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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경미 ]


각각 다른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기른다. 가정을 이루며 살아갈 때 부부의 다른 부분은 서로의 보완이 되어 준다. 비슷한 사람이 만나 부부가 되면 일이 생겼을 때 옆집에 가서 물어본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부부가 다르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그러나 그 다른 부분 때문에 서로 불편하고 다투는 일이 생기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우리 부부에게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매번 이견에 봉착하는 부분이 있었다. 난 아이들이 흙을 밟으며 마음껏 뛰어놀길 바랬고, 바다며 산이며 자연을 만나는 기회를 많이 주며 키우기를 원했다. 하지만 남편의 직장은 늘 치열하고 바빠 남편도 체력적으로 지칠 때가 많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어려서 힘들 수도 있고 다칠 수 있다고 아직은 아니라고 해 매번 여행을 얘기할 때마다 트러블을 생겼다. 


바닷가 여행이라도 가고 싶어 얘기하면 남편은 “너무 장거리라 아이들이 차에서 긴 시간 힘들어. 아직 아이들이 어린데 바닷가는 위험하고, 어려서 기억도 못하는데 좀 크면 가자”라고 말했고 난 그때마다 “아이들은 정서로 기억해요”라고 말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기억을 뚜렷하게 하지 못한다고 기억을 못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정서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장성한 성인 남자가 있었다. 친구들은 피로감을 느낄 때면 뜨거운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들어가 쉰다고들 하는데 이 분은 그런 친구들을 공감할 수가 없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욕조에 들어가서 목욕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욕조에 몸을 담근 적이 없는 그분은 욕조 안이 이유도 없이 싫고 상상만 해도 뭔가 식은땀이 나는 듯 불편했다. 욕조에 대한 거부감의 이유를 알고 싶었고 해결하고 싶었다.


남자는 용기를 내어 치료실을 찾았고 치료과정 중 욕조에 들어가는 시도를 통해 엄마에게 외면당하는 장면을 온몸으로 기억하게 된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과정에서 몸서리치며 태아 때 엄마가 자신을 떼어내려고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던 일을 기억해 낸다. 기억해 냈다고 말하기에는 태아 때 일이기에 설명이 어려웠다. 그래서 그 일 이후 사실 진위에 대한 검증이 필요했다. 치료과정 중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얘기하며 진실을 말해달라고 했을 때 엄마는 모든 사실을 인정했고 진심 어린 눈물로 사과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때 그런 선택을 했었어. 차마 너에게 말할 수가 없었어. 아들아 미안해. 고통 속에서 견뎌내고 살아주어 고마워. 그때 너를 잃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니. 엄마가 미안해.” 숨겼던 진실이 밝혀졌고 엄마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은 이후 아들에게 치유가 일어나고 이 증상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처럼 아이들의 정서는 놀랍게도 태아 때부터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명이 시작되는 태아 시기부터 시작해 아이들은 모든 것을 정서로 기억하고 있다.



아이들이 어리기에 이런 것은 기억도 못하겠지 생각할 수 있으나 모든 상황에 각인된 정서들은 아이들 안에 있고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늘 남편의 말에 “여보 어디를 다녀왔는지 아이들이 어려 세세히 기억을 못 하겠지만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자연에서 뛰어 논 행복감을 온몸으로 기억해 정서로 담고 있어. 그래서 그 정서를 기반으로 성장해요.”라고 말했었다.       



