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수
[한국심리학신문=정연수]

성폭력 피해는 청소년의 발달 과정 전반에 걸쳐 깊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본 연구는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고등학생 A를 대상으로 10회기의 임상미술치료를 적용하여 외상후스트레스 증상(PTSD 관련 증상), 정서 상태, 그리고 자존감의 변화를 질적 · 양적 자료로 다각도로 분석하였다. 특히 언어로 드러내기 어려운 외상 이미지가 미술 작품 속에 어떻게 표상되는지에 주목하여 치료과정에서의 심리 및 정서적 변화를 면밀히 탐색했다.
연구 대상 A는 반복된 집단 따돌림과 16세 시점의 성폭력 경험, 이어진 협박과 2차 피해로 인해 심각한 수치심·죄책감·우울·불안·수면장애 등을 겪고 있던 사례였다. 연구자는 경기도 소재 고등학교 상담실에서 2013년 3월부터 4월까지 주 2회, 회기당 60분씩 총 10회기의 임상미술치료를 실시하고 사전·사후의 뇌파 측정, 심리척도(BDI, SAIC, SES) 및 투사적 그림검사(HTP, KSD, KFD, SDS)를 병행하여 효과를 검증했다. 치료 프로그램은 난화기법, 자유연상, 점토작업, 콜라주, 스크래치 기법, 바느질 인형 만들기, 명함 디자인, 소망 열매 꾸미기 등 단계별로 구성되어 점진적 노출, 기억의 재통합, 정서 조절 능력 강화, 자기효능감 회복을 목표로 삼았다.
결과는 다각적 차원에서 일관된 긍정적 변화를 보여주었다. 뇌파 검사에서 주의지수·활성지수·정서지수 모두 유의미한 향상을 보였고, 이는 뇌의 각성 조절, 인지·행동 조절 능력 및 정서적 안정성의 회복을 시사했다. 심리척도에서는 BDI 점수가 심한 우울(39점)에서 가벼운 우울(15점)으로 감소하였고, 상태불안(SAIC) 역시 매우 높은 수준에서 정상 범주로 개선되었으며, 자존감(SES)에서도 부정적 문항의 감소와 긍정 문항의 증가가 관찰되어 자아존중감의 회복이 확인되었다. 투사적 검사 결과는 더욱 풍부한 치료 내러티브를 제공했다. 초기의 집·나무·사람 그림은 상흔과 과민성, 사회적 소외와 방어적 태도를 드러냈으나, 치료 후에는 울타리가 사라지고 튼튼한 나무와 긍정적 자아상으로 변화하는 등 심리적 안정성 및 대인관계 회복의 징후가 나타났다. 학교와 가족을 주제로 한 그림들에서도 소외감이 해소되고 소속감과 관계 개선 의지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회기 과정에서 얻은 질적 자료는 임상미술치료의 치료적 기제를 잘 보여준다. 난화 · 스크래치 · 점토와 같은 감각적·촉각적 재료는 외상 기억을 직접적으로 재현하지 않으면서도 안전한 거리에서 감정을 표출하게 했고, 콜라주와 인형 만들기 과정은 분노 · 수치심 · 혼란된 성 개념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해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재구성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도왔다. 특히 ‘미래의 나’ 명함 디자인과 ‘소망 열매’ 활동은 자기효능감과 희망의 구체화를 돕는 단계로서 자존감 향상에 직결되는 역할을 했다. 치료 초기의 회피 및 의존적 자기표현은 점차 현실적인 자기인식과 건강한 관계 지향성으로 전환되었다.
본 연구는 단일 사례 연구라는 한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상미술치료가 성폭력 피해 청소년의 외상 후 증상 감소와 자존감 회복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음을 다층적으로 입증했다. 특히 뇌파와 표준화된 심리척도, 투사적 검사 및 회기별 작품 분석을 통합한 혼합방법적 접근은 미술치료 효과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단일 사례로부터의 일반화에는 주의가 필요하며, 다양한 연령·피해 유형 ·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진 다수의 사례를 포함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임상 및 정책적 제언으로는 첫째, 학교 상담실 및 지역사회에서 임상미술치료를 포함한 감각적·표현적 치료 접근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둘째, 치료 종료 후의 장기적 사후관리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치료 효과를 유지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학교·가족·지역사회 기관 간 연계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셋째, 임상미술치료의 표준화 및 효과 검증을 위한 대규모 연구가 축적되어야 한다. 이는 교육정책 차원의 지원과 함께 전문 인력 양성, 장비 및 공간 확보를 통해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임상미술치료는 언어적 표출이 어려운 성폭력 외상의 심리적 상처를 안전하게 시각화하고 통합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감소와 자아 회복을 촉진하는 유효한 개입법이다. 본 사례는 미술매체의 치료적 잠재력과 더불어, 대상자의 회복을 지속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의 중요성을 함께 시사한다.
연구 내용을 보며, 임상 현장에서 "언어 이전의 감정"이 얼마나 강력하게 남아 있는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특히 외상 경험을 가진 청소년은 말보다 그림에서 더 솔직해진다는 점이 실습을 통해서도 경험적으로 확인되었던 부분이라 깊이 공감된다. 또한 미술 매체 하나하나가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치료적 ‘접근 통로’임을 다시 확인하게 했다. 상담자로서 중요한 것은 기법 이전에, 그 매체를 안전한 공간 안에서 다룰 수 있도록 돕는 태도와 관계라는 점이 더 크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는 앞으로 성폭력 피해 청소년을 돕는 임상미술치료 프로그램이 얼마나 더 정교해질 수 있는지 방향성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자료라고 느꼈다.
참고문헌
1) 추경진. (2013). 성폭력피해 청소년의 외상 후 스트레스 감소와 자존감 향상을 위한 임상미술치료 사례연구 [석사학위논문, 차의과학대학교].
2) 정명선. (2012). 성폭력으로 인한 PTSD 아동의 외상중심 미술치료적 접근을 통한 사례연구. 특수교육재활과학연구, 51(3), 9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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