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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파워로서 '문화산업'과 그 활용에 대한 고찰 -2- - 문화산업, 산업 너머로 미치는 경제적·외교적 파급효과 막대해
  • 기사등록 2021-10-25 13: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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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 한류의 예로는 2021년 9월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들 수 있다. 오징어게임은 한국 드라마 최초로 전 세계 넷플릭스 드라마 부문 1위를 기록했다. 이는 소프트파워의 한 예이다/사진 넷플릭스 제공오늘날에는 '문화콘텐츠산업', '문화강국'이라는 말이 생소하지 않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고위 관료들이 문화산업을 "21세기 주력산업",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으로 표현하거나, "높은 콘텐츠산업 경쟁력을 확보해 문화강국으로서 거듭나야 한다"라는 식으로 발언하는 걸 듣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약 25년 전인 1990년대만 하더라도 대중문화는 오랫동안 통제와 감시의 대상이었지, 진흥과 육성의 대상이 아니었다. 또 문화는 '고귀한 것'이란 인식 아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자체가 천박하다는 정서도 없지 않았다.

 

그러다 1990년대 말 'IMF 사태'가 터졌다. 이때부터 국내 산업 구조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대두됐고, 이후 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된 한류 확산 현상, 정치인들의 새로운 의제 발굴 필요성 등으로 인해 문화콘텐츠 육성 정책은 차츰 국가 전략 사업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여러 세제 및 융자 혜택, 보조금 등이 주어졌고, 민관 모두에서 관련 연구와 홍보 활동이 활발히 진행됐다. 아울러 사회적으로도 "문화는 산업의 하나"라는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문화콘텐츠산업'라고 할 때, 이는 문화콘텐츠상품을 생산·유통·소비하는 산업 전반을 포괄하는 말이다. 세부적으로는 출판, 만화, 음악,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광고, 캐릭터, 지식정보, 콘텐츠솔루션 11개 분야로 분류할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콘텐츠산업의 세계시장 규모는 2019년 기준 약 2조 3,940억 달러로, 4,462억 달러 규모인 세계 반도체 시장의 5배에 달했다. 이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지식정보(27.8%), 광고(21.4%)였으며, 해당 시장은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이 거의 장악하고 있었다. 국내 기업들이 선전하고 있는 게임, 음악, 영화 등을 전부 합쳐도 전체 콘텐츠 시장의 약 10%에 불과했다.

 

더구나 광범위한 분야에서 다양한 장르에 걸쳐 제작·유통·소비되고 있는 문화콘텐츠가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GDP 대비 문화콘텐츠산업의 부가가치액 비중은 2005년 2.39%에서 2019년 2.49%로 지난 15년간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다만 그 절대액 자체는 크게 성장했으며, 무엇보다 수출 비중이 높아졌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콘텐츠산업 통계조사에 따르면, 2005년 문화콘텐츠산업의 총매출액은 57.3조 원, 수출액은 13억 달러(2005 평균 환율 적용 시 약 1조 3400억 원)였다. 2019년 기준 문화산업 총매출액은 126.7조 원, 수출액은 101.9억 달러(2019년 평균 환율 적용 시 약 11.9조 원)였다. 총매출액은 2배 조금 넘게 성장했는데, 수출액은 9배 가까이 성장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문화가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오늘날, 향후 어떤 산업을 육성하고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무궁무진한 잠재 가능성의 실현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이러한 한류 붐을 적극적으로 확산시키기 원했다. 문 대통령은 임기 초인 2017년 11월 '신남방정책'을 공식 선언하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및 인도와의 협력 수준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개국과 유사한 수준으로 높인다는 방침의 외교정책을 추진했다. 이때 협력 분야는 단순한 상품 교역 수준을 넘어 문화예술, 인적 교류까지 포괄했으며, 이는 기존 중국과 미국 중심의 교역에서 벗어나 광범위한 동남아시아 일대를 한국 대중문화의 가장 큰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 문 대통령은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018년 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 가수들이 평양에서 공연하도록 주선했고, 지난 9월 개최된 UN 총회에 앞서서는 BTS를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로 임명해 총회에 함께 참석하는 등 외교 활동에 있어서도 문화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당시 BTS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 모멘트’ 행사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퍼포먼스 영상을 보여줬는데, 이때 UN 공식 유튜브 계정으로만 전 세계 98만 명 이상이 실시간으로 시청했으며, 다른 채널로 청취한 네티즌도 수만 명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 영상을 다수가 동시에 시청하는 경우와, 해당 수치가 실시간 시청자 수만 집계한 것이란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동안 정치인 위주의 참석으로 대중에게 홀대받던 UN 총회에서 입증된 문화적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여실히 실감할 수 있다.