내게도 그 말을 피부로 느낀 적이 있었다. 내가 막 셋째를 낳고 셋째가 100일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나는 그때 어머니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참여하게 되었다. 셋째 임신 기간에 남편이 먼저 ‘아버지 학교’ 과정에 참여했었고 마침 가까운 곳에서 ‘어머니 학교’가 열려 이번엔 내가 참여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육아에 더 바빠질 것이고 세 아이 엄마로 막중한 책임을 느낀 나는 기회가 있을 때 하면 좋겠다 싶어, 남편의 지지와 배례 속에 모유를 짜 놓고 주 1회, 10주 과정의 어머니 학교를 참여했었다. 어머니 학교 프로그램 중 아빠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다. 아빠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이 누구에게는 익숙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내게는 너무나 생경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아빠가 출근길에 뺑소니 차량에 치어 돌아가셨다. 퇴근할 시간이 지나고 한밤이 지나도 아빠가 오시지 앉아 엄마가 발을 동동 거리며 아빠 전화를 기다리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리고 늦은 시간 경찰서로부터 전화를 받고 급하게 뛰어가셨고 그 후 우리는 장례식장에서 모였다. 너무 어릴 때라 아빠와의 기억들을 콜콜하게 가지고 있지 않다. 단편 단편의 기억들을 엄마나 오빠, 언니들에게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들에 퍼즐을 맞추어 기억하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아빠는 너무나 자상한 분이셨다고 한다. 엄마는 ‘너희 아빠는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자상한 아빠였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자상한 아빠도 드물 거야.’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큰언니는 아빠는 무조건 소리를 높이거나 화를 내고 때리신 적이 없으시고 늘 하루, 날을 정해 모두 불러 놓고 하나하나 말해주며 훈계를 하셨다고 했다. 애를 키워보니 그렇게 인격적으로 훈계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시골에 살던 어린 시절에는 동물을 좋아하는 오빠를 위해서 같이 산에가 산새를 잡아주시기도 하고, 자녀들이 숙제를 할 때면 함께 옆에서 책을 읽으며 공부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다고 했다. 그리고 늘 연필도 깎아 놓으시고 가방도 같이 챙겨주시는 살뜰한 아빠였다고 했다. 근면 성실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웠고 주변에 가난한 친지들을 거두고 돌아보았던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모두 아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엄마는 막내인 나를 너무 예뻐하셔서 바닥에 내려놓은 적이 없다고, 항상 아빠 무릎 위에 앉혀 놓으셨다고 하셨다. 또 무슨 일이 있으면 늘 내 편을 들어주셨다고 하셨다. 후에 엄마에게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보니 “아빠! 오빠가 내 것 뺏어갔어.”라고 울먹이면 그때마다 자상하게 웃으시며 “그랬어? 이리 와”하며 포근히 안아주시고 오빠를 혼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늘 아빠가 출근하시려고 문을 열고 나가시면 나는 엄마 몰래 창가로 가 창문으로 출근하는 아빠를 부르고 손을 내밀었다. “아빠 100원만.” 그러면 아빠는 빙그레 웃으시며 “아빠 돈 없다. 이따 봐.”하며 손을 흔들며 출근을 하셨다. 나는 매일 아침 창문으로 손을 내밀었고 아빠도 늘 처음 있는 일처럼 웃으시며 같은 대답을 하고 출근을 하셨다. 후에 아빠가 엄청 검소하신 분이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래서 그러셨구나 생각할 정도로 나는 아빠를 온전히 기억하는 부분이 적었다. 


처음 아빠를 부르며 편지를 써나가다 보니 편지가 술술 써내려 져 갔다. 그리고 어느덧 아빠를 부르며 편지를 쓰고 있는데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다. 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되려 슬플 줄 알았는데 환하게 웃으며 해맑은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 가득 무언가 따뜻하고 평안한 것이 퍼졌다. 두 장 정도의 편지를 거침없이 쓰고 마무리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그때가 되니 마음이 애잖해졌다. 펜을 놓으며 행복감과 편안함에 젖어 마냥 사랑받던 여섯 살 아이에서 어른으로 돌아오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 안에 아빠에 대한 기억을 정서로 다 가지고 있었구나.’ 다시 한번 ‘아이들은 정서로 모든 것을 기억해요.’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정서로 모든 것을 기억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여행을 간다 해도 엄마 아빠는 쇼핑에 바쁘고 아이들은 영상을 보는 시간이 된다면 어떨까? 아이의 기억 속에서 그곳은 특별한 곳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또 모처럼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계획했는데 그 날 여행지로 가는 차속에서 엄마 아빠의 고성이 오가고 여행 내내 엄마 아빠의 대립각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면 오롯이 불안감을 느껴야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런 각도로 본다면 크게 아이들과 특별한 시간을 계획하지 못한다 해도 아이들을 위해 펴놓은 거실 안 텐트에서도 아이들은 특별한 기억을 저장할 수도 있고 엄마, 아빠와 거니는 집 앞 산책길에서도 오래 안고 갈 안정감과 평온함의 정서를 선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다 기억하겠어?’가 아니라 ‘정서로 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다시 한번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포근한 정서를 선물해 주자.        


딸들아! 수목원의 푸른 하늘과 초록나무들과 너희들의 웃음소리를 정서로 다 간직하고 있지?이렇게 건강하고 맑게 자라주어 고마워! 감사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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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5-20 12: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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