중고로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책만큼은 지출을 하자고 마음먹었던 내게는 신세계 같았다. 어느덧 중고나라가 중독 나라가 되어 갔다. 아이에게 좋은 책을 만나게 해주고 싶어서 시작된 것이 좋은 책을 찾는 나만의 검색 놀이가 되어갔던 것이다.


셋째가 태어났을 때는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양의 책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엄마가 예전의 엄마가 아니었다. 첫아이를 키울 때는 아이가 들고 오는 책이 반가운 책이었는데 아이가 셋이 되고 보니 셋째가 들고 오는 책은 부담스러운 책이 되었다. 엄마도 점점 꾀가 나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보니 세, 네 살 정도에 글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네 살에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한 큰아이가 어린이집 친구의 이름도 말하고 동화책 속에 나오는 글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는 아이의 관심과 흥미를 그대로 쫒아 가 주었다. 아이가 말하는 친구 이름을 적어 주기도 하고 궁금해하는 글자들도 짚어서 읽어주며 큰아이는 수월하게 네 살쯤 한글을 떼었다. 둘째 아이도 비슷했다.


셋째 아이도 비슷한 시기 그렇게 글자에 호기심을 나타내었는데 엄마의 반응이 예전 같지가 않았다. 다둥이 육아를 하는 엄마는 항상 분주해 아이가 물어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게 될 때가 많아졌다. 이게 무슨 글자인지 물어오는 딸에게 "언니에게 물어봐"하며 미루기도 일수였다. 애를 셋쯤 키우면서 주부 9단이 아닌 불량엄마 9단이 되어 갔다. 아이가 흥미를 보이던 시기에 무심하게 지나가다 보니 셋째는 한글을 떼는 것도, 책을 좋아하는 것도 언니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용돈으로 꼬시며 책을 읽자고 해도 쿨하게 “그 용돈 안 받을게요.”하는 초등학교 1학년이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정말 육아는 자원으로 하는 것이 아닌 엄마의 정성으로 하는 것임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첫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은 신혼살림에 책도, 아이의 놀꺼리도 많지 않았지만 엄마의 정성은 너무나도 많은 책과 놀이를 복제할 수 있었다. 많은 것은 필요 없다는 생각과 엄마가 가장 좋은 놀이세상이며 가장 좋은 교사가 되어준다는 소신은 아이와 순수하게 눈을 맞추기에 충분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는지 그 해법에 갈증을 느끼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저기 사람을 찾진 않았지만 육아서들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때로는 육아서가 역효과가 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론적인 육아서를 읽고 나면 그곳에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들과 나의 아이들의 모습에서 격차를 느꼈다. 그것은 따질 것도 없이 엄마의 육아 격차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이렇게 해주어야 아이에게 이런 결과가 나는 구나하며 마음에 조바심이 찾아왔다. 그럼 어제와 똑같은 아이들인데 아이들이 마냥 뒤처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손 놓고 있다 낭패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며 내 마음이 요동쳤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갑자기 볶기 시작한다. 안 틀어주던 영어 시디도 틀어주고 자면서 들으면 좋다고 자는 머리맡에 놓아도 보며 안 하던 행동을 해본다. 그런데 지속성을 가지기가 힘들다. 내 마음에서 어떠한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리번두리번 하다 좋다더라로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뚝심 있게 해 나가기가 힘든 것이다. 엄마의 불안함과 조바심의 소용돌이에 아이들만 어지럽다. 


누군가에게 물어보아서 얻는 솔루션이 과연 나에게 좋은 정답이 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솔루션을 준다고 해도 그것을 실행해야 하는 것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해답을 준다 하여도 내가 할 수 없으면 그것은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소신이 없이 행해지는 행동은 지속성을 가지기 어렵다. 소신을 가지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내 아이를 바라보며 해나갈 때 그곳에서 답은 점점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자녀관과 교육관을 점검하는 것일 것이다. 내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지 않으면 쓸데없는 정보에 현옥 되어 많은 시행착오들을 겪을 수밖에 없다.  



소신 있는 엄마는 자신의 내면과 아이에게 귀를 기울이며 자기와 자녀를 향한 이해를 키워간다.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하는 방법으로 글쓰기만 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종이를 펴놓고 나는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로 성장하기를 원하는지 써보라. 추구하는 가치들을 쓰고 그러한 아이로 자라게 하기 위해 필요한 세부사항들을 기록해 가다 보면 좀 더 생각들이 정리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소신들이 명확해진다. 이렇게 정리된 글을 그때그때 꺼내 보면서 일관성 있는 가치들을 추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게 되고 나만의 방법을 가지고 내 아이와 눈을 맞추는 육아에 힘을 얻을 것이다.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 자라길 원하는지가 아니라 어떠한 사람으로 자라나길 원하는지 중요한 소신들을 정리해 보자. 밖을 바라보던 눈을 돌려 내 안을, 내 아이를 바라보자.      


‘많은 것들이 우리를 기다려 준다. 하지만 아이들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의 뼈는 단단해지고 있고, 피는 만들어지고 있으며 감각은 발달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우리는 내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의 이름은 오늘이다’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의 명언이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여기저기 바라보느라 우리 아이가 크는 모습과 중요한 가치들을 놓칠 수 없다. 이것저것 방법을 찾고 여기저기 기웃기웃하는 사이, 아이들은 어느새 자라 있을 것이다. 바로 오늘이다. 바로 오늘 내 아이와 함께 눈을 맞추며 나의 소신을 담아 육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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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5-13 06: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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