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수
[한국심리학신문=정연수]

최근 심리학과 상담학계에서는 ‘진로상담’이 단순히 직업 선택의 기술적 과정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탐색하는 깊은 여정으로 확장되고 있다. 인하대학교 신주연 교수와 숭실대학교 김태선 교수의 연구 「진로발달과 영성: 국내외 연구 현황과 진로상담의 실제적 적용을 중심으로」는 바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진로발달 과정에서 ‘영성(靈性, spirituality)’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고찰한 논문이다.
연구진은 1997년부터 2017년까지의 국내외 학술지 81편을 분석하며, 영성이 진로발달과 진로결정에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다각도로 검토하였다. 이들은 특히 ‘소명(calling)’, ‘일의 의미(work meaning)’, ‘진로구성주의(career constructionism)’, ‘혼돈이론(chaos theory)’ 등 최근 주목받는 네 가지 진로발달 이론을 중심으로, 영성이 개인의 진로형성과정에 어떻게 내면화되고 구체적 상담개입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논의했다.
신주연·김태선 연구팀은 먼저 영성을 “신성하거나 자기 초월적인 무언가와의 연결에 대한 개인적 추구”로 정의하였다. 이는 특정 종교의 교리적 신념과는 구별되는 ‘세속적 영성’의 개념으로, 자신의 삶에서 의미와 목적을 탐색하는 내면적 성찰의 과정을 강조한다. 연구자들은 최근 세대, 특히 밀레니얼 세대가 종교적 소속은 약해졌으나 ‘삶의 의미’와 ‘존재 이유’에 대한 탐색 욕구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실제로 Pew Research Center(2015)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의 80%가 “우주에 대한 경이감”이나 “깊은 영적 평안”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는 상담 현장에서 ‘세속적 영성’을 고려할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통계다.
진로는 결국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일할 것인가”라는 실존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직업 선택은 단순히 흥미나 적성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목적, 가치관, 그리고 사회적 기여의식 등 영적인 요인들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진로상담자는 내담자의 영적 신념을 존중하며, 이 신념이 진로결정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탐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연구진은 제언한다.
연구는 진로상담에서 영성을 반영할 수 있는 대표적 이론으로 소명 이론(Dik & Duffy, 2009)을 꼽았다. 소명은 초월적 부름, 삶의 목적, 타인지향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특히 ‘초월적 부름’은 신의 부름뿐 아니라 사회적 요구, 혹은 운명적 사명감까지 포괄하며, 개인이 자신을 넘어선 존재와 연결될 때 진정한 진로의식이 강화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일의 의미’를 강조한 Steger와 Dik(2010)의 관점은 일을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닌 ‘삶의 목적과 연결된 자기실현의 장’으로 바라본다. 의미 있는 일은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 궁극적으로는 영적 성장에 기여하며, 이는 직업적 만족감과 심리적 안녕감으로 이어진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소명과 일의 의미를 자각한 사람들은 삶의 만족도와 직무 만족도가 모두 높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진로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잠재력을 이해하고 이를 사회적 필요와 연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진은 “진로목표와 삶의 목표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탐색하는 상담기법”을 제안하며, 내담자가 단순히 ‘무엇을 할 것인가’를 넘어 ‘왜 그것을 해야 하는가’를 질문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는 또한 사비카스(Savickas)의 진로구성주의를 통해 영성의 또 다른 측면을 조명했다. 진로구성주의는 진로를 ‘일하는 삶에 대한 개인적 이야기’로 이해하며,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 속에서 ‘의미’를 구성하도록 돕는 데 초점을 둔다. 이는 인간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자기 정체성과 삶의 방향성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으로, 영성의 핵심 가치인 ‘자기 성찰과 의미구성’과 긴밀히 연결된다.
한편, '혼돈이론(Bright & Pryor, 2005)'은 현대 사회의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강조하며, 우연한 사건과 변화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적응해 나가는 태도를 제안한다. 연구진은 이를 ‘복잡한 세계 속의 영적 통찰’로 해석했다. 즉,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기반해 방향을 잡을 수 있으며, 이러한 자기주도적 태도는 영적 성장과 진로적응성을 동시에 강화한다는 것이다.
연구는 영성을 진로상담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 전략도 제시했다. 우선, 상담자는 내담자의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되, 이를 특정 종교 틀로 해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내담자의 표현 속에 드러나는 ‘삶의 의미’나 ‘초월적 가치’를 민감하게 탐색하는 것이 중요하며, Pargament(2007)가 제시한 ‘암묵적 영성 평가(implicit spiritual assessment)’가 이를 도울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낄 때는 언제입니까?”와 같은 질문을 통해 내담자의 영적 차원을 간접적으로 탐색할 수 있다.
또한 연구는 FICA 모델과 HOPE 질문지를 변형하여 진로상담 상황에 맞게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예를 들어, “당신의 믿음은 진로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당신이 일터에서 느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와 같은 질문은 내담자의 영적 자원을 긍정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신주연·김태선 교수의 연구는 진로발달을 단순한 직업적 선택이 아닌 영성적 성장의 과정으로 바라볼 필요성을 제시한다. 일은 단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 그리고 더 큰 공동체와 연결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더불어 내가 여러 상담 현장에서 느낀 것은, ‘좋은 진로’란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진로의 방향은 타인의 기대나 외적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진정한 목소리’를 발견하는 데서 비롯된다. 청소년 상담 현장에서 만난 내담자들 역시 “무엇이 되고 싶은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를 말할 때 비로소 눈빛이 달라졌다. 그 변화의 순간은 늘 조용하지만, 자신에 대한 이해가 타인과 세상으로 확장되는 출발점이 된다.
상담의 언어로 영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종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를 회복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진로상담이 단순한 정보 제공이나 직업 탐색을 넘어, 내담자가 자신의 가치와 존재 이유를 탐색하는 ‘인간 탐구의 과정’으로 자리 잡을 때, 그 상담은 비로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경험이 될 것이다. 앞으로의 진로상담이 기술적 지도를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을 담는 방향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참고문헌
1) 신주연 , 김태선 (2017). 진로발달과 영성: 국내외 연구 현황과 진로상담의 실제적 적용을 중심으로. 상담학연구, 18(6), 257 - 280.
2) 최서윤, 최윤정. (2025). 진로 구성주의 기반 개인 진로 상담의 과정과 성과: 커리어-오-그램과 커리어 구성 인터뷰를 중심으로. 상담학연구, 26(3), 55-83.
3) 조혜련, 이제경. (2025). 진로적응모형에 기반한 진로집단상담 프로그램 개발 및 효과: 사범대학생을 중심으로. 상담학연구: 사례및실제, 10(3),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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