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은
[한국심리학신문=전성은 ]

“잘 가.” 누구나 한 번쯤은 건네고, 또 들어본 짧은 말이다. 그러나 막상 떠나는 순간이 되면 평소보다 말을 고르고, 하지 않던 말을 덧붙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이 짧은 인사가 관계를 안전하게 마음에 저장하려는 인간의 본능과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왜 우리는 굳이 마지막 인사를 할까
애착 이론을 정립한 영국의 정신분석가 존 볼비는 아이가 보호자와 잠시 떨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경험을 통해 마음의 불안을 덜고 관계의 안전함을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인간은 누군가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작은 반복을 통해 마음속에서 관계의 끈을 단단히 이어간다. 그래서 우리에게 작별 인사는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다. 관계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이자, 언제든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작은 약속이다.
공항 출국장에서 비행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거나, 버스가 떠날 때까지 배웅하는 모습은 누구나 한 번쯤 본 익숙한 풍경이다. 이런 짧은 몸짓은 떠나는 사람과 남아 있는 사람 모두에게 이별의 불안을 덜어주는 심리적 안전장치가 된다.
이렇게 주고받는 마지막 인사는 마음을 조금 더 단단히 붙잡아주고, 그 순간을 기억 속에 더 선명하게 남긴다.
끝은 더 선명히 남는다
기억은 끝에서 강화된다.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는 사람들이 긴 단어 목록을 외울 때 마지막 단어를 가장 잘 기억한다는 ‘최신 효과’를 제시했다.
관계도 다르지 않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해도 마지막 순간이 관계의 이미지를 좌우한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설명한 ‘정점-종결 법칙’은 이를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사람은 한 경험을 떠올릴 때 전체를 기억하지 않고, 가장 강렬했던 순간과 마지막 순간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즐거웠던 여행도 마지막 날의 갈등 하나로 쓴 기억으로 남을 수 있고, 반대로 다소 불편했던 관계도 마지막 인사 한마디가 따뜻했다면 시간이 지나 좋은 추억으로 바뀔 수 있다.
우리는 왜 좋은 작별을 바랄까
이별 뒤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할걸” 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많다. 이런 후회는 상대의 기억 속에 남을 자신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좋게 남기려는 무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관계가 끝나더라도 마지막 말과 행동은 유독 신중해진다.
작별은 말로만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헤어지는 순간 작은 선물을 건네고, 누군가는 긴 메시지를 남긴다. 떠나는 순간에도 관계의 온기를 오래 남기려는 마음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잘 보내야 다시 만날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로빈 던바 교수는 인간이 친밀한 관계로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평균 150명 남짓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인연을 끝없이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 새로운 만남을 위해서는 어떤 관계는 자연스럽게 떠나보내야 한다. 하지만, 이별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면 마음은 여전히 그 관계에 머문다. 누군가는 카카오톡 대화를 쉽게 지우지 못하고, SNS 팔로우를 끊지 못한다.
짧은 ‘안녕’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별은 관계를 정리하면서도 언젠가 다시 이어질 수 있는 작은 문을 남겨둔다.
안녕은 끝이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작별 인사가 완전한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떠나는 순간,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마음을 담아 “잘 가”라는 말을 건넨다.
누군가는 멀리 떠나 있고, 누군가는 언젠가 돌아올 수도 있다. 오늘 누군가에게 전하는 짧은 “잘 가”는 어쩌면 가장 긴 인사일지도 모른다.
떠나는 순간이 두렵다면, 그 인사가 언젠가 안전한 기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보자. 짧은 ‘안녕’이 관계의 마지막이 아니라, 다시 시작될 수 있는 작은 씨앗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출처
1) Bowlby, J. (1969). Attachment and Loss: Volume I. Attachment. London: Penguin Books.
2) Gable, S. L., & Reis, H. T. (2010). Good news! Capitalizing on positive events in an interpersonal context. Advances in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2, 195–257.
3) Ebbinghaus, H. (1885). Über das Gedächtnis: Untersuchungen zur experimentellen Psychologie. Leipzig: Duncker & Humblot.
4) Kahneman, D., Fredrickson, B. L., Schreiber, C. A., & Redelmeier, D. A. (1993). When more pain is preferred to less: Adding a better end. Psychological Science, 4(6), 401–405.
5) Dunbar, R. I. M. (1992). Neocortex size as a constraint on group size in primates. Journal of Human Evolution, 22(6), 469–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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