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예림
[한국심리학신문=고예림 ]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은 누군가의 마지막을 담담히 함께하는 이야기다. 상연은 세상과 이별하기 전 남은 시간을 은중과 함께 스위스에서 보낸다. 완벽한 여행, 평생 기억할 순간으로 하루를 채워간다.
드라마를 보는 순간, 최근 내 경험이 겹쳐 떠올랐다. 가까운 사람이 떠나는 날이 다가오면서, 마음속에는 이상한 압박이 생겼다. “이 시간을 망치면 안 돼. 싸우면 안 돼. 행복하게만 보내야 해.” 그렇게 다짐할수록 오히려 계획이 꼬이고, 작은 차질에도 더 예민해졌다. 드라마 속 은중처럼 담담히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이 경험은 단순한 이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상에서도 똑같이 작용했다. ‘오늘 하루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은 반복적으로 나를 붙잡았고, 결국 “오늘 하루를 망치면 안 돼!”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이 패턴은 완벽주의적 사고와 닮아 있다.
완벽한 하루를 맞이하는 태도
스위스에서의 사진을 남기는 은중과 상연/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상연이 안락사를 하루 앞두고 말한다.
“진짜 절대 안 자고, 내일은 해 뜨는 거 볼 거야. 내 마지막 태양에 인사해야지.”
이 대사를 듣는 순간, 나는 그 태양을 잘 보기 위해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나를 떠올렸다. 목표를 세우면 어떻게든 완벽하게 해내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나. 그런데 그 집착이 때로는 발목을 잡았다. 상연은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하루하루를 완벽하게 보내고 싶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순간을 있는 그대로 눈에 담고 싶었던 걸까. 나는 태양을 보기 위해 철저히 계획을 세우지만, 상연은 단순히 순간을 온전히 느꼈을 뿐일지도 모른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 심리학의 백곰 효과
“지금부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아마도 마우스가 잘못 눌려 이 기사를 읽게 되지 않은 이상, 제목을 읽은 순간 이미 머릿속에 코끼리의 모습이 그려졌을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오히려 더 생각나는 현상’을 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라고 부른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다니엘 웨그너(Daniel Wegner)는 1987년 실험에서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A그룹은 흰곰을 생각하라고 했고, B그룹은 흰곰을 절대 생각하지 말라고 지시받았다. 두 그룹 모두 흰곰이 떠오를 때마다 종을 치도록 했는데, 종을 친 횟수가 더 많았던 쪽은 ‘생각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B그룹이었다. 이를 흔히 백곰 효과(White Bear Effect)라고 한다. 즉, 이 실험이 보여주듯, 어떤 생각을 억누르려 할수록 오히려 그 생각은 더 강하게 떠오른다.
우리 일상 속 백곰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은 온통 ‘백곰’으로 가득하다. 다이어트를 결심할 때마다 “과자 안 먹어야지”라고 다짐하지만, 그 순간 머릿속은 과자의 이미지로 가득 차버린다. 시험이나 면접을 앞두고는 “떨지 말아야지”라고 중얼거릴수록 심장은 더 요동치고 손바닥에 땀이 난다. 연인과의 대화에서도 “싸우지 말아야지”라는 결심이 오히려 나를 예민하게 만들고, 작은 말에도 쉽게 상처받게 된다.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라는 부정적 명령은 우리의 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대상을 더욱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00하면 안돼”라는 생각 대신
그렇다면 이 역설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첫 번째는 부정어 대신 긍정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실수하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을 “차분히 말하자”로 바꾸면 마음속 긴장이 줄어든다. “오늘 하루를 망치면 안 돼”라는 강박 대신, “오늘의 즐거운 순간을 찾자”라는 목표를 세워보는 것도 좋다.
또 다른 방법은 마음챙김(mindfulness)이다. 떠오르는 생각을 억누르기보다 “아, 이런 생각이 스쳐가는구나” 하고 흘려보내는 태도를 가지는 것, 통제보다는 수용을 택하는 것이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인지 재구조화가 있다. ‘오늘 하루를 망쳤다’라는 흑백논리 대신, ‘아쉽지만 이런 순간도 있었다’라고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같은 하루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완벽한 하루를 좇는 마음을 내려놓고, 순간을 포함한 생각으로 채워본다. 부정적이거나, 당위를 담은 말은 우리가 불안하게, 긴장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마음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다른 것들을 해보자라는 생각을 가져보자. 우리 마음 속 코끼리가 자연스레 사라질 때 우리는 회복되어 있다.
*참고문헌
1) 백용매,정수하(2021). 사고억제가 강박사고에 미치는 영향. 한국심리학회지. 7권 1호.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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