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예림
[한국심리학신문=고예림 ]
어렸을 때부터 내 취향은 확고했다. 무언가를 고르고 소비할 때마다 기준은 분명했다. 깔끔하고 담백한 것. 예를 들어 톤 다운된 차분한 남색, 때가 타도 상관없는 재질, 오래 쓸 수 있고 실용적인 물건들.
그런데 요즘은 이상하다.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귀여운 키링이나 인형 앞에서 발길이 멈춘다. 한때는 ‘쓸모없는 사치품’으로 치부하며 *취급하지도 않던 것들(내 친구가 내 모습을 보며 말했던 표현을 차용한다.)이 이제는 마음을 사르르 녹이고, 결국 지갑을 열게 만든다.
1974년 탄생한 몬치치 캐릭터가 현재 인기를 끌고 있다.나도 모르는 사이 내 취향은 넓어지고 있었다. 영원할 거라 생각했지만 결코 영원하지 않았다. 왜일까. 취향은 어떻게 변하는 걸까. 그리고 왜 사람들은 몬치치와 라부부 같은 ‘귀여움’에 이토록 열광할까?
영원한 취향은 없다.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뭔가요?”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세요?”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남녀가 상대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물을 법한 질문들이다. 답변 속에는 그 사람의 취향이 담겨 있고, 이는 곧 성격과 가치관을 드러낸다. 또, 상대방을 이해하기 가장 좋고 빠른 방법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평생 같은 답변을 하라는 법도 없다. 취향은 나를 구분 짓는 고유한 성격 같지만, 사실 심리학적으로는 끊임없이 변하는 속성을 가진다.
• 노출 효과
처음에는 혐오했던 노래에 빠져 샤워실 안에서 흥얼거리는 주인공/영화 "이지A"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란, 반복해서 접할수록 호감도가 높아지는 심리 현상이다. 영화 이지 A 속 엠마 스톤은 처음에는 편지 속 반복되는 노래에 인상을 찌푸리지만, 나중에는 샤워할 때 흥얼거릴 정도로 그 노래에 빠져든다영화 '이지A' 속 엠마 스톤. 즉,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음식이나 노래도 자주 접하다 보면 취향으로 굳어질 수 있다.
• 사회적 영향
우리는 취향을 스스로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의 자의적인 선택만이 순순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누군가에 의해 결정된 것일 뿐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또래 집단, 연인, SNS 트렌드가 취향을 이끌기도 하는 것이다. 수많은 회사가 유튜버들에게 유료광고로 자신들의 제품을 광고하는 이유가 여기에 숨겨져 있다. 원래 관심 없던 브랜드도 좋아하는 유튜버가 사용하면 호감이 생기지 않는가. 결국 취향은 ‘순수한 나만의 것’이라기보다 사회적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조정되는 결과물일 수 있다.
• 정체성의 변화
취향은 자아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본질적인 수단이다. 내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어떤 환경 속에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삶의 단계에 따라 취향도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취향을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10대에는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을 선호하다가, 나이가 들수록 잔잔하고 차분한 것을 찾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노스탤지어와 귀여움의 힘
최근 내 가방에 달린 키링만 봐도 앙증맞은 친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하나같이 귀여운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귀여움에 열광하게 된 걸까?
그 답은 노스탤지어에서 찾을 수 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로 ‘노스탤지어’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애순이 “노스텔지어도 모르는 섬놈에게 시집가지 않겠다”고 말했던 그 장면.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중 한 장면
깃발 -유치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고운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원래 이 단어는 17세기 스위스 의사 요한네스 호퍼가 고향을 떠난 군인들의 향수병을 가리키기 위해 만든 용어였다. 노스탤지어는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뜻한다.
내가 내 실속을 챙기는 게 이기적인 게 아니라 현명하다고 나 자신을 속여야 하는 사회에서 속에서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 곰 인형과 담요처럼 우리를 위로해주던 존재가 필요하다. 귀여운 인형과 캐릭터는 그런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며, 무의식 속 심리적 방어기제로 작동한다.
라부부뿐 아니라 진짜 같은 이빨을 장식한 영국 태생의 ‘퍼글러’, 1974년 일본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원숭이처럼 생긴 아기 ‘몬치치’, 자신의 반려견을 떠나보낸 슬픔을 캐릭터로 표현한 태국 아티스트 몰리의 ‘크라이베이비’, 하와이에서만 구할 수 있는 까맣게 탄 ‘태닝 키티’
이 모든 캐릭터는 어른들을 위한 ‘빙봉’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속 라일리의 상상 속의 친구 빙봉처럼, 성장하기 위해 떠나보내야했던 존재를 어른이 된 지금 다시 불러들인다. 우리의 가방에, 차키에, 책상 한구석 위에 말이다.
변하는 취향, 변하지 않는 욕구
취향이 변한다는 건 나라는 존재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귀여운 것을 찾는 마음도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어쩌면 지친 일상 속에서 나를 위로하고 연결감을 회복하려는 본능적인 선택일지 모른다.
결국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캐릭터가 아니라, 위로와 따뜻함이다.
*참고문헌
1) 박기웅·조정연(2010),현대소비사회에서의 취향과 유행의 상관성과 대중문화의 역할, 한국콘텐츠학회,10(2),165-175p.
2) 서천석, [인사이드 아웃] 우리 안의 빙봉이 중요한 이유, 아이즈, 2015.07.23.,https://www.iz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236
3) 최정윤, 지금 젠지알파 세대가 개성있는 귀여움에 홀릭된 이유, allure, 2025.09.16., https://www.allurekorea.com/2025/09/16/%ec%a7%80%ea%b8%88-%ec%a0%a0%ec%a7%80%ec%95%8c%ed%8c%8c-%ec%84%b8%eb%8c%80%ea%b0%80-%ea%b0%9c%ec%84%b1%ec%9e%88%eb%8a%94-%ea%b7%80%ec%97%ac%ec%9b%80%ec%97%90-%ed%99%80%eb%a6%ad%eb%90%9c-%ec%9d%b4/?utm_source=naver&utm_medium=partne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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