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민
[한국심리학신문=오창민 ]
출처 : freepik
번아웃 vs 조용한 퇴사: 다른 얼굴의 같은 위기
대기업 인사팀에서 일하는 박과장은 최근 두 명의 팀원을 동시에 잃었다. 한 명은 장기 야근과 압박이 지속되던 중, 병원 진단서와 함께 “업무 소진(burnout)”을 이유로 긴 휴직을 선택했다. 다른 한 명은 명확히 퇴사 의사를 밝히진 않았지만, “월급만큼 최소한만 일하고, 더는 조직에 헌신하지 않겠다”며 조용히 거리 두기로 돌아섰다.
실제로 2024년 국내 HRD Korea 설문에서는 직장인 2명 중 1명이 번아웃을 경험했고, 2023년 뉴스1 보도에 따르면 MZ세대의 상당수가 “조용한 퇴사” 방식을 택했다고 답했다.
이처럼 번아웃이든 조용한 퇴사든, 겉으론 정반대지만 모두 ‘신뢰의 심리적 계약’이 깨진 순간 시작된다. 직원들은 “회사가 내 성장과 공정한 보상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릴 때 소진되거나 거리두기로 돌아선다. 두 얼굴의 이 위기를 HR은 단순 근태문제가 아닌 조직문화와 신뢰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번아웃: 열정이 소진될 때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을 국제질병분류(ICD-11)에서 공식적으로 ‘직업적 현상’으로 규정하였다. 번아웃은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나타나는 증후군”이며, ▲에너지 고갈(탈진) ▲업무에 대한 거리감 및 냉소 ▲직무 효율 저하라는 세 가지 핵심 특징으로 진단된다.
국내에서는 잡코리아 등 민간·공공 조사에서 직장인 10명 중 7명 가까이가 최근 1년 내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답하고 있으며, 특히 과도한 업무, 성과 압박, 관리 미비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번아웃은 정서적·심리적 에너지가 바닥난 탈진(energy depletion), 이어 냉소 또는 업무와 감정적 거리를 두는 태도(mental distance), 최종적으로 자신감·효능감 상실의 순서로 심화된다. 열심히 달리던 이가 더는 불태울 연료가 남지 않은, 조직에 대한 마지막 애착마저 꺼지는 ‘정서적 완소진’ 상태라 볼 수 있다.
조용한 퇴사: 침묵의 거리두기
‘조용한 퇴사’란 임직원이 공식 사직 없이 최소한의 계약된 업무만 수행하고, 추가 헌신이나 야근, 자기 희생을 조직이 요구하더라도 더 이상 내주지 않는 ‘심리적 거리두기’ 현상이다.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이 현상은 단순한 게으름이나 열정 저하가 아니라, 조직에서의 반복된 실망·공정성 위협·몰입 보상의 약화에 대한 심리적 자기방어 전략임이 실증적으로 드러난다.
전종희(2022)의 연구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조용한 퇴사’ 구성원은 주어진 업무(성과·평가)에는 충실하지만, ‘승진·참여·혁신’ 같은 추가적 기여는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특징을 보인다. 김정인(2022) 역시 “조용한 퇴사” 직원은 회사에 대한 애정이나 조직 신뢰를 크게 유지하지 않고, 최소한의 에너지와 시간만 투자하는 경향이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두 논문 모두, 최근 20~30대 청년층에서 회사에 대한 소속감보다 “자신의 삶, 워라밸, 성장, 심리적 건강”을 더 중시하는 가치관이 확산된 현상을 실증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전종희(2022)는 MZ세대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실증 연구에서, 조용한 퇴사 현상이 상사의 배려·지원 부족, 불공정 경험, 수직적·폐쇄적 조직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됨을 밝혔다. 이러한 요인은 공무원 집단, 간호직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동일하게 반복 확인되었음을 논문에서 명시하고 있다. 또한 김정인(2022)은 조용한 퇴사자의 심리적 거리두기와 조직문화의 관계를 분석, 배려 부족·불공정·폐쇄성이 몰입 저하와 연관된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연구들은 모두 “조용한 퇴사”가 현실에 널리 퍼진 현상이며, 조직이 실질적 몰입과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공식적 이직률 감소가 아니라 조직 생산성·혁신성 심화 악화를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두 현상의 공통점: 무너진 심리적 계약
다수의 국내외 조직심리 연구(전종희, 2022; 김정인, 2022)에 따르면, 번아웃과 조용한 퇴사는 서로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모두 “심리적 계약 위반(psychological contract breach)”이 근본 원인임이 밝혀졌다.
심리적 계약이란 급여나 근로계약에 명시되지 않으나, ‘공정한 보상, 개인 성장 지원, 신뢰와 존중’ 등 조직이 암묵적으로 약속한 기대를 의미한다.
임직원이 반복되는 불공정 경험, 과도한 성과압박, 진정성 없는 리더십을 체감하여 심리적 계약이 깨졌다고 인식할 때, 일부는 열심히 몰입하다가 결국 소진되는 번아웃을 겪고, 다른 일부는 아예 깊이 몰입하지 않는 ‘조용한 퇴사’로 자신을 보호하게 된다.
