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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양진서 ]



인간은 모방의 동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인간이 혼자 살 수 없으며, 서로 관계를 유지하고 상호작용하는 존재임을 함축하는 말이다. 이렇듯 인간이 집단 속에서 다른 존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기 위해서는 타인을 ‘모방’할 줄 아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인간은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이를 금방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을 탑재하고 있다. 학교, 사회 등 집단에서 요구하는 규격화된 행동에 금방 적응할 수 있는 것도 우리가 모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모방을 통해 문명의 발전을 이뤄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또 다른 말인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기술과 지식을 모방하고 이를 사회에 적용해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심리철학자 수전 블랙모어(Susan Blackmore)에 의하면 인간이 독특한 존재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계에서 우리가 가장 뛰어난 모방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교한 모방 능력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문화를 형성했으며 기술 발전을 가능케 했다. 


이처럼 모방이 인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오늘날 해당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총기 난사, 다른 총기 난사에 영향.. 모방범죄 가능성↑”, “끊이지 않는 연예계 마약 범죄…'모방 범죄' 우려” 등의 기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언론에서 다뤄지는 모방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누군가의 행동을 무작정 따라 하는 습관은 범죄 영화나 뉴스에 나온 범행 수단을 모방하는 카피캣 범죄(Copycat crime)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타인을 따라 하고자 하는 심리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 역시 인간의 모방 심리가 지니는 어두운 이면을 강조했다. 영화 <리플리>와 <태양은 가득히>, 웹드라마 <안나> 등이 대표적이다. 필자는 이 중 <리플리>가 다룬 모방 심리를 분석하고자 한다. 




영화 <리플리>에 드러난 인간의 모방 심리



(사진 출처·다음 영화)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뜻하는 이 표현은,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의 <재능 있는 리플리 씨>에서 유래됐다. 이 작품은 영화 <리플리>의 원작이기도 하다. 영화의 주인공인 톰 리플리(맷 데이먼)는 피아노 조율사, 호텔 보이 일을 하는 가난한 청년이다. 원작 소설의 추가적인 설명을 빌리자면, 톰은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고모의 손에서 불우하게 자랐다. 그런 그가 우연한 계기로 디키(주드 로)를 만나 상류층의 삶을 경험하면서 점차 디키의 삶과 정체성에 집착하게 되는 과정이 영화의 핵심 골자다. 


톰과 디키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대조적인 위치에 놓인 인물이다, 성공한 사업가인 아버지의 후원으로 명문 학교를 졸업하고 유럽에서 부유한 일상을 즐기는 디키의 삶은 톰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톰은 그의 인생을 동경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자신과 동일시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모방 욕망을 ‘타인의 속성을 자기 것으로 삼음으로써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타인의 위치에 이르고자 하는 형이상학적 욕망’이라고 정의했다. 디키의 비싼 구두와 재킷을 입어보고, 거울 앞에서 디키의 말투를 흉내 내는 톰의 모습에서 관객은 모방 욕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톰의 ‘모방의 여정’은 결국 피로 얼룩지게 된다. 디키의 삶을 부러워했던 그는 시간이 갈수록 둘 사이에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음을 깨닫는다. 디키가 존재하는 한 그의 삶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수 없기에 톰은 결국 디키를 죽임으로써 모방의 과정을 완성하고자 한다. 르네 지라르는 모방의 욕망이 어느 순간 모델이 되는 인물을 향한 폭력, 적개심으로 바뀜을 지적한 바 있다. 디키의 인생을 향한 톰의 욕망은 결국 그를 향한 무자비한 폭력으로 전환된 것이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뤄지는 인간의 모방 심리는 매우 극단적이다. 작품의 오락성과 흥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모방의 어두운 이면을 과장해서 묘사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리플리>와 같은 작품은 관객에게 자신의 존재를 지우면서까지 자행하는 무분별한 모방이 지니는 위험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거울 뉴런을 지닌 인간에게 모방은 분명 자연스러운 행동이며, 이는 여느 동물과 구분되는 독특한 문명 건설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에게서 찾는 무분별한 모방은 오히려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SNS에 자신의 이상화된 모습을 게재하고 이를 진짜 ‘나’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듯, 지나친 모방은 결국 슬픈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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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장대익. 2021. 호모 리플리쿠스(Homo replicus) = Homo replicus : imitation, mirror neurons, and memes. 인지과학(Korean Journal of Cognitive Science). Vol.23 No.4. 517-551

이명호, 장정윤, 전소영, 김은하, 박숙자, 김영미, 김연숙, 김미현. 2010. 현대소비사회와 시기하는 주체: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의 [유능한 리플리 씨]. 미국소설. Vol.18 No.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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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3-20 21: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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