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 못 받아들이는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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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 못 받아들이는 뇌 - 스토킹 범죄의 심리학적 메커니즘
  • 기사등록 2025-09-04 14:07:56
  • 기사수정 2025-09-04 14:5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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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한영빈 ]


일본 도쿄에서 40대 한국인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박모(30)씨. 일본 NTV 유튜브 캡처 

"헤어지자"는 말이 불러온 비극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한국인 여성 살해 사건은 단순한 우발적 범죄가 아니다. 피해 여성이 "헤어지자"고 말한 순간부터 가해자의 집요한 스토킹이 시작됐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패턴을 '거절 후 추적형 스토킹(Rejection-Based Stalking)'이라고 부르며, 가장 위험한 유형의 스토킹으로 분류한다.

왜 어떤 사람들은 "안 돼"라는 대답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그리고 이런 비극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거절이 뇌에게 주는 충격: 마치 물리적 고통처럼


심리학자 에이슬린 오코너(Eislin O'Connor)의 뇌영상 연구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할 때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위는 물리적 고통을 느낄 때와 정확히 동일하다. 전대상피질과 전측 섬엽이라는 부위가 활성화되면서, 말 그대로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이 과학적으로 증명된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이런 고통에 동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받아들이고 극복하지만, 일부는 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왜곡된 행동으로 이어간다.


특히 '거절 민감성(Rejection Sensitivity)'이 높은 사람들은 작은 거절도 극도의 위협으로 인식한다. 이들의 뇌에서는 위험을 감지하는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고, 합리적 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활동은 억제된다. 결과적으로 냉정한 판단 없이 감정에 휩쓸린 행동을 하게 된다.


스토커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 왜곡된 보상시스템


이번 사건의 가해자는 여성이 "헤어지자"고 한 후에도 계속 그녀 곁에 머물렀고, 경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접근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스토킹 범죄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신경과학자들은 스토커들의 뇌에서 도파민 보상시스템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상대방이 거절하면 도파민 분비가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스토커들은 거절당할수록 오히려 더 강한 집착을 보인다.


이는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 때문이다. 도박에 중독되는 것과 같은 원리로, 가끔씩 상대방이 보이는 작은 반응(문자 답장, 잠깐의 대화 등)이 더 큰 집착을 불러일으킨다. 뇌는 이를 '희망의 신호'로 해석하고, 더욱 집요하게 추적하도록 만든다.


통제욕과 소유욕: "너는 내 것"이라는 착각


스토킹 범죄의 핵심에는 상대방을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로 보지 못하는 왜곡된 인식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대상화(Objectification)'라고 부른다.


가해자는 피해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일본까지 왔는데",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데"라는 식의 사고는 상대방의 거절을 인정하지 않는 근거가 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권리의식(Entitlement)' 개념으로 설명한다.


특히 자기애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거절을 자신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인다. "나 같은 사람을 거절한다는 게 말이 되나?"라는 식의 사고가 분노와 보복심을 키운다. 이번 사건에서 가해자가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측 가능했던 위험신호들


사실 이번 사건에는 여러 위험신호가 있었다. 심리학자들이 스토킹 위험도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주요 지표들이 거의 모두 나타났다.


첫째, 폭력의 전력이다. 피해자가 경찰에 "며칠 전에는 폭력을 행사했다"고 신고한 것이 대표적이다. 연구에 따르면 스토킹 과정에서 한 번이라도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가 살인으로 이어질 확률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5배 이상 높다.


둘째, 경고 무시다. 경찰의 구두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접근한 것은 매우 위험한 신호다. 이는 가해자가 사회적 규범이나 법적 처벌에 대한 두려움보다 집착이 더 강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셋째, 거짓말과 기만이다. 가해자는 경찰에게 "오사카에 들렀다 귀국하겠다"고 하고는 실제로는 출국하지 않고 다시 피해자를 찾아갔다. 이런 계획적 기만은 단순한 감정적 충동이 아닌 의도적 범죄 행위임을 보여준다.


왜 시스템은 실패했는가: 경찰 대응의 한계


이 사건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경찰은 구두 경고를 하고, 피신을 권했으며, 심지어 가해자가 출국하는 것까지 확인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스토킹 가해자들의 행동은 일반적인 범죄자들과 다른 특성을 보인다. 그들에게 구두 경고는 오히려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경찰도 나를 막을 수 없다"는 식의 전능감을 키우기도 한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스토킹 사건에서 가해자를 물리적으로 격리하지 않는 한 위험은 계속된다. 접근금지명령, 전자발찌, 강제 입원 등의 적극적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피해자의 심리: 왜 도망치지 못했을까?


"왜 더 멀리 도망가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이는 스토킹 피해자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스토킹 피해자들은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을 경험한다. 아무리 도망가고 숨어도 가해자가 계속 나타나면, 뇌는 "어차피 소용없다"고 판단한다. 그 결과 적극적인 회피 행동을 포기하게 된다.


또한 '정상성 편향(Normalcy Bias)'도 작용한다. "설마 정말 나를 해치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으로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특히 과거에 연인 관계였다면 "그래도 나를 사랑했던 사람인데"라는 착각이 더해진다.


사회적 차원의 예방: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스토킹 범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가 대응해야 할 문제다. 몇 가지 중요한 접근법이 있다.


교육과 인식 개선이 우선이다. "끈질긴 구애"와 "스토킹"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NO는 NO다"라는 개념을 사회 전체가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건강한 연애 관계와 거절 수용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법적 시스템의 강화도 중요하다. 현재 많은 국가에서 스토킹을 단순한 경범죄로 취급하지만, 실제로는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범죄다. 초기 대응에서부터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피해자 지원 시스템의 확충도 필수다. 스토킹 피해자들은 단순히 물리적 보호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심리적 치료, 법적 지원, 경제적 도움 등 종합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위험


현대의 스토킹은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소셜미디어, GPS, 각종 앱을 통해 상대방의 위치와 행동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도 어떤 방식으로든 피해자의 동선을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스토킹은 피해자에게 "어디로 도망가도 찾아낼 수 있다"는 절망감을 준다. 이는 심리적 통제를 더욱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치유와 회복: 상처받은 마음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


이런 비극적 사건은 직접적인 피해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나아가 사회 전체에 트라우마를 남긴다. 특히 비슷한 경험을 한 스토킹 피해자들에게는 재외상을 줄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사건 후에 사회적 차원의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피해자를 기억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 행동을 취하며, 잠재적 피해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그 시작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거절할 권리"를 인정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관계를 거부할 수 있으며, 그 선택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이번 비극이 헛되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가 스토킹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주변의 위험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심리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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