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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결핍으로 내 아이의 결핍을 짐작하기 - 상담심리사의 미니 육아 강의 2
  • 기사등록 2022-05-24 08: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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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선안남 ]


• 추웠던 엄마


며칠 전 있었던 일이에요.


갑자기 한기를 느낀 저는 반팔을 입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오자 무의식적으로 옷장에서 제 옷을 꺼내고 아이 옷을 꺼냈습니다. 그러면서 무심결에, 순식간에 아이에게 옷을 입혀주었어요. 가만히 있는 아이에게, 춥냐고 묻지도 않고 옷을 입혀준 것이지요.


제가 춥다는 이유로요.



다시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에요.

내가 추운데,

내가 춥다고 아이도 추운 것은 아닌데,

아이가 옷을 더 달라고 요구한 것도 아닌데

아이에게 옷을 더 입게 하다니요.

그런데 우리는 생각보다 그런 일을 많이 해요.

엄마 마음으로 아이의 마음을 유추해요.

내 마음으로 타인의 마음 읽기를 시도해요

하루에도 수많은 오독과 엇갈림이 이루어집니다.



그럴 때 아이는 몇 가지 반응을 할 수 있겠지요.


'엄마, 나 안 추워.'

' 엄마, 왜 그래?'

'이거 꼭 입어야 해?'


이런 반응을 할 수 있다면

엄마의 행동은 배려로 해석될 여지도 생겨요.


하지만

아이가 (필요 없는데도) 아무 말 없이 옷을 입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슬금슬금 엄마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도망간다면,


엄마는 이 상호작용에 대해서,

이런 상호작용이 반복되는

친밀한 관계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이 오독과 엇갈림은

엄마와 아이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우리에게 중요한 모든 관계 속 상호작용에 적용이 되는 면이 있어요

모든 배려와 오지랖 사이, 그 어디쯤에서 우리는 이런 타인의 마음 읽기를 시도하지요.

'너를 위해서'라고 이름 붙이는 모든 것에

정말로 너를 위해서가 합당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지요)



• 배가 고팠던 엄마


여기, 자라면서 애달프게, 절절하게 배가 고팠던 엄마가 있어요. 이 엄마는 자라면서 배고프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지배당하는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지요. 배고픔이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욕구이기에 엄마의 바람은 처절하고 절절했어요.


엄마는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내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너에게만은 배고픈 삶을 주지 않을 거야.

'너는 밥벌이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내가 최선을 다할 거야.'


엄마는 자기 밥은 부실하게 먹어가며 그 최선을 향합니다. 세상의 모든 단일 목표에는 숭고함이 있지요. 하지만 그 속이는 옆을 잘 살피지 못하는 치명성도 있어요. 앞만 보며 달리며 하나의 목표의식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기도 하지요.

이런 엄마 밑에서 자라면서 아이는 엄마가 어렵게 채워준 것들을 거절하기 힘들어합니다. 거절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자라게 됩니다.


'엄마, 사실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아'라고 말하지 못하는 일이 관계 속에서 쌓여갑니다. 또 그렇게 엄마가 자신의 결핍으로 짐작하고 해결한 그 사랑이 오히려 아이의 마음을 고프게 합니다.


엄마가 결핍을 가진 채 자랐듯,

아이에겐 또 다른 결핍이 함께 하게 되지요.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사랑해서

엄마의 사랑에는 독이 스며들고

배가 고프지 않았던 아이는 마음이 고픕니다.


이런 관계 속 패턴을 뒤늦게 알게 된 엄마는

자신의 결핍으로

아이의 결핍을 짐작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으로

타인의 마음 읽기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제대로 읽기 시작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채워져야 누군가를 채울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배고픔은,

엄마가 '과거에' 느꼈던

절절하고 처절한 감각이지

아이가 '지금' 느끼는

절절하고 처절한 감각이 아니니까요.


아이는 때때로 배가 고프지만

마음은 더 자주 고프니까요.



• 공부 한이 있는 엄마


공부에 한이 있는 엄마가 있습니다


이 엄마는 어렸을 때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공부를 할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여자라고 공부를 안 시켜주고 돈 없다고 안 시켜주었지요.


그 후 그녀에게는 마주하는 삶의 모든 결핍이 '공부' 아래 놓이게 되는 듯했어요. 알고 보면 공부와 관련이 없는 것까지 공부로 연결 짓게 되었지요.



공부가 중요하긴 하지요. 하지만 그녀에게는 '너무' 중요하게 떠올랐어요.



그녀는 딸에게만은 이런 공부 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어요. 딸을 위해 열심히 딸의 공부를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딸에게 자주 화를 냈어요.

딸을 위해서 품은 자신의 마음이고 노력인데, 딸이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공부에 매진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순식간에 불같이 화가 났지요.


사실 그 순간 느끼는 화는 공부를 시켜주지 않았고 공부로 인해 결핍감을 느끼게 한 상황과 사람들에 대한 화인데, 지금 바로 앞에 있는 딸에게 그 화를 쏟아붓게 되는 것이지요.


"넌 얼마나 축복인데, 내가 얼마나 상처였는데

다 너를 위해서 하는 것인데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 것조차 하지 않으면 대체 어쩌려고 그러니?"


하지만 딸은 공부를 좋아할 수도 있고 필요로 할 수도 있고 나중에 하고 싶을 수도 있어요. 엄마가 지금 짚어주는 것이 아닌 다른 것, 엄마가 어렵게 구해다준 그 자료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해보고 알아가고 싶을 수도 있어요. 엄마가 묶어놓은 '공부'라는 틀이 이 딸에게는 너무 작고 갑갑할 수 있어요.

이 엄마의 한은 단지 이 분만 안고 있는 한이 아닌 우리 모두가 자라며 얻게 된 크고 작은 상처를 상징한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고 싶다면,

공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일단 내 안의 공부 한, 공부 결핍을 돌아봐야 하지 않는가 생각해요.


우리가 과거에 경험한 것 가운데, 또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가운데

그 속에 '상처'라는 요소가 담겨있을수록 그 중요성을 더 크게 생각하거나 단일한 방식과 관점만 알고 있거나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헷갈려하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아이가 미래로 향하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함께 미래로 향하기를 바란다면


과거와 현재 사이에 놓여있는 질긴 상처의 고리를 끊고 지금 현재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거 상처의 눈으로 우리 자신과 우리의 미래가 될 아이들을 보는 눈이 방해받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도 흔들릴 때마다 합니다.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설렘보다는 걱정을 더 많이 하는 바로 그 순간이 제 안의 결핍과 불안에 흔들리는 순간임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아이의 상처를 염려하기 이전에 나의 상처를 먼저 돌아보기로 합니다.


아이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이기에

또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것이

무심결에 무의식적으로 향하게 되기가 쉽기에,


나의 결핍으로 아이의 결핍을 보는 것

나의 마음으로 아이의 마음을 오독하는 것을

완전히 그만하기는 힘들겠지만,


어제보다는 더 나은 해석을

무의식과 결핍의 지배를 받는 육아와 교육이 아닌

의식적으로 깨어있는 그런 육아와 교육의 시간을 향해,


과거가 아닌 미래로 가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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