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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이 어떤 모양새로든, 지친 당신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 심꾸미 4기 후기
  • 기사등록 2022-05-17 06:5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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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추예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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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경이로운 해방의 경험을 안겨준 그 여정의 시작을 기억한다. 당시 나는 오지 않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지하철 대신 심꾸미 합격 문자가 왔다. 그렇게 입을 틀어막은 채 지하철에 타는 것도 잊고 제자리에 정지했더랬다. "됐다." 짧게 탄성을 내지르는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느릿하게 지나쳐갔다. 감격스러웠다.  

 

*

 

골방 속에 틀어박힐 때가 잦은 나는 줄곧 넘쳐나는 사유와 감정에 잠식되곤 한다. 그것들은 외면하고 싶을 만큼 추레하고 구차하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숨기며 누군가에게 발화하지 못한 채 홀로 삭힐 때가 잦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못 견디게 싫었던 것 같다. 그런 나였으니 심꾸미 모집 공고를 접했을 때 덜컥 지원한 것일 테다. 나 자신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나에 대해 파헤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았다. 단순히 고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문적인 심리 이론을 통해 깊이 있게 천착할 기회가 될 것 같았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탄생한 글이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니. 이보다 벅차오르는 경험이 또 있을까.  

 

지원서에는 필사적으로 숨기고 싶었던, 누구에게도 발화하지 못했던 속 이야기를 담아냈다. 길고 긴 내 이야기는 <미스 함무라비>라는 드라마에서 보았던 대사를 인용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박 판사님은 누구보다 상처를 많이 입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좋은 판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이후 나는 "지원자이지만,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을 오래도록 겪어온 산증인이기도 하므로, '불특정 다수'의 삶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자기소개는 그렇게 모두가 심리적 불안감으로부터 해방되는 그날까지 공감에서 비롯된 유용한 기사를 우직하게 작성해나가겠다는 포부로 귀결됐었다. 

 

당시 지원서에 내 감정을 너무 솔직하게 담아낸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조차 변방으로 밀어낸 감정이었으니, 어쩌면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거부감 들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내 진심이 통했던 것만 같다. 

 

*

 

심꾸미 활동 초반, 마감일이 있으면 나는 그 전주에 미리 주제를 선정하고 글을 구상했다. 이후 관련 자료들을 찾고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고, 천천히 퇴고까지 마무리한 뒤에 여유롭게 글을 송고했다. 활동의 절반 정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후에는 많은 시간을 쏟지 못했다. 여러 일들이 겹치는 바람에 정성과 노력을 곳곳에 분산시켜야만 했다. 그래도 내용을 신경 쓰는 데는 끈을 놓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게 심리를 적확하게 포착해낼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니까. 

 

그 결과 감사하게도 2월 2차 프로젝트에서는 우수 기자로 선정되었고, 4월 1차 프로젝트에서는 우수 기자 후보에 올랐다. 후에 나와 같은 궤적을 밟게 될 기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본인만의 진솔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풀어쓴 기사를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는 거다. 나만의 독보적인 경험이라는 점에서 독창성을 띤 글을. 또 얼핏 개인적으로 보일지라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동 나이대의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종의 보편성을 지니기도 한 글을. 내가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풀어쓴 지원서도 긍정적으로 봐주셨듯이 말이다.

 

 

심꾸미 활동을 하고 나서 변화한 게 있다면 기록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일기를 쓰다가도 내키지 않으면 몇 달씩 쓰지 않았다. 그저 특별한 경험을 하거나 어떤 감정이 크게 동한 날에 몰아서 쓰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이 활동을 시작하며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무언가가 떠오르면 흘려보내지 않고 즉시 메모장에든 어디에든 기록할 것. 그렇게 생각이나 감정들은 증발하지 않고 글로써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에서 감정을 의식적으로 지각하다 보니 별거 아닌 일상이 더 풍부하고 다채로워졌다. “기록하기 위해 감각하는 일상이란 얼마나 농밀한가.” 라는 김지수 기자의 말처럼. 

 

이렇게 끊임없이 고찰하고, 내 단상들의 출발점을 쫓고, 전문적 자료를 통해 천착하고, 그것들을 글로써 녹여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는 모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분명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자 시작한 거였지만, 쓰면 쓸수록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압도하는 것 같았다. 글을 쓰며 그토록 미웠던 내 감정들에 이유를 달아주는 과정에서 어느새 나는 내 변호인이 됐다. 점차로 나 자신을 용서하게 됐다. 

 

매번 글을 쓰며, 내 글을 끝까지 읽어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상상해본다. 내가 그간 생각에 둘러싸여 숱하게 밤을 지새웠던 것처럼, 당신도 부유하는 생각 속에서 이도저도 못 하는 채 무한히 침잠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조력자를 찾아 인터넷을 헤매고 있을 때 내 글이 당신에게 닿지 않을까. 그러면 당신은 주파수가 통한 듯한 기분에 잠기면서 심리적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이 여정 속에서 모종의 해방감을 얻었듯이, 나와 닮았을 당신도 내 글을 통해 나와 대화하는 기분을 느끼며 조금이나마 안온해졌으면 좋겠다. 

 

*

 

심꾸미 활동은 끝났지만 내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메모장에서 아직 잠자고 있는 이야기들은 여전히 많으니까. 또 앞서 해방되는 경험을 했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 유한하다는 것을 아니까. 언젠가 괜찮다가도 주기적으로 가라앉는 나 자신을 보며, 고통은 끝나지 않고 다만 주제와 사람을 옮겨가며 지속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듯 말이다. 앞으로도 나는 불안 가득한 하루하루를 영위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글을 놓지 않을 것이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조금이나마 덜 고통 받을 수 있는 방향을 찾을 것이다. 내 사유를 언어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가장 내밀하고 진솔한 글을 적어나갈 것이다. 그렇게 계속 고찰하고 고민하며 살아갈 것이다. 

 

지금 여기에 당도하기까지, 나를 끌어주고 내 일상을 좀 더 다채롭게 만들어준 심꾸미 활동이 고맙다. 더불어 부족한 나를 믿고 고찰과 해방의 기회를 기꺼이 안겨주신 한국 심리학 신문 대표님과 직원분들께도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해드리고 싶다.

 

어떤 형태의 글로든 당신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후기 작성을 마친다. 


"뒤로 가나 앞으로 가나 우리들 모두는 둥근 공처럼 생긴 별에 산다. 만난다, 어디에선가." -허수경,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의 시인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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