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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루비 ]


충격적인 뉴스를 봤다. 초등학교 여학생이 동급생 친구를 칼로 수차례 찔러 살해. 할 말을 잃었다. 그 어떤 뉴스보다도 충격적이었다. 그들만의 사정이 있겠지만 그 어떤 이유도 살인을 정당화할 순 없다고 본다. 그런데 댓글들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가해 아이에 대한 동조였다. 정말 충격을 금치 못하겠다. 세상이 너무 각박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아볼 수가 없는 현실이 슬프다.


영화 <친구>의 유명한 장면.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나는 학교폭력과 함께 자라온 세대다. 초등학생 때는 체육 선생님이 모든 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같은 반 여학생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것을 목격했고 중학생 때는 머리 길이가 길다는 이유로 사정없이 가위로 내 왼쪽 머리칼이 잘려야 했다. 고등학생 때는 장거리 통학생이란 이유로 학생 부장 선생님으로부터 촌년이라는 무시를 받아야 했고, 같은 반 친구가 그 선생님의 말씀을 못 알아들었단 이유로 뺨 맞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건 선생님들로부터 받은 상처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반에는 왕따라고 굳이 명명하진 않았지만 따돌림받는 아이들이 존재했다. 그중 심하게 따돌림받던 여자아이가 4층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자살 소동을 벌였던 일도 기억한다. 나도 4학년 때 선생님한테 예쁨 받는다는 이유로 친한 친구를 선두로 해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게 비난이 섞인 편지를 주고 간 적이 있다. 6학년 때는 여자아이가 주동해 같은 반 아이를 따돌려서 남학생이 제지한 기억도 선명하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는 그때 방관했던 6학년 때 친구가 이번엔 나를 왕따 시켰다. 그 해 담임 선생님만 4번 바뀌었는데 정말 힘들었던 길고 긴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그 후에는 잔잔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했지만 대학생이 되어서 난 예비교사인 일부 동기들로부터 또다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다. 교내에는 파토 난 과가 여럿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해가 바뀌면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너무 우려스럽다. 반 아이들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공감 능력이나 배려심이 부족한 아이들이 늘고 있다. 물론 교육전문가로서 최대한 연구하고 공부해서 인성교육이니 진로교육이니 수업연구니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지만 아이들의 격변에 발맞추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도 많다. 교실 안에 무법자들에 대해서 교사로서 취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끝없는 아량과 사랑과 즐거운 수업만을 요구할 뿐, 교사의 좌절감과 절망감과 피로도는 그 어느 곳에서도 이해받지 못한다.


오늘 뉴스를 보고 너무 흥분했다. 우리 어른들도 이 시점에서 사회문제를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는데 사회에서 경쟁과 폭력적인 부분만을 물려준 건 아닌지... 지금 어른들도 한 때는 어린이였지만... 더 이상 과거 탓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 탓만 하기에는 세상은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다. 나부터 바뀌었으면 좋겠다. 내가 당했다고 그대로 물려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되돌아보는 어른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제발 그리하여 더 이상 아이들 세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멈추었으면... 교육의 최전선에서 어깨에 내려진 책임감이 막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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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1-18 21: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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