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시간
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한국심리학신문=이영서 ]




손끝으로 기억하는 시간, 빠른 세상 속 작은 쉼표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 SNS, 인공지능에 둘러싸여 숨가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끝없이 울려대는 알림 소리는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고, 머릿속은 쉽게 피로해진다. 이 '디지털 피로(Digital Fatigue)'는 현대인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심리적 고통이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2024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은 23.1%에 달하며, 특히 청소년의 40%가 과의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밝혔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알림과 정보에 뇌가 지쳐 집중력이 떨어지고, 무기력과 정서적 불안이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빠른 세상 한복판에서 이상하게도 우리는 아날로그에 마음이 끌린다. "그때 그 노래"가 감성을 흔들고, 아이돌 굿즈 속 LP레코드판과 CD플레이어는 감정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인스티즈(좌: 에스파 CD플레이어, 우: 뉴진스 CD 가방 굿즈)


왜 노래와 굿즈에 마음이 반응할까?


90년대 가수들이 부른 '이젠 안녕'을 들으면 왠지 그 시절 첫사랑과 교실 풍경이 떠오른다. 그리고 요즘 아이돌 굿즈 중에는 옛 감성을 담은 LP 레코드판이나 CD 플레이어 굿즈가 인기다. 


국내 LP업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최근 주문량이 지난해 대비 두세 배 이상 늘었고, 20~30대가 전체 판매량의 40%가 넘는다"고 한다. 디지털에 가장 익숙한 세대가 오히려 아날로그를 찾는 이 역설적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이런 제품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다 함께 느꼈던 그 시절 감정을 다시 꺼내게 하는 '추억의 도구'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향수(Nostalgia)'라 부른다. 향수는 옛 기억과 감정을 되살려 현재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을 달래는 강력한 감정 회복제다.


아날로그 굿즈를 손에 쥐고, LP에서 들려오는 잡음 섞인 음악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잠시 디지털 속도를 멈추고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른다. LP 바늘이 긁히며 울리는 소리, 손글씨 편지의 고요한 질감은 디지털 소음에 지친 마음에 잠깐의 평화를 선사한다.


(우측 상단부터) 태연 《I》(LP ver.), 빅뱅 10주년 기념 LP ,아이유 《꽃갈피》 © 시사저널 임준선·sm엔터테인먼트·로엔엔터테인먼트·YG엔터테인먼트
출처 : 시사저널(https://www.sisajournal.com)


'내 손으로 만드는 시간'의 특별함


요즘 아이돌 팬덤은 편리한 디지털 음원 대신 직접 제작한 플레이리스트를 LP에 담아 소장한다. 팬들은 직접 굿즈 박스를 열고, 불완전한 밀봉을 뜯으며 '내가 만든 특별함'을 느낀다.


실제 아이유 팬 김모 씨(24)는 "디지털 음원도 있지만, LP로 들을 때가 훨씬 특별하다"며 "직접 레코드를 꺼내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내리는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경험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뉴진스 팬 박모 씨(21)도 "손글씨 편지를 쓰면서 오랜만에 내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며 "디지털 메시지와는 다른, 진짜 소통을 경험한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아날로그는 '나의 선택과 주체성'을 회복하는 시간이다.'내가 선택하고, 내가 만드는 경험'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SDT)의 핵심 요소인 자율성(Autonomy)과 통제감(Perceived Control)을 채워준다. 심리학의 자기결정성 이론은 우리가 자율성을 느낄 때 심리적 만족감과 행복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실제 경험에서 선택과 통제의 주체가 된다는 느낌은 삶의 행복을 높이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속도 대신 '온도'를 느끼는 시간


디지털 시간은 초 단위로 쪼개고 압축하지만, 아날로그 경험은 시간을 ‘질(quality)’로 살아낸다. 이는 책장을 넘길 때, 사진관에서 사진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 등이 ‘시간의 온도’를 회복하는 과정으로 작용되며 더 나아가, 마음 챙김과 정신적 회복을 촉진하며 현시점에 집중하고, 디지털 피로를 해결하는 심리적 쉼터가 된다.  이는 단순한 '느림'이 아니라 내면과 깊게 연결되고 재충전되는 소중한 시간이다.



거꾸로 가는 시간, 진짜 나를 만나는 길


'거꾸로 가는 시간'은 과거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다. 단순한 과거 회귀가 아니라, 빠르게 달리며 잃어버린 나의 리듬을 되찾고, 사람답게 숨 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빠르게 달리느라 잃어버린 내면의 리듬을 회복하고, 사람답게 숨 쉬는 법을 되찾는 과정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아날로그는 우리에게 잊힌 '마음의 고향'을 선물한다. 

속도에 밀려 숨 가쁜 일상 속에서도, 아날로그가 전하는 느림과 선택의 울림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진한 여운으로 조용히 퍼져나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진짜 나를 만나고, 잠시나마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1.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2024). 「2023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최종보고서. https://iapc.or.kr/mediaView.do?idx=28&article_id=ICCART_0000000113127&type=A1

2.한국일보. (2017.06.02). LP는 미래 산업… 국내 유일 공장 가보니.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06030473484439

3.한국일보. (2020.12.16). 국내 LP시장… 올해 판매량 1위는 백예린 1집.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0121615360004628

4.Ryan, R. M., & Deci, E. L. (2000). Self-determination theory and the facilitation of intrinsic motivation, social development, and well-being. American Psychologist, 55(1), 68-78. https://selfdeterminationtheory.org/

5.대한신경정신의학회. (2023). 마음챙김과 정신건강: 최신 연구 동향. 신경정신의학. https://www.knpa.or.kr/


  • ※ 심리학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에 방문해서 확인해보세요!

    ※ 심리학, 상담 관련 정보 찾을 때 유용한 사이트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심리학, 상담 정보 사이트도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재미있는 심리학, 상담 이야기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11105
  • 기사등록 2025-09-15 08:30:30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