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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루비 ]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하얀 눈이 펑펑 내린 겨울, 동생과 나는 신이 나서 "와" 큰 소리를 외치며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소복이 쌓인 하얀 눈을 밟으며 우리는 이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눈의 벽돌로 된 집을 만들어보자고. 에스키모인이 사는 이글루 같은.


이내 실행에 옮긴 우리는 시린 손을 비벼가며 함박눈을 뭉쳐 다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눈의 벽돌들을 모아 벽을 세워 집 모양을 만들어갔다. 겨울 장갑을 끼고 있긴 했지만 손 시린 것도 잊고 발이 차가운 것도 잊고 입가에 함지박만 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추운 겨울임에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열심히도 했었다.




기억 속에 끝까지 완성한 장면은 없지만 어린 시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최고의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저번 주에 모임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은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분도 있었고 다시 태어나고는 싶지만 중고등학생 시절은 생략하고 싶다는 분도 있었다. 대부분이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나마 초등학생 시절에 대한 기억만 흐뭇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부터가 고등학생 시절은 매일같이 밤 10시까지 이어진 야간 자율학습이 너무 싫었다. 그때 대학생만 되면 다시는 공부 같은 건 하지 않을 테라고 다짐했었다. 그만큼 공부가 죽기보다 싫었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억지로 공부를 하였다. 너무 슬프지 아니한가? 그런데 지금은 나는 누구보다 공부를 즐기며 좋아하고 있다. 변화의 뿌리는 바로 자발성에 있다. 학생 시절은 타율적으로 공부하는 것에 심한 피로감과 괴로움만을 느꼈다면 성인이 된 후에 내가 자율적으로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때론 고통스러울지라도 많은 내적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할 것은 내적 동기에 의한 공부의 즐거움 아닐까? 객관식 4지선다 또는 5지선다의 수많은 문제를 내주고 정답만을 강요하는 공부가 무슨 공부이고 학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학력이 정말 학생들의 쓸모 있는 능력을 평가해주는지 의문이며 학생들의 삶의 질에는 얼마만큼 기여하는지 의문이다. 그보다는 스스로 세상에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여 실생활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창조적으로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능력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평가는 바로 그러한 것들을 대상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다행히 현재 학교는 그러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다만 언론이나 세간에서 낡은 잣대로 평가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나와 내 동생이 어린 시절 눈의 벽돌집을 쌓았던 추억은 오래도록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의 추억이 있기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 닥쳐도 이겨낼 자원이 되고 있으며 그때 단련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세상을 헤쳐나갈 힘도 얻었다. 누군가는 그게 뭐 그리 중요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어떤 연구에 의하면 세상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았던 기억이라고 한다. 모래성과 눈의 벽돌집은 조금 다른 듯 하지만 비슷한 면도 있듯이 정말 우리 학생들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교육하고 도와주는 어른들이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 세상 탓, 제도 탓은 너무나 쉽지만 개인의 자발적인 의식의 변화야말로 진정 효과적인 힘 아닐까? 나 또한 부족한 어른으로서 작은 목소리나마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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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1-24 14:3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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