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희
[한국심리학신문=이창희]
출처: 아트인사이트
고향의 의미는 무엇일까?
고향은 단순히 태어난 곳이나 자란 곳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그곳은 우리의 첫 기억들이 자리 잡은 공간이자, 무조건적 수용과 안전감을 경험했던 장소다. 어린 시절 형성된 안정 애착은 평생에 걸쳐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점이 되며, 고향은 바로 그 안정감의 물리적 토대가 된다.
현대 사회에서 고향의 의미는 더 복합적이다. 도시화와 핵가족화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향을 떠나 살아가면서, 고향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경험했던 관계와 감정에 대한 향수다.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이 임용고시 실패와 연인과의 갈등으로 지친 그녀가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택은 충동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심리적으로 매우 합리적인 결정이다.
출처: 아트인사이트
"배가 고파서 내려왔다"
그녀의 말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연명하던 각박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따뜻한 집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고향에서 혜원은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들을 하나씩 재현해 나간다. 시루떡, 크렘 브륄레, 감자빵을 만드는 과정은 대학 진학을 앞두고 홀연히 떠난 어머니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과 기억을 재정리하는 시간이 된다.
또한 어린 시절 친구들인 재하, 은숙과 다시 만나면서 혜원은 각자 다른 선택을 한 동년배들의 삶을 관찰한다. 서울에서 회사 생활에 지쳐 농사를 짓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재하, 반대로 도시로 나가고 싶어 하는 은숙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현재 상황을 되돌아보게 된다. 사계절을 고향에서 보내는 혜원의 여정은 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진정한 자아와 마주하는 시간으로 그려진다.
회귀 심리
출처: KBS 뉴스
존 볼비의 애착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린 시절 안정감을 제공했던 ‘안전기지’로 돌아가려는 심리적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본능적 욕구를 갖는다.
혜원이 서울에서 경험한 임용고시 실패, 남자 친구만 합격한 상대적 박탈감, 편의점 알바로 연명하는 불안정한 일상은 모두 심각한 스트레스 요인이었다. "편의점 도시락은 허기를 채울만한 음식이 아니었다"는 그녀의 대사는 그저 단순한 물리적 배고픔이 아니라 정서적 공허감을 말하는 것일 거다.
이런 상황에서 혜원의 고향 귀환은 볼비가 말한 안전기지 탐색 행동의 전형이다. 고향에 도착해 앞마당 배추로 배춧국을 끓이고, 다음날 수제비와 배추전을 만드는 행동은 과거 어머니가 제공했던 안정적 환경을 재현하려는 시도인 것이고 어린 시절 친구들인 재하, 은숙과의 자연스러운 관계 재개도 과거의 안전했던 사회적 관계망으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고향에 대한 향수
출처: 아트인사이트콘스탄틴 세디키데스는 그녀의 고향에 대한 향수가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설명해준다. 이 학자는 향수가 자아 연속성 강화, 사회적 연결감 증진, 실존적 의미 제공이라는 세 가지 핵심 기능을 수행한다고 밝혔다.
혜원이 어머니의 시루떡을 재현하는 과정은 자아 연속성이 강화되는 부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재하가 혜원과 어머니의 시루떡 맛 차이를 알아차리는 순간, 그녀는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연결하며 단절된 정체성을 회복한다.
은숙과의 갈등 해결에서는 사회적 연결감의 증진이 드러난다. 은숙의 직장 스트레스를 무심하게 대했다가 미안함을 느낀 혜원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줬던 크렘 브륄레를 만들어 도시에서는 하지 않던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 이는 향수가 관계 회복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보여준다.
어머니에 대한 감정 변화에서는 실존적 의미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홀연히 떠난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품고 있던 혜원이, 감자빵 레시피가 담긴 편지를 받으며 어머니의 선택을 이해하게 된다. 세디키데스에 따르면, 이런 향수적 경험이 개인에게 삶의 목적과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동력을 제공한다.
우리 모두의 고향
출처: TOPSTARNEWS
누구나 한 번쯤은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 어딘가를 의미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혜원의 선택은 낯설지 않다. 시험에 떨어지고, 주변 사람들과 비교되며, 하루하루 버티기만 급급한 일상에서 문득 ‘내가 무엇을 원하길래 이렇게 살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때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다.
볼비와 세디키데스의 이론이 증명하듯,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결코 퇴행이 아니다. 그것은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잊고 있던 소중한 관계들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과정이다. 혜원이 어머니의 레시피를 따라하며 조금씩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고, 친구와의 갈등을 따뜻하게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우리 모두 필요로 하는 치유의 시간을 보여준다.
결국 고향은 반드시 태어난 그곳일 필요가 없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진정한 나를 마주할 수 있으며, 소중한 사람들과 진심으로 만날 수 있는 모든 공간이 우리의 고향이 될 수 있다.
참고문헌
1) 김순희. (2021). 원자 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 소련 스파이 의혹 벗어. 한국심리상담센터.
(https://www.mykpcc.com/103/?bmode=view&idx=8159009)
2) 박경순. (2010). 존 보울비와 애착이론. 한국심리치료학회지.
3) 박은정. (2020). 일상의 상실을 애도하기 위한 목회상담연구: 존 보울비의 애착이론을 중심으로. 한국실천신학회.
4) Constantine Sedikides & Tim Wildschut. (2019). The sociality of personal and collective nostalgia. European Review of Social Psychology.
5) 조은정. (2024). 나를 알아가는 과정, ‘리틀 포레스트’. 아트 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2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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