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언
[한국심리학신문=이지언 ]

“어,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사실 그 사람의 이름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띄운 채 대화를 이어간다. 때로는 이게 무슨 말인지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분명 이상한 행동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의 사람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모습이다. 왜 우리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모르는 척, 혹은 아는 척을 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걸까?
체면을 지키는 공감
사람들은 체면을 중시한다. 내 체면을 중시하는 동시에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며 타인의 체면 또한 손상시키지 않으려 한다. 인간은 자신의 또 타인의 사회적 자아를 보존해주는 방식으로 대화 전략을 세운다. 상대방이 말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곧 자신과 그 사람의 자존감이나 권위를 존중하는 사회적 제스처다. 때때로 모르는 척 넘기는 것은 공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가 앞선 내용처럼 기억나지 않는 이름 앞에서, 모르는 내용 앞에서도 맞장구를 치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는 단순한 예의 때문만이 아니다. 이런 반응은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형성된 사회적 자아를 유지하기 위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며 서로의 체면을 관리한다. 마치 일종의 무대 위 배우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눈에 비춰지는 나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 이미지가 손상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조율한다. 특히 동양 문화권에서는 본인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 마치 체면의 손상처럼 여기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진실보다 사회적 조화를 우선시하며 모르는 무언가 앞에서도 공감하며 아는 듯 행동하는 선택을 한다.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사회적 이미지 뿐 아니라 상대방의 체면도 지켜주려는 상호 보존 전략으로도 여길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르는 척 혹은 아는 척은 서로가 서로의 사회적 자아를 존중하기 위해 하고있는 무언의 협약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대화 속에서 모호하고 어색한 순간들에 우리가 적당히 웃으며 넘기는 이유는 단지 상황을 피하기 위함을 넘어 나라는 이미지가 타인에 눈 앞에서 무너지지않도록 방어함과 동시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이처럼 체면은 타인의 앞에서의 나와 타인과 나의 관계 또 그 타인까지 지켜주는 최소한의 심리적 방패이다.
사회적 위선 vs 좋은 사람이고 싶은 욕망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며, 모임에서 어색해지는 걸 피하기 위해 스스로도 불편한 거짓을 택한다.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거나 몰랐다는 사실을 숨기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은 소속 욕구와 사회적 인정 욕구가 맞물려 나타나는 전형적인 관계 유지 전략이다.
우리는 앞선 내용들에서의 모습이 거짓처럼 느껴지며 자괴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좋은 사람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이다. 어쩌면 거짓이 아닌 전략인 것이다.
진실보다 ‘맥락’을 우선하는 커뮤니케이션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맥락적 사고는 우리가 정확한 정보보다 관계와 분위기를 우선하게 만든다. 한국은 맥락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말보다 분위기와 대화의 맥락이 중요하다. 이해 못한 것을 말하는 순간 흐름이 끊기고 자신이 사회적으로 엉뚱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걱정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말의 진위보다 관계가 매끄럽게 흘러가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진심은 침묵 속에
우리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이유는, 반드시 거짓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지키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배려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모른 척’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은근한 기술일지도 모른다.
완전한 솔직함보다 적당한 눈치가 더 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는 사실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사회적 존재임을 잘 보여주는 증거다. 그러니 다음에 누군가 당신에게 “알죠?”라고 물었을 때, 당신이 고개를 끄덕였다면 그건 아마도 관계에 대한 당신 나름의 답일 것이다.
*참고논문
장기선. "체면과 조직 위기 커뮤니케이션." 국내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13. 서울
장서정. "체면 관련 전략 중심의 높임법 교육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017. 서울
김영욱,and 양정은. "체면, 소통 그리고 갈등해소: 체면-소통모델과 소통의 가능성 모색." 한국언론학회 심포지움 및 세미나 2011.5 (2011): 31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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