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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나종호 ]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습니다. 대학교 1학년, 게다가 여름방학. 그 두 조합 만으로 싱그러움이 느껴질 법한 그런 여유로운 나날들을 보내던 중에, 친구에게서 비극적인 소식을 전해 들어야만 했습니다. 한 2학년 선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 선배는 사회대 축구부의 주장이었고, 학교 생활도 열심이었고, 평판도 좋았고, 심지어 외모까지 잘생겼었거든요. 그 당시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하던 선배는 아니어서, 교류가 많지 않았던 지라, 그 충격에서 금방 헤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몇 년 후, 군대에서는 훈련소 동기 중 하나가 첫 휴가에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친구 또한 제가 말 한마디  섞어본 적 없었던 친구였기 때문에, 자세한 맥락은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군생활을 하던 중에, 이은주라는 영화배우의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오히려 꽤나 충격을 받았던 듯합니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었던 학생이었던지라, 아는 것은 많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정신 장애에 관심이 많은 때였습니다. 저는 이은주라는 배우를 좋아했었습니다. 그녀가 나온 영화를 찾아서 볼 정도의 팬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청춘스타와 같은 여배우들 사이에서 그녀의 존재는 뭔가 특별했습니다. 다른 여배우들이 쫓아갈 수 없는 그녀만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다른 배우와 다르다고 느꼈던 이유는, 그녀는 웃을 때에도 슬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를 웃음 뒤에도 늘 슬픔이 있던 배우라고 기억을 합니다. 지금도 그녀의 죽음을 처음 들었던 군대 벙커 안에 있던 사무실의 풍경을 기억합니다. 몇몇은 충격을 받았었고, 짬이 높은 선임들은 인터넷으로 여러 기사들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때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살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지. 그리고 또 생각했습니다. 스크린 너머로 그녀가 나오는 영화 두 편 밖에 보지 못한 나조차 그녀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면.



어쩌면... 이 죽음은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이후로 참 많은 연예인들이 스스로의 삶을 거두었습니다. 유니, 최진실, 최진영, 박용하. 그 과정에서 저는 정신과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진로를 바꾸어 의학대학원에 진학을 하였을 뿐, 여전히 계속 학생의 신분이었고요. 패기 넘치게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단 한 사람이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막는데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입학하였지만, 본과 생활에 치여서 제 한 몸 조차 가누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조성민이라는 사람의 자살 소식을 또 접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 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살로 사망한 사람들의 유족은 자살의 고위험군입니다.


'조성민이라는 사람은 전 부인, 전 처남을 모두 자살로 잃고, 이혼을 한(이혼 또한 자살의 위험성을 높이는 요소입니다)  남성이었는데 또 아무도 막지 못했구나.'


그 거구가 스스로 어떻게 목숨을 끊었는지에 대해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을 보며, 다시 한번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자살에 있어서 언론의 보도 방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실제로 많은 나라들이 자살 보도에 대한 지침을 가지고 있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살 방식에 대한 보도를 구체적으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방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요).


그때 비로소 결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정신과 의사, 그중에서도 자살을 연구하는 정신과 의사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에서 내 전문 지식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렇게 저는 졸업해서 자살에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며, 미국에서 공중보건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일이 뜻한 대로 풀려간다면, 올해부터 미국에서 정신과 레지던트로 일을 시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선 글에서도 짧게 언급했듯이, 뉴스페퍼민트라는 온라인 매체에서 의학, 그중에서도 정신의학과 관련된 기사들을 주로 번역함으로써, 정신 질병에 대한 한국 사회의 낙인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뉴스에서 수없이 들으셨겠지만, 한국은 지난 10년간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제가 연예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이는 결국 한국의 높은 자살률로 인한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연예인들이 포함된 것일 뿐입니다.


앞으로 저는 자살에 대해, 그리고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인 정신과 질병들에 대해서 제가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에 대해 기록을 남길 예정입니다. 제가 향후 레지던트로 일하고 싶은 곳에 계신, 자살 연구를 하는 교수님을 얼마 전에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자살을 연구하는 것에 관심이 있고, 궁극적으로는 자살을 예방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저의 목표라고 말을 꺼내자, 그 노 교수님의 첫마디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나는 자살을 예방할 수는 없다고 생각 하네만...



뜻밖의 대답에 조금은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천성적인 이상주의자입니다. 그래서,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계속 이상을 이야기하고, 감성적인 글들을 쓰는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저도 그 노교수님처럼 자살이라는 것이 막을 수 없는 비극이란 것을 인정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은 제 환자의 비극 앞에 눈물을 흘리게도 될 것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로 낙담하더라도, 과정에서는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올리기에 앞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왜 현재의 길을 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글을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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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5-19 07:2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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