 

한편, 소프트파워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만큼, 이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우리나라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예기치 못한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뒤바뀌어 상대 국가에 의한 한국 문화콘텐츠 규제, 제품 불매운동, 방문 중단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2016년 우리나라에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배치가 확정된 이후, 그에 대한 보복 조치로 행해진 중국의 한한령(한류 금지령)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국의 거대한 시장을 안보 및 외교 무기로 사용한 중국의 행태는 소프트파워의 특성상 상대국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게 해 준다.

 

우리나라가 소프트파워를 활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곳이 바로 북한이다. 냉전 당시 미국의 맥도날드, 코카콜라,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 등의 문화 수출품은 상대적으로 문화적 면역력이 떨어지던 소련권의 힘을 약화하고 서방 국가들이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문화 수출품은 북한의 현 체제를 약화하고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오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란 판단이다.

 

일례로 2019년 말부터 2020년 초까지 방영된 국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북한 장교와 우리나라 여성 CEO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데, 미국에서도 한때 넷플릭스 TV쇼 순위 6위에 오르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이를 시청한 탈북민들 역시 "고증이 잘됐다", "무척 재밌었다", "남한이 북한보다 자유롭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했다"라는 식으로 높게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이자 자본주의 국가로서 우리나라가 생산한 문화콘텐츠가 현재 억압체제에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로서 통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물론 현재 북한은 우리나라 드라마와 영화를 시청하거나 유포하는 이를 엄벌에 처하는 '반동사상문화 배격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북한 주민이 USB나 SD카드 등을 밀반입해 한국 드라마나 가요를 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탈북자들 상당수가 한국의 TV 프로그램을 본 후 한국을 동경하게 됐다고 고백했으며, 북한 당국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행을 탈 무렵 '오빠'와 같은 은어를 포함해 모든 한국문화를 멀리하라고 시민들에게 경고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 정부는 북한을 상대로 소프트파워를 사용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1년 3월부터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승인 없이 북한을 향해 확성기 방송, 현수막 게시, 전단·USB·현금 등을 살포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행위가 미수에 그쳐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미국, 영국, 유럽, 캐나다 등 각국 정부를 비롯해 국제인권단체로부터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무시한 법이라는 비난을 받았는데, 이에 대해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은 "표현의 자유는 때로 제약될 수 있다"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정부가 북한 정권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데에만 과도하게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사회기반체제에 있어 극단적인 대립이 존재하는 양국 사이에서 이 같은 신중함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사실상의 일당제 국가인 중국과 1인 독재체제인 북한을 상대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적 가치를 담은 우리나라 문화를 정부가 나서서 사용하는 것은 그 의도 자체만으로도 국제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문화콘텐츠 수출을 통해 수익을 거둬들이는 것 이상의 일이며, 따라서 전략적으로 정교하게 계획을 수립하는 동시에 유연한 외교적 노력이 병행돼야 할 사안이다.

 

북한을 상대로 한 소프트파워의 활용은 막무가내로 추진해서 될 일도 아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 역시 현명한 행동은 아니다. 인권이나 민주주의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물론, 북한과의 통일을 통해 지정학적 긴장으로 초래될 막대한 비용을 줄이고, 인접국들 사이에서 지정학적 강점을 확보하며, 엄청난 규모의 경제적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민관이 합심해 소프트파워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국익 차원에서 추진해나갈 국가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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