특히 한국적 맥락의 위계적·성과주의 문화는 심리적 계약 붕괴를 가중시키며, 이로 인해 조직 신뢰가 저하되면 공식적 퇴사율은 낮더라도 몰입 감소와 침묵의 이탈 현상이 조직 내에 만연할 수 있다고 연구들은 지적한다.
HR이 던져야 할 질문
최근 국내 인사행동 연구(전종희, 2022; 김광태 외, 2023)에 따르면, 번아웃과 조용한 퇴사는 단순 생리적 회복이나 근태 관리 문제가 아니라, “직원과 조직의 심리적 유대감 상실”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임이 반복 입증되고 있다.
‘공정한 보상체계’, ‘성장 기회 제공’, 그리고 무엇보다 ‘심리적 안전감’은 HR이 우선 구축해야 할 핵심 과제로, 조직 몰입, 창의성, 혁신 행동 등 긍정적 조직성과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MZ세대 등 신세대 인재는 회사와의 관계에서 ‘정서적 교류와 신뢰’, ‘공정성’이 결여될 때 심리적 거리두기와 몰입 저하를 보인다.
다수 연구는 HR이 번아웃 예방과 이탈 방지의 해법으로 단순 복지 프로그램이 아닌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보상, ▲개인의 성장 경로 설계, ▲심리적 안전감 조성 등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조직 신뢰를 회복·강화해야 침묵 이탈 현상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결국 HR의 역할은 직원들이 가진 잠재력과 열정을 신뢰를 바탕으로 최대한 끌어내는 토대를 만드는 것. 그래야만 ‘조용한 퇴사’와 ‘번아웃’이라는 침묵의 이탈 현상을 근본적으로 줄이고, 조직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혁신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결론: 다른 길, 같은 종착점
다수 국내외 조직심리 연구(전종희, 2022; 김광태 외, 2023)에 따르면, 번아웃은 한때 열정적으로 일해 조직에 몰입했으나 신뢰와 기대가 무너지면서 완전히 소진된 상태인 반면, 조용한 퇴사는 조직에 대한 애정과 몰입 자체를 애초에 갖지 않은 채 일과 거리를 두는 전략인 것으로 나타난다.
겉보기와는 달리 이 두 현상은 모두 조직에서 심리적으로 이탈한 침묵의 이탈자를 만들며, 이는 조직문화와 HR이 반드시 직면해 해결해야 할 본질적 과제로 지목되고 있다.
강제된 열정과 결과 밀어붙이기 중심의 조직 문화는 진정한 몰입, 창의성, 협력,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HR은 단순 복지나 교육, 동기 부여 수단을 넘어 직원이 신뢰 받고 자발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을 기반으로 한 신뢰 문화 조성, 공정한 보상과 성장 지원 체계를 설계·운영해야 한다는 점이 학계 및 현장의 일치된 견해다.
사람의 몰입과 신뢰를 지키는 것이 곧 조직을 장기적으로 보존하고 성장시키는 최선의 방법임을 다수 연구가 뒷받침하고 있다.
<출처>
조선일보. (2024.09.19). “의사 번아웃… 추석 넘겼지만 앞으로가 문제”.
https://www.chosun.com/national/welfare-medical/2024/09/20/PQSRL2RHXBDXPEMX67NCPFMA5M/
뉴스1. (2023.03.30). "연봉 2500만원 다 버렸다"…'조용한 퇴사' 선택한 MZ들 왜?"
https://www.news1.kr/society/general-society/4999374
연합뉴스. (2024.03.25). [그래픽] '조용한 퇴사' 인식 조사 결과.
https://www.yna.co.kr/view/GYH20240326001100044
동아사이언스. (2025.07.27). "직장인 번아웃, 기업에 경제적 손실 입힌다".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70318
World Health Organization. (2019). Burn-out an “occupational phenomenon”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https://www.who.int/news/item/28-05-2019-burn-out-an-occupational-phenomenon-international-classification-of-diseases
연합뉴스. (2019.05.28). WHO, '번아웃' 질병으로 분류.
https://www.yna.co.kr/view/AKR20190528116951009
뉴스스페이스. (2024.06.11). 직장인 10명 중 7명 '번아웃 증후군'…잡코리아, “. https://www.newsspace.kr/mobile/article.html?no=2418
동아사이언스. (2025.07.27). 직장인 번아웃, 기업에 경제적 손실 입힌다.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70318
전종희. (2022).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Quiet Quitting’(조용한 사직)의 특징과 개선 방안 연구.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2(12)
김정인. (2022). 조용한 사직에 관한 시론적 연구: 현상과 형성 원인을 중심으로.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2(11)
오현수. (2024). 직무불안정과 성과보상연계성이 조용한 사직에 미치는 영향: 심리적 계약 위반의 매개효과, 개인주의의 조절효과. 조선대학교 대학원 논문.
문세연. (2022). 기업 근로자의 심리적 안정감에 관한 메타분석. 조직과 인사관리연구, 46(2)
김광태, 이혜원, 손영우. (2023). 다차원적 조용한 사직 척도(MQQS) 타당화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산업 및 조직,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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