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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한민 ]


지난 글에서는 미국의 대표 히어로 '수퍼맨'에 대해 살펴봤는데요. 그럼 한국은 어떨까요? 


일단 한국에는 수퍼맨 류의 영웅은 없습니다. 막 하늘을 날아다니고 초능력을 쓰면서 누구를 구하고.. 그러는 사람은 없지요. 


해서 일부 사람들은 '한국영화는 볼 게 없다(?)'고 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한국에는 영웅이 없다', '한국인들은 영웅을 두고 보지 못한다' 등의 비약적 사고에 이르기도 합니다. 누군가 잘 나가면 그 사람을 깎아내리려는 못된 습성이 한국인들에게 있다는 주장이지요.


과연 한국에 영웅이 없을까요? 한국사람들이 누구 잘난 것을 봐 주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서 영웅에 대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영웅은 어떤 사람일까요? 잘난 사람? 크나큰 업적을 남긴 사람? 


영웅의 필요조건은 사람들의 공감입니다. 


아무리 잘났더라도, 아무리 큰 업적을 남겼더라도 사람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지 못하면 영웅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죠. 


문화는 투사체계입니다. 문화현상에는 사람들의 욕망이 투영된다는 뜻입니다. 수퍼맨은 1930년대의 경제대공황 시절의 미국에서 나타났습니다. 미국인들은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엄청난 힘으로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수퍼맨을 통해 공황의 어려움을 위로받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후,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끝발날릴 때는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이미지가 수퍼맨에 투영되기도 했지요. 미국인들은 수퍼맨의 활약을 통해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수퍼파워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이 공감한 인물은 누굴까요? 한국문화에도 수퍼맨처럼 자주 콘텐츠화된 인물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소설로 데뷔하여 영화, 드라마, 만화, 게임으로 수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한국의 영웅은 바로,



홍길동입니다.

홍길동은 1612년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의 주인공입니다.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이지요. 1934년에 최초로 영화화된 이후로, 영화, 만화영화, 드라마, 뮤지컬, 창극, 마당놀이, 게임 등등.. 홍길동을 소재로 한 문화콘텐츠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며칠 전에도 이제훈씨 주연의 '탐정 홍길동'이 개봉됐지요.


대중의 공감과 사랑이 영웅의 전제조건이라면 한국에서 홍길동만큼 영웅의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은 없을 겁니다. 그러면, 과연 한국인들이 공감하는 홍길동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일단은 서자라는 홍길동의 신분입니다. 효를 중심으로 한 부자관계가 중시되던 한국문화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처지는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했을 것입니다. 또한 신분상승이 제한된 서자라는 신분은 능력이 있어도 관직에 나가지 못했으니 평민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평민들 입장에서는 나와 동일시하기 딱 좋은 캐릭터인 것이지요.


크흑.. 길동찡...

두번째는 홍길동이 의적(義賊)이라는 점입니다. 홍길동이 주로 행한 일은 부정한 재물을 털어 활빈(活貧), 즉 가난한 사람들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이 점이 홍길동이 그토록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입니다. 뛰어난 무공과 도술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그 출중한 무예와 도술로 나쁜 짓을 했다면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겠지요.


의적으로서의 홍길동이 한국사람들에게 어필했다는 점은 한국문화에서 의적 캐릭터가 많고 또 사랑받아왔다는 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홍길동 외에도 임꺽정, 장길산, 일지매 등이 대표적이지요. 의적 캐릭터는 최근에도 '군도'라는 영화를 통해 재생산되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도둑이란 점입니다.


말이 좋아 의적이지 남의 집을 털거나 물건을 빼앗는 도둑놈들입니다. 다시말해, 한국사람들은 도둑들을 영웅시 했다는 것이죠. 우리는 이 사실에서 한국문화와 한국인들의 욕망에 대한 아주 중요한 단서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한국인들은 부(富)의 분배가 불평등하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부자들은 부정한 방식으로 축재를 했기에 부자일 수 있었고, 그 부를 털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 도둑은 그래서 의적(義賊)일 수 있는 것이지요. 불평등한 현실은 의적을 꿈꾸게 합니다.


둘째, 의적들에는 나도 잘 살고 싶다는 욕구가 투사되어 있습니다. 나도 저 부자들처럼 잘 살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는 현실에서, 부자들을 터는 저 도둑들은 곧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입니다. 양반들에게 꼼짝 못하는 백성들의 입장에서 탐관오리들을 시원하게 혼내주는 저 도둑들이 영웅이 아니면 누가 영웅이겠습니까.


가슴아프게도.. 이러한 인식은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조세형이나 신창원같은 현대 범죄사에 유명한 도둑들이 고관의 집을 털고 또 경찰의 추적을 뿌리치며 도주행각을 계속할 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잡히지 않기를 바라며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21세기인 현재에도 계속되는 금수저/흙수저 논란은 한국사회에서 부의 분배라는 문제가 대단히 뿌리깊고 또 민감한 문제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21세기에도 계속 등장하고 있는 홍길동의 후예들은 그 문제의 해결이 시스템 내에서 적법한 절차에 의해 이루어지기 어려운 현실을 상징합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뿐만아니라 어벤져스 2,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아이언맨3, 토르: 다크월드 등 화제의 히어로물들이 최초 개봉지로 한국을 선택할 정도로 유별난 한국인들의 히어로 사랑은, 현실에서 충족하기 어려운 욕구들을 초능력을 가진 수퍼히어로들에게 투사한 결과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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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5-19 07: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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