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The Psychology Times=루비 ]



“성공적인 창의력의 결과가 곧 혁신이다.” 세계 창의력 교육의 노벨상 ‘토런스 상’을 수상한 <틀 밖에서 놀게 하라>의 저자 김경희 교수가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김경희 교수는 창의력은 곧 ‘밸류어블(Valuable·가치가 큰)’과 ‘유니크(Unique·독특한)’라고 말한다. 가치가 있으면서 색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전문성과 틀을 깨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이러한 창의성이 곧 혁신이라고 한다.      



“아직 많은 사람에게 창의력의 정의조차 불분명한 것 같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간단하다. 창의력은 곧 가치가 있으면서 색달라야 한다. 가치가 있기 위해선 전문성을 쌓아야 하고 색다르게 만들려면 틀을 깨야 한다. 성공적인 창의력의 결과가 곧 혁신이다.”    

-영재 및 창의력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 김경희 교수



우리나라 사람들은 혁신이라 하면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혁신학교 지정을 두고 학교와 마을 주민이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만 봐도 그렇다. <풀꽃도 꽃이다>라는 책에서 작가 조정래도 혁신학교 확대를 논하기도 했는데 공감대를 갖지 못한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반대하는 주민들은 학력 저하를 이유로 든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혁신 학교는 학력 저하를 초래할까? 나도 혁신 학교에 근무해봤지만 혁신 학교는 무엇보다 자유로운 풍토, 학생들의 개성 존중, 창의력의 보고라는 점에서 좋은 점이 많았다. 학력 저하라는 불명예는 획일적인 평가제도에서 기인한다. 아마 반대하는 학부모들도 오로지 대학 입시라는 잣대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김경희 교수는 한국의 아이들은 외우는 거 잘하고 시키는 거 잘하지만 문제해결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특히 그 특징은 외국에 나가면 두드러진다고 한다. 그렇게 학구열이 높은 우리나라인데 노벨상은 단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한 나라. 정말 우리 교육 잘하고 있는 것은 맞는 걸까? 학교폭력과 교권침해가 심각한 학교, 학생들이 행복하지 않은 학교. 모두가 전문직과 공무원만을 꿈꾸는 학교.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조정래 작가도 수년간의 조사에 걸쳐 <풀꽃도 꽃이다>라는 책을 썼다고 인터뷰에 밝혔지만 사회 구조가, 사람들의 의식이 쉽게 변하지가 않나 보다.


게다가 우리나라 학교는 철저히 좌뇌형 위주로 굴러간다. 나는 우뇌형인데도 운 좋게(?) 입시제도를 통과해 교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학교 교사 중에는 오지선다형 입시문제를 통과한 좌뇌형이 많다. 특성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 못하고 불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ADHD로까지 오해받은 적이 있던 나는 엄청난 상처와 고통을 견뎌내야만 했다. 논리 정연하고 분석적인 좌뇌형들은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우뇌형을 산만하다, 게으르다, 말썽만 피운다라며 억압하고 조롱하려고만 한다. 하지만 우뇌형들은 창의적인 면에서 강점이 두드러진다. 다만 좌뇌형들은 그들을 이해 못할 뿐이지.


한때 이런 내가 너무 싫어서 사표를 쓸까, 세상을 뜰까 오만가지 부정적인 생각을 끌어안고 산 적이 있다. 그런데 몇 년간의 자아탐색과 상담 끝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우리나라의 절반인 우뇌형들, 좌뇌형 위주의 교육에서 고통받고 있는 그 학생들에게 내가 숨 쉴 공간이 되어주자고. 그리고 좌뇌형이 대다수인 교사 집단에서 우뇌형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하여 김경희 교수가 설파하는 진정 창의적인 인재들을 많이 양성하자고 말이다. 김경희 교수는 창의력을 계발하는 데는 대단한 커리큘럼이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부모의 태도, 가정의 풍토, 학교의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위대한 혁명가는 아버지가 죽었거나 친구가 되었거나 둘 중 하나라고 한다. 흔히 억압적인 아버지, 권위적인 아버지가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막는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도 바로 그 억압과 권위적인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사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지적은 십수 년 전부터 있어왔는데 참 변화하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어제 금요일, 꿈터(방과 후 자율학습반) 아이들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이들이 책상과 의자를 일렬로 배열한 뒤 쌓기 나무 블록과 투호놀이 세트를 가지고 자유롭게 노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블록과 투호놀이의 막대기, 뚜껑을 이리저리 배열한 뒤 나를 불렀다.


“선생님, 이거 봐요.”


“이게 뭔데?”


“이건 닭꼬치 만든 거예요.”


“아하, 정말 그렇구나. 그럼 이건 뭐야?”


“이건 바나나 잎 위에 삼겹살이요.”


“이 까만 건 뭐야?”


“그건 민트 초코칩 아이스크림이에요.”



민트초코칩 아이스크림

바나나 잎 위에 삼겹살



버터와 빵

닭꼬치와 민트초코칩 아이스크림

네모난 블록과 막대기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연상하는 아이들의 기발한 창의력에 놀라고 말았다. 그동안 꿈터 학생들은 자율학습이라는 명목 아래 방과 후에도 자리에 앉아서 질서 정연하게 공부만 하는 게 지침이었다. 나는 그러한 지침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6교시 내리 수업을 듣고 또 방과 후에 와서도 공부만 하다 가야 한다니. 하지만 관리교사로서 어쩔 수 없었는데 오늘은 내가 통제를 하기도 전에 아이들이 벌써 자유롭게 기발한 놀이를 발명한 것이다.


 “너희 집에 갈 때 이거 다 치우고 가야 돼.”


 “당연하죠. 저희가 안치우면 누가 치우나요.”


이렇게 말하더니 아이들은 정말로 교실을 깨끗이 정리 정돈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문득 며칠 전에 본 몬테소리 교육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몬테소리 교육의 핵심 철학이 자유, 몰입, 성취라고 하는데... 다큐멘터리 속 자유로운 분위기의 아이들과 이 아이들이 어딘가 닮아있단 생각이 들었다.     


다시 아까의 혁신학교 이야기로 돌아오면 혁신학교가 학력 저하를 초래한다는 말은 명백한 오해이다. 학력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달려있다. 학력이 오로지 공식을 외우고 지문을 달달 암기하고 정확히 계산하는 것에만 있다면 학력 저하가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시대가 요구하는 학력이 변하고 있다. 오늘 계속 이야기하고자 했던 창의력, 미래 사회의 핵심 역량은 결코 그런 오지선다형 시험 문제로 신장되지 않는다. 요즈음에 초등학교에서는 중간, 기말고사 평가를 치르지 않는다. 과정 중심 평가가 새롭게 도입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학생들의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을 높이 평가한다. 중학교에서도 자유학기제가 도입되어 학생들의 각자의 소질과 적성을 중시하고 다양한 진로를 모색하도록 돕는다. 교육과정-수업-평가 일체화라고 수업 따로 시험 따로는 더 이상 옛날이야기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교사들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대상황에 맞는 교육과정을 연구하고 있으며 미래사회에 알맞은 교육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과거의 일사불란한 교실에서 벗어나 다양한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교육을 해야겠다. 코로나 19로 잠시 지체된 지금, 그날을 위해 준비에 박차를 가하자. 창의력은 결코 소수의 뛰어난 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누구나 창의적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하기를 기대해본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4455
  • 기사등록 2022-12-13 13:54:2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