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희
[한국심리학신문=이창희]
출처: 뉴닉
"가방에 키링이 없으면 허전해요."
언어 정보학과에 재학 중인 박 씨는 매일 아침 오늘의 옷차림에 어울리는 키링을 고르고 외출에 나선다. 깔끔한 무채색 옷을 입을 땐 금속 키링을,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셔츠를 입을 땐 귀여운 인형 키링을 선택한다. 박 씨의 가방에는 늘 3~4개의 키링이 달려 있다.
1922년 미국 발명가 새뮤얼 해리슨에 의해 등장한 열쇠고리가 원래 키링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도어락이 보급되면서 본래의 기능을 잃어가던 이 100년 된 물건이 지금 Z세대의 필수 아이템으로 재탄생했다. 이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Z세대에게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 그날의 기분까지 표현하는 비언어적 언어가 됐다.
GS 리테일에 따르면 캐릭터 상품을 주 1회 이상 소비하는 Z세대는 약 40%에 달한다. 엠브레인·트렌드 모니터 조사에서는 콜라보 상품이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응답이 79.6%에 이르렀다. 이처럼 귀여운 캐릭터 하나가 소비자와 브랜드를 연결하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 동질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폭발하는 키링과 캐릭터 열풍
캐릭터 열풍이 본격화한 건 2022년이다.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를 활용해 키링 인기를 검색하면, 이 시기를 기점으로 검색량이 급증한다. 포켓몬빵 안에 든 띠부띠부씰이 SNS를 뜨겁게 달궜고, 편의점들은 앞다퉈 포켓몬, 산리오, 짱구 등 캐릭터 랜덤 키링을 출시했다. 2023년에는 디즈니, 춘배, 마루, 벨리곰 등의 캐릭터 팝업스토어가 열리며 열기가 확산했고,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이 흐름은 식품, 항공, 뷰티, 커피, 금융까지 전 산업으로 번졌다.
사례 1: 듀가나디 바나나우유
출처: WIKIFOODIE
빙그레와 CU가 협업한 '듀가나디 바나나우유'는 이 열풍을 상징하는 사례다. 아련한 눈망울과 무해한 표정의 강아지 캐릭터 듀가나디가 바나나우유 병에 등장하자마자 SNS에는 인증샷이 폭발했다. X(구 트위터)의 한 게시물은 7천 회 리트윗, 1.2만 회 좋아요 수를 기록했고 관련 피드가 자발적으로 생성되어 병뚜껑을 모아 키링으로 제작하는 DIY 콘텐츠까지 등장했다.
빙그레와 CU는 단순히 캐릭터를 얹은 게 아니었다. 병뚜껑 모양부터 라벨 타이포그래피, 상품 설명까지 철저히 듀가나디 기준으로 맞췄다. 딱 봐도 소장하고 싶은 병뚜껑, 귀여운 손 글씨체 문구, 팬덤 감성에 딱 맞는 상품 설명. 패키지 하나가 작은 팬 플랫폼처럼 작동했다.
사례 2: 팔도 디오니소스
출처: 고구마팜
팔도의 저칼로리 소스 제품 '디오니소스'는 제품명과 동일한 그리스 로마신화 속 디오니소스를 앰배서더로 선정했다. 지난 2월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인스타그램 게시물에는 좋아요 5,000개, 댓글 600개 이상이 달렸다. 평균 200개 정도였던 기존 게시물과 비교하면 폭발적인 반응이다.
핵심은 추억이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10년 이상 베스트셀러였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MZ세대 모두에게 익숙한 콘텐츠다. 그런데 팔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출판사와의 논쟁으로 중간에 교체됐던 원작 작가 홍은영이 14년 만에 복귀해 협업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어릴 때 보던 캐릭터를 이렇게 다시 만나니 반갑다"라는 댓글이 쏟아졌다. 추억의 캐릭터가 다시 등장하자, 소비는 단순한 구매가 아니라 감정적 재회가 됐다.
캐릭터로 표현하는 나
출처: 이코노미스트대구대 박은아 심리학교수는 키링은 적은 비용으로 자기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가시성이 높은 물건이라며 유행에 동조하면서도 동시에 차별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건국대 김시월 소비자 정보학 교수는 캐릭터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거나 소속감 욕구를 일부 대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Z세대에게 키링과 캐릭터는 말하지 않아도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보여주는 신호 체계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을 캐릭터 스티커로 꾸미고, 카카오톡 테마를 개구리로 바꾸고, MBTI 키링을 가방에 다는 행위는 정체성 선언이다.
