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전쟁》 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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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온리의 아침은 유난히 고요했다.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며칠째, 

마을은 간신히 ‘숨’을 되찾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빛엔 여전히 피로와 불안이 서려 있었다.

청년 수혁은 마을 외곽의 폐허가 된 학교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손엔 낡은 무전기가 쥐어져 있었다.

민호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누군가를 지키는 게,

살아남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그날 이후, 민호는 돌아오지 않았다.

수혁은 그 말을 되뇌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마을을 지키겠다는 약속 하나로.

학교 안에는 아이들과 노인들, 

그리고 부상자들이 모여 있었다.

수혁은 불을 지피고, 

남은 식량을 나눴다.

그의 옆엔 간호사 출신의 여인, 

은주가 있었다.

그녀는 붕대를 감으며 조용히 말했다.


“민호 씨가 돌아올까요?”

“그럴 겁니다.”

“그분은 늘 약속을 지켰으니까요.”


수혁은 대답했지만, 마음 한켠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윤희의 쪽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녀가 목숨을 걸고 남긴 물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해온리로 낯선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마을 입구를 지키던 아이가 달려와 외쳤다.


“형! 군복 입은 사람들이 내려와요! 하지만… 깃발이 달라요!”


수혁은 즉시 총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왔다.

붉은 깃발 아래, 낯선 병사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군복은 낡았지만, 눈빛은 살아 있었다.

그리고 맨 앞에 선 인물이 천천히 헬멧을 벗었다.


“민호…?”

“그래, 나야.”


민호의 얼굴엔 피와 먼지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뜨거웠다.

그는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게 윤희가 지키려던 물자야.”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제… 이걸로 사람들을 살릴 수 있어.”


은주는 입을 막고 눈물을 흘렸다.

수혁은 가방을 열었다. 

안에는 의료품과 함께 한 장의 서류가 있었다.


‘해온리 임시 의료소 설립 계획서’


윤희의 글씨였다.

민호는 불빛 아래에서 조용히 말했다.


“이건 그녀의 마지막 유언이야.

우린 이 마을을 다시 일으켜야 해.”


그의 눈빛 속엔 슬픔과 결의가 함께 있었다.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은 모닥불을 피웠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눈물을 삼켰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화의 냄새’였다.


그러나 새벽녘,

멀리서 다시 포성이 울렸다.

하늘이 붉게 물들며, 민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총을 들었다.

그의 옆에 수혁이 섰다.

그리고 은주가 붕대를 묶은 손으로 두 사람의 팔을 붙잡았다.


“이번엔… 함께 싸워요.”


불빛이 세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 속에서, 윤희의 미소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녀의 신념은 살아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더 많은 이들의 신념이 되었다.




작가의 말 :

55화는 《이름 없는 전쟁》의 ‘희망의 서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윤희의 죽음이 남긴 신념이 민호와 수혁, 은주에게 이어지며

‘재건’과 ‘연대’라는 새로운 서사를 엿볼 수 있습니다.

다음 화(56화)에서는 해온리로 몰려드는 새로운 위협,

잔여 세력과의 충돌, 그리고 민호의 내면에 남은 죄책감이

심리적으로 폭발하는 장면이 그려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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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11-07 11: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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