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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sychology Times=양다연 ]


흐릿한 사진(출처: pixabay https://pixabay.com/photos/rain-window-raindrop-water-wet-6243559/)

개강을 했고 3학년이 되었다. 국문 전공이지만 지난 2년 동안 전공 강의를 많이 듣지 않아서 사실 나는 ‘교양 지식만 풍부한 3학년’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 교양 지식이 그리 풍부하지도 않다!) 3학년이면 이제 슬슬 정신을 차릴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국문학도로서의 소양도 쌓고 졸업요건도 채울 겸 이번학기에는 수강 과목의 2/3를 전공으로 채웠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강의는 내가 직접 그림책을 창작하는 수업이다. 수강생들은 한 학기 동안 그림책을 공유해서 읽고,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와 그림을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 책을 한 권 완성하면 된다.

 

강의 계획서를 보고 ‘대학생이 유치하게 그림책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강신청 전에 이 강의를 수강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정원의 거의 두 배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기가 많다는 말에 넘어가 나도 ‘이 강의를 수강하고 싶어하는 학생’ 중 한 명이 되었는데, 수강신청 전 무작위로 뽑는 몇 안되는 행운의 학생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가며 광클의 노고 없이 수강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뽑히고 나서 보니 그림책은 나와 거리가 멀어 한 학기 동안 지루하게 수업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짱구는 못말려’나 ‘아따맘마’ 말고는 기억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하나 없는 내가 책을 기억할 리 없었다. 수강을 포기할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졸업 전에 이 수업을 들을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냥 듣기로 했다.

 

요즘은 학기 초답게 수강생들이 순서대로 돌아가며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책을 소개하고 있다. 자연스레 각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서일까. 수업 분위기는 굉장히 몽글몽글하고 따사롭다. 나도 매번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장착하고 수업을 듣는데,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 어린 시절이 다른 분들의 어린시절에 비해 희미하다고 느낀다. ‘저런 것까지 기억한다고?’라며 놀라는 빈도가 많아질수록 나에게는 ‘이런 것도 기억 못 한다고?’라는 질문이 쌓여갔기 때문이다. 어릴 때 읽었던 그림책의 한 장면이 어떻게 아직까지 기억이 날 수 있는 건지… 부러워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이 되었을 정도로 나의 기억은 대부분 모자이크와 통편집 신세였다. 내 지난 날의 행방이 이렇게 묘연해진 이유를 궁금해하다 한 가지 생각난 것이 있는데, 알고보면 내가 보는 세상의 기본 값이 모자이크라는 사실이다.

 

내가 경험하는 세상 중 하나는 흐릿한 세상이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이는 세상인데 미세먼지 때문도 아니요, 그렇다고 세상을 향해 흐린눈을 해서도 아니다. 시력이 나빠서 정말로 세상이 ~릿~하게 보인다! 다행히 아직 마이너스의 길을 가진 않았지만 시력 검사를 할 때마다 최저기록을 경신하며 지금은 좌안 0.4 우안 0.2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시력이 좋은 친구가 있다. 눈이 나빠진 결과 무려 1.5의 시력을 갖게 된 그 친구는 내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때면 ‘신기하다’거나 ‘궁금하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희미하게 보이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아서 그런 세상이 궁금하다고 말한다. 수능이 끝나고 나보다 의사선생님을 먼저 찾아간 또다른 친구는 눈이 나쁘긴 하지만 안경이 없다고 인생이 무너지는 정도도 아닌 시력의 보유자였다. 하지만 안경이 많이 불편했는지 수술대에서의 경험담 하나를 얻은 그날 이후로 스마일 라식을 거의 숭배하고 있다. 내가 안경의 불편함을 호소할 때마다 라식 이야기를 꺼내는데, 수능을 본 지 햇수로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뜬금없이 “너도 라식 해! 진짜 편해!”라며 영업사원같이 구는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하는 대답이 있다면 “나는 별로 이 세상을 선명하게 보고싶지 않아…”라는 것이다. 인생의 절반을 흐릿하게 살아와서 이젠 선명한 피사체를 보는 것이 부담스럽고 피곤할 지경이다. 처음에는 콧대 위에 안경이 올라와 있는 그 느낌이 불쾌해서 안경을 쓰지 않았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부터 ‘아는 게 힘’이라는 말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에 더 공감이 갔다. 이젠 발표나 면접이 있는 날에는 아에 일부러 안경을 쓰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져서 꽤 당돌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엥?) 뭐 하나 선명하게 남는 기억이 없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그걸 알았더라면 이 글을 쓸 일도 없었을 터…

 

그렇게 나는 유치원생이나 읽는다고 생각했던 그림책 덕분에 평균시력 0.3의 눈으로 나름 잘 살아오고 있던 인생에서 큰 고민거리를 갖게 되었다. (친구에게는 유감스럽지만 ‘어느 병원에서 스마일 라식을 할까?’하는 고민은 아니다.) ‘계속 이렇게 지내도 괜찮을까?’하는 고민이다. 흐릿한 세상은 포기하기엔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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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3-16 15: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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