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새벽 안개가 들판을 감쌌다.
불에 그을린 나무들이 기둥처럼 서 있었고,
탄 냄새가 폐 속 깊이 스며들었다.
도윤은 전날 전투가 벌어졌던 마을로 다시 들어섰다.
철모는 무겁게 눌려 있었고,
총은 아직도 손에 남아있는 듯한 진동을 간직하고 있었다.
폐허가 된 골목 끝,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북한군 제복을 입고 있었다.
가슴팍엔 총탄 자국이 선명했고,
그 주변은 어제의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눈은 뜬 채로 굳어 있었다.
도윤은 발걸음을 멈췄다.
숨이 가빠졌다.
총을 쏘던 순간이, 머릿속에서 불쑥 되살아났다.
벽 너머에서 번쩍이던 총구.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을 때의 둔탁한 반동.
그가 쓰러진 건… 내 총알 때문일까?
도윤은 헛숨을 몰아쉬었다.
손끝이 떨리고,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목이 말랐지만, 물을 삼키면 토할 것 같았다.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세진이었다.
“왜 그래? 얼굴이 하얗다.”
도윤은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쓰러진 적군의 얼굴에서,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이를 보았다.
피부의 색도, 눈매도, 표정도.
다만, 다른 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적이 된 얼굴이었다.
“내가… 내가 죽였을지도 몰라.”
세진이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어깨를 툭 쳤다.
“그럼 어쩌겠어. 안 죽였으면 우리가 죽었을 거야.”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도윤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전쟁에서의 ‘살아남음’이, 어째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 걸까.
부대는 다시 이동 명령을 받았다.
마을을 빠져나가기 전, 도윤은 한 번 더 쓰러진 병사를 돌아봤다.
그 눈은 여전히 그를 따라오는 듯했다.
살아있는 자를 붙드는, 묵직한 시선.
걸음을 옮기면서도, 도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네 이름은 뭐였을까.”
작가의 말 :
5화에서는 전쟁 속 ‘살인’의 심리적 충격과,
그 이후 찾아오는 자기 정체성의 흔들림을 다뤘습니다.
이 장면은 앞으로 도윤의 행동과 생각, 인간성에 깊이 영향을 주게 될 사건이기도 합니다.
다음 화에서는 포위 속에서의 공포와, 목숨을 건 탈출 시도가 그려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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