이 심리는 우선적으로 동조로 시작한다. 듀가나디가 뜨면 듀가나디를, 산리오가 인기면 산리오를 선택하면서 트렌드를 안다는 신호를 보낸다. 특히 같은 캐릭터를 공유하는 순간, 암묵적 동질감이 형성된다. 하지만 동조에서 끝나지 않고 약간의 차별화 심리를 가진다. 같은 산리오 캐릭터 안에서도 캐릭터 유형 중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나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마지막은 느슨한 소속감의 형성이다. Z세대는 진한 관계의 부담 없이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팔도 디오니소스 캠페인의 댓글 창에 달린 "어릴 때 보던 캐릭터를 이렇게 다시 만나니 반갑다"는 댓글의 좋아요 수 가 높은 것은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2000년대 초반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을 읽었던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같은 시간을 공유했다는 동질감을 나누는 순간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Z세대에게 캐릭터는 그들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이며 유행에 동조하면서도 차별화 욕구를 충족시킨다. 이 모순적인 두 욕구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 바로 캐릭터 소비의 핵심 심리다.
내부 통제감 결핍과 보상 심리
박은아 교수는 더 깊은 메커니즘을 지적했다. 젊은 층의 취업난과 경쟁 심화로 자기 삶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청년들이 작은 놀이 요소에서라도 성취감을 찾으려 한다고 주장하며 내부 통제감의 결핍이 외부 통제적 행동으로 드러난 사례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취업은 될지 안 될지 모르고, 연애도 마음대로 안 되고,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편의점 앞 가챠(랜덤 뽑기) 기계 앞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천 원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무언가가 나온다. 원하는 게 나올 수도, 안 나올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선택한 행동이고 결과가 바로 나온다.
박 교수의 분석처럼, 캐릭터 소비는 불확실한 일상에서 작은 통제감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거창한 의미보다는, 소소한 선택과 즉각적인 결과가 주는 만족감이 Z세대에게 위로로 작용하는 것이다.
과도하면 독이 된다
김시월 교수는 캐릭터 소비의 과열 양상에 경고를 보낸다. 또한 소비는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선택에서 비롯된 만큼 그 결과 또한 소비자가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캐릭터 소비가 과도해지면 가챠의 반복적 쾌락 추구로 인한 도파민 중독, 소액이지만 누적되는 과소비, 물건을 통한 연결이 진짜 관계를 대체하는 관계의 허상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건강하게 소비할 수 있을까?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의미 있는 소비인가 스스로 질문하라.
"왜 이 키링을 사는가?" 여행 기념, 좋아하는 작품 응원 등 서사가 있는 소비만 남기자.
둘째, 가챠 문화의 한계를 인식하라.
확률 게임임을 명확히 알고 예산을 설정하자. 얻지 못했을 때의 아쉬움을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진짜 관계와 물건을 통한 소속감을 구분하라.
캐릭터는 관계를 시작하는 매개일 뿐, 관계 그 자체는 아니다.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진짜 연결을 만들자.
캐릭터는 언어, 그 언어를 쓰는 건 나다
출처: 제미나이 생성캐릭터 열풍은 Z세대가 자신을 표현하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됐다.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작은 성취감을 얻고, 느슨하게나마 누군가와 연결되고, 나만의 취향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 그 모든 게 귀여운 캐릭터 하나에 담긴다.
문제는 캐릭터 자체가 아니라 과도함이다. 내가 캐릭터로 나를 말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가 나를 대신 말하게 만들 때, 가방에 매단 키링이 나를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나 자체가 되기 시작할 때, 우린 잠시 멈춰야 한다.
캐릭터는 언어다. 하지만 언어는 도구일 뿐, 나 자신은 아니다. 가방에 매단 키링 하나로 오늘의 기분을 표현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그 언어를 선택하고, 사용하는 것은 결국 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참고문헌
1) 강승희. (2025), 귀엽고 무해한 것들이 사랑받는다. 캐릭터 마케팅. BrandBrief.
2) 임승하. (2025), 100년 된 열쇠로기, Z세대의 트렌드 아이콘 되다. Channel PNU.
3) 마케팅레시피 (2025). Z세대, 브랜드보다 캐릭터 콜라보에 빠졌다 듀가나디부터 산리오까지. 마케팅 레시피.
4) 오피니언 뉴스. (2024). “귀여워야 산다” MZ세대 겨냥 캐릭터 마케팅 활발. 오피니언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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