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호
[한국심리학신문=김연호]
집 앞에서 만난 예술이 내 마음에 남긴 것
- 우리동네MG갤러리와 고재권 작가 전시를 다녀와서
고재권 작가 실제 전시 작품. (MG새마을금고우리동네갤러리 제공)
집 앞을 천천히 걸어 나가면 도착하는 작은 갤러리 하나.
늘 금융업무를 보던 공간의 일부가 예술을 품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공간은 전혀 다른 결을 품기 시작했다. 우리동네 은행에서 열린 유명 서양화가 고재권 작가의 전시는 일상 속에 갑자기 스며들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온기, 그리고 사랑〉은 그릇과 항아리 같은 익숙한 사물을 통해 인간의 정서를 환기시키는 작품이었고,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한 예술의 경험은 생각보다 깊고 개인적이었다.
그날의 감각을 따라, 예술이 우리 마음에 어떤 변화들을 일으키는지 천천히 되짚어 보고자 한다.
심리학에서는 실제 공간에서 경험하는 시각적 자극이 몰입(flow) 상태를 쉽게 촉진한다고 말한다.
갤러리의 조용한 온도, 조도(照度), 벽의 질감, 그림에서 반사되는 빛까지 모든 요소가 감각을 집중시키며 작품과 '일대일 관계'를 형성하게 만든다.
고재권 작가의 작품은 특히 입체감 있는 그릇 표현과 부드러운 음영, 그리고 정적·고요한 화면 구성 덕분에 관람자가 그림 속 '공간'에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했다. 사진이나 화면으로 보는 것과 달리, 실제로 마주 선 작품은 "그릇 앞에 서 있는 나"라는 공간적 감각을 강하게 만들었다.
이 현장성은 작품을 단순히 보는 것에서 느끼는 것으로 확장시키는 중요한 관찰 경험이었다.
예술 경험의 장벽을 낮추는 데 가장 큰 요소는 실제로 ‘거리에 대한 심리’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홀(E. Hall)은 우리가 공간적 친밀감을 느끼는 범위를 proxemics(프록세믹스)라고 불렀는데, 그 범위 안에 들어오는 것만으로 상대적 안전·호감·친근감을 느끼기 쉽다고 설명한다.
동네 전시는 바로 그 친근함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 '멀리 있는 미술관'이 아니라 '집 앞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장소'라는 점은 예술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거의 없애 준다.
가는 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입장료 부담이 없으며, 짧은 산책처럼 편하게 들를 수 있고, 작은 공간이 주는 친밀함.
고재권 작가의 따뜻한 그릇 그림이 이 공간 안에서 한층 더 친근하게 느껴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의 접근성은 물리적 거리와 매우 정확하게 맞물려 있다.
심리학에서는 미술 감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심리적 효과를 정서 조절(Emotion Regulation) 및 심리적 안정으로 설명한다.
고재권의 작품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은 크게 세 가지였다.
정서적 안정감 : 부드러운 곡선과 절제된 색감은 ‘안정’을 상징한다. 항아리나 그릇의 형태는 커다란 공간을 담아 내는 '포용'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회복과 휴식 : 작가의 작품은 어떤 방식으로든 '쉼'의 구조를 가진다. 정물의 침묵, 여백의 넓이, 부드러운 빛감은 감각적 휴식을 유도한다.
기억과 감정의 회귀 : 그릇이라는 사물이 가진 상징성은 강하다. 집, 가족, 식탁, 온기의 경험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하며, 이러한 기억의 환기는 심리학적 용어로 자기 회복(self-soothing) 기능을 한다.
결국 미술은 우리의 감정 상태를 조절하고, 잠시 멈춰 서게 하고, 내면 깊숙한 층위의 감정들을 꺼내보게 하는 '심리적 장치' 역할을 한다.
우리가 어떤 작품을 보고 "알 것 같다", "이해가 된다"고 느끼는 순간은, 심리학에서는 인지적 친숙성(Perceptual Fluency)이 작동한 것으로 본다.
고재권 작가가 선택한 그릇·항아리·백자 같은 소재는 한국인의 일상과 역사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온 사물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어려운 추상화처럼 해석을 요구하는 그림이 아니라, "알고 있던 무언가가 예술이 되었을 때의 감동"을 선사했다. 예술 감상은 결국 '아는 것을 새롭게 이해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이 관람자에게 미적 쾌감, 정서적 안정, 자기 이해를 제공한다.
고재권의 ‘온기, 그리고 사랑’이 일상에서 느끼는 따뜻함과 기억을 담아내듯, 동네 갤러리 역시 지역의 삶·정서·문화에 자연스럽게 닿는 예술 플랫폼을 만들어낸다.
두 존재는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예술이 삶 속으로 들어오고, 삶이 예술을 통해 다시 설명되는 구조. 그 속에서 주민들은 '예술을 어렵게 느끼는 관람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기억을 통해 작품을 다시 만드는 참여자'가 된다.
결국 고재권 작가의 만남은 예술이 특별하지 않아도 좋고, 멀지 않아도 좋으며, 우리 삶 가까이에 놓여 있을 때 가장 깊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집 앞에서 경험한 작은 전시가 오히려 오래 남는 이유일 것이다.
갤러리 주소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성지로 90 (우리동네MG갤러리 초읍점)
*참고문헌*
정성희. Story를 중심으로 한 통합적 예술 활용 방안 연구. 한국연구재단. 2016
에드워드홀. 문화 인류학. 한길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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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