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민호는 새벽녘에 언덕을 내려왔다.
그의 어깨에는 낡은 군용 자루가 걸려 있었고,
그 안에는 편지와 약간의 식량이 전부였다.
뒤돌아보니,
안개 사이로 청년과 공동체의 불빛이 희미하게 번지고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그 불빛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속삭였다.
“지켜줘.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길은 길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험난했다.
무너진 다리와 불타버린 마을,
그리고 길가에 버려진 군복들.
민호는 그 모든 잔해를 지나며,
전쟁이 남긴 흔적을 온몸으로 느꼈다.
어느 마을 어귀에 다다랐을 때,
그는 낮은 신음소리를 들었다.
본능적으로 총을 들어 올렸지만,
그 소리는 총성이 아닌 울음이었다.
무너진 담벼락 아래에서,
한 여인이 아이를 품고 있었다.
그 여인은 피투성이였지만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로 속삭였다.
“제발… 이 아이만은…”
민호는 총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괜찮습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미 늦었어요.
하지만… 저기, 저 산 너머 해온리로 가세요.
그곳에… 사람들을 모으는 여인이 있어요. 이름이…”
그녀의 입술이 희미하게 떨리며 단어를 남겼다.
“윤… 희…”
그 말이 끝나자, 여인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민호는 그녀의 손을 붙잡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터져 나오는 듯한 고통이 일었다.
“윤희… 정말 살아 있는 건가.”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눈빛만큼은 확고했다.
그는 아이를 품에 안고 일어섰다.
“그녀가 있다면, 반드시 찾아야 해.
그리고… 이 아이도 그녀에게 데려가겠어.”
그날 밤,
민호는 불빛 하나 없는 산길을 걸었다.
하늘엔 별이 떠 있었지만,
그 길은 어둠뿐이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윤희, 들리나?
이름 없는 전쟁 속에서도,
내가 아직 너를 부르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품속에서 잠든 아이가 작게 숨을 쉬었다.
그 숨소리는 마치,
전쟁이 끝난 세상의 첫 맥박처럼 들렸다.
작가의 말 :
49화는 민호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전환점입니다.
그는 이제 단순한 생존자가 아닌,
잃어버린 사랑과 새로운 생명을 동시에 품은 ‘길 위의 인간’으로 변모합니다.
죽어가는 여인이 남긴 마지막 한마디,
‘윤희’는 앞으로 펼쳐질 운명의 재회와 진실의 실마리가 됩니다.
다음 화에서는 민호가 해온리로 향하는 여정 중,
전쟁 이후에도 여전히 인간의 본성과 도덕의 경계가 뒤엉킨 세계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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