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현
[한국심리학신문=엄정현]
고통과의 관계 :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
<고통 없는 사회>, 한병철[3].
“네가 고통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말하라. 그러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에른스트 융어의 이 구절은 우리와 고통 사이의 관계가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를 말해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통은 단순히 의학적인 통각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되려 고통은 우리 사회가 우리에게 자신의 특성에 대한 정보를 담은 암호이다.
오늘날 우리는 고통에 대한 전반적인 두려움에 지배당한 채로 살아간다. 피동을 사용한 것 때문에 폭력적으로 느껴지는가? 바꿔 말하면, 우리는 일상에서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 부던히 노력한다. 그 심리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이다. 이런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모든 것을 배척한다. 대표적으로 우리는 “중립기어”를 자주 “박는다.” 물론 이 말에는 “명확한 사실관계와 근거의 파악이 이뤄질 때까지 내 판단을 유보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기도 하지만, 마음의 더 깊은 곳 어딘가에는 “내가 어느 한 주장을 채택했을 때 따를 논쟁과 갈등이 야기할 고통을 회피하겠다”는 심리가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고통을 두려워하기에 이를 회피하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약물 사용, 그다지 다른 맥락은 아니다
위와 같이 모든 부정적인 요소를 떨쳐내고자 하는 사회를 ‘긍정성의 사회’라 한다. 이 긍정성의 사회에서 심리학 또한 이러한 사회의 정신을 따라서 평안과 행복, 낙관주의를 다루는 ‘긍정심리학’으로 변모한다. 부정적 생각은 피해야 하고, 즉시 긍정적인 생각으로 대체해야 한다. “트라우마 뒤에 오는 성장,” 결국 모든 초점은 트라우마라는 부정적인 요소를 떨쳐내고, 성장이라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대체하는 데에 있다.
오피오이드 사태는 위와 같은 우리 사회의 숨겨진 면을 잘 드러낸다. 마약성 진통제는 본래 진통의학에서,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투여되는 약품이다. 하지만 원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약품이 건강한 사람에게도 투여될 수 있도록 두는 것은, 고통을 회피하려는 시대정신 하에서만 가능하다.
고통 없는 삶이 당연해진 삶, 그리고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 삶, 우리의 모습과 꽤나 비슷하지 않은가?
행복하라는 명령
고통과 같은 부정적인 요소를 제하려는 사회에서 행복하라는 명령이 그 자리를 채운다. 물론 매우 민감한 부분일 수 있으나, 우리의 심리를 이런 관점에서 한 번 관찰하고 이해해볼 필요도 있다. 우리는 우리가 자유로운 줄 알고, 외부의 강제가 전혀 없음에도 우리의 ‘자아실현’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우리를 ‘착취’한다.
사회적 상황과 같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파고드는 대신 그저 우리 스스로에게만, 우리 자신의 심리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도록 명령한다. 우리의 고통이 사실은 사회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사회에 관심을 갖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지니 결국 개선되어야 할 것은 사회의 상태가 아니라 우리 ‘영혼’의 상태가 된다. 행복은 사적인 문제가 되고, 없어진 줄 알았던 고통이 다시 내 삶에 생기면 그 고통은 내 개인적인 실패에 기인한 결과로 해석된다. 우리는 이미 사회적 상황을 비판적으로 파고들 줄은 모르게 되었고, 그렇기에 사회를 변혁시키는 혁명은 없어지고 개인의 우울만 남는다.
끝내 행복해지지 못하고 연약해지기만 한 당신에게
당신이 삶에서 마주하는 고통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어려운 시기는 강한 사람을 낳고, 강한 사람은 좋은 시기를 낳는다. 좋은 시기는 나약한 사람을 낳고, 다시 나약한 사람은 어려운 시기를 낳는다”고[1].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의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고통을 마주했을 때, 우리 스스로를 지탱해주고 방향을 제시할 유인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끝내 고통을 감내하는 기술을 상실했다.
고통이 오로지 의학과 약학으로 다뤄야 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지금, 당신에게 고통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는 삶’은 인간적인 삶인가? 삶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삶 자체가 사라졌음을 보게 된다. 한편 고통은 죽음을 포함하는데, 죽지 않는 삶, 고통이 없는 삶은 과연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것을 “좀비의 삶”이라 표현한다[2].
출처
1. G. Michael Hopf > Quotes [goodreads]. https://www.goodreads.com/author/quotes/7033825.G_Michael_Hopf
2. 한병철. (2021). 고통 없는 사회. 김영사
3. 고통 없는 사회 (한병철) 2 [Naver Blog]. (2021). https://blog.naver.com/ubi0/22248938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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