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다미
[한국심리학신문=권다미 ]

결혼을 앞둔 남녀가 서로의 집안 내력을 꼼꼼히 살펴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연애 기간 상대의 성격과 습관은 어느 정도 드러나지만, 깊숙한 정신적 문제나 기질적 특징까지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그래서 아이 둘, 셋을 낳고 가정을 꾸린 뒤에야 배우자의 ‘이상한 성격’이 드러나 앞이 캄캄해지는 경우가 많다. 평소 점잖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난폭해지거나, 이유 없이 의심이 많아지고, 성욕이 과도하게 폭발하는 등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 변화를 설명할 때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이 바로 양극성 장애다.
사례 1) “결혼 10년 차, 남편이 돌변했습니다”
40대 주부 김 씨는 결혼 초반만 해도 남편을 자랑스러워했다.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모습에 믿음이 갔다. 하지만 아이 둘을 낳고 몇 년이 지나 자 남편은 이상하게 변했다. 회사 일에 자신감을 넘어서 허황된 꿈을 꾸더니, 대출을 받아 무리한 사업을 벌였다. 집안 반대에도 “내가 하면 무조건 된다”라며 고집을 부렸고, 결국 사업은 크게 실패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편은 술을 마시면 평소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아이들 앞에서 욕설을 퍼붓거나, 아내를 의심하며 휴대전화를 뒤지고, 밤에는 과도한 성적 요구로 갈등이 심해졌다. 나중에야 시댁 쪽에 양극성 장애 환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유전적 뿌리를 가진 ‘양극성 장애’
양극성 장애는 기분을 조절하는 뇌 속의 생화학 물질이 불균형을 이루면서 발생한다. 들뜬 기분과 과대망상, 충동적인 행동, 성적인 집착, 폭발적인 분노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문제는 이 질환이 높은 유전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부모 중 한 명이 환자라면 자녀 넷 중 한 명은 같은 질환을 지닐 수 있고, 부모 모두가 환자라면 자녀 절반 이상이 발병 위험을 안게 된다.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한 명이 발병하면 다른 한 명도 30~90%까지 함께 발병할 수 있다.
사례 2) “정숙했던 딸, 갑자기 임신 사실을 고백하다.”
상담실에 찾아온 한 어머니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착하고 얌전하던 딸이 어느 날 임신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 문제는 아기가 누구의 아이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짧은 기간 여러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진단 결과, 딸은 양극성 장애의 ‘과다 성욕’ 증상이 심한 상태였다. 가족은 그제야 친가 쪽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정신질환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유전과 뇌 기능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병이었다.
⁕ 삶을 뒤흔드는 파괴력
양극성 장애는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방치하면 개인의 삶은 물론 가족 전체가 흔들린다. 사업가가 근거 없는 자신감에 사로잡혀 무리한 확장을 하다 하루아침에 부도를 맞는다. 직장인이 분노 조절을 못해 난동을 부리다 해고된다. 성적인 충동을 제어하지 못해 무분별한 관계를 맺고, 원치 않는 임신이나 가정 붕괴로 이어진다. 겉으로는 에너지가 넘치고, 잠도 몇 시간만 자도 멀쩡하며, 술을 마셔도 쉽게 취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어느 순간 폭발하면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
사례 3)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아내”
30대 직장인 박씨는 아내와의 결혼 생활이 하루하루 전쟁 같다고 표현한다. 평소에는 유쾌하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아내지만, 어느 날은 이유 없이 화를 내며 접시를 던지고, 또 어떤 날은 새벽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돌아와 “나는 천재야”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남편은 아내가 잠을 거의 자지 않고도 멀쩡하다는 사실에 처음엔 감탄했지만, 이제는 그게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전문가 상담 결과, 아내는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았다. 남편은 “결혼 전 알았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 예술가와 영웅들의 그림자
역사적으로도 양극성 장애는 유명 인물들의 삶과 연결됐다. 18세기 낭만파 시인 바이런, 음악가 모차르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빛나는 창조성과 동시에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면모가 그들의 삶을 지배했다. 전문가들은 전쟁터에서 극단적인 행동을 보였던 영웅 중 일부도 양극성 장애를 지녔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 현대 사회에서의 발병 환경
학자들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1%가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 이보다 가볍지만,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순환성 기분장애’ 환자는 5~15%에 달한다. 특히 대도시처럼 스트레스와 경쟁이 많은 환경에서 환자가 많으며, 환경이 급변하는 군대에서도 흔하다. 계절적으로는 일조량이 늘어나는 봄철에 발병이 집중된다.
⁕ 원인과 치료
양극성 장애의 원인은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뇌 신경전달물질이 불규칙하게 분비되는 데 있다. 이를 교정하기 위해 약물치료가 가장 기본이다. 치료 비율은 약물 70~80%, 상담 20~30% 정도로 알려져 있다. 꾸준히 치료하면 1년 이내에 효과가 나타나지만, 중도에 치료를 중단하거나 재발하면 장기 치료가 필요하다.
⁕ 가정을 지키기 위한 경계심
결혼 전 ‘집안 내력’을 꼼꼼히 살피라는 옛 어른들의 말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다. 정신질환의 유전적 성향은 생각보다 강력하고, 가정의 안정과 자녀의 미래에도 깊이 영향을 미친다. 물론 환자를 낙인찍을 것이 아니라 조기에 발견해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만큼 가족력을 가진 힘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활력이 넘치고 명랑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술을 많이 마셔도 끄떡없고 몇 시간만 자도 쌩쌩한 사람일수록 더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겉모습의 활력이 언제 돌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조기 발견, 꾸준한 치료, 가족의 이해와 지지가 이 질환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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