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가까워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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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가까워지는 시간 - 마음의 온도가 높아지길 기도합니다, - 아멘
  • 기사등록 2026-01-28 08:42:06
  • 기사수정 2026-02-04 14: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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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수빈 ]


사진 제공 : 픽사베이

필자는 기독교이며, 여성입니다. 편향을 조장하기 위한 목적이기보다는 이러한 배경하에 존엄과 생명에 관한 개인의 생각을 글로 담아 표현한 점을 미리 밝혀둡니다.


탄생과 죽음은 순환적인 필연성을 가진다. 필자는 생명에 대하여 본능적인 보호와 사랑의 의미로서 결론이 아닌 기준 그 자체로 이해하고자 한다. 어디까지가 생명 존중의 시작이고 기준이 되는지 무 썰듯 단순하게 결론을 낼 수 없기에 포괄적인 맥락으로 접근해야 한다. 수정 직후와 일정 기간의 주수, 종교적 의미, 배우자의 사랑에 대한 부재와 보호, 모체의 건강 상태 등 구조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여성의 권리와 태아 생명권의 윤리적 문제는 역사 속에서 계속 논의되고 있다. 두 사람 즉, 사랑의 결실로서의 의미를 갖는 생명의 탄생은 사랑, 두 사람의 가치관, 환경적 자원도 같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 기준이 무너지면 존엄도 잃고 삶의 균형도 무너진다. 책임도 보호도 어떤 측면으로 단정 지어 접근하기에는 조심스럽다. 생명과 사랑은 그 자체이다.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생명의 탄생 이후에도 꾸준한 보호와 의식은 지속된다는 것이다. 


탄생과 죽음은 맞닿아있지만, 존재 인식에 대한 차이가 있다. 갓난아이는 엄마에게 젖 달라는 신호를 보내거나 울음소리를 내며 자신의 욕구를 본능적으로 강하게 드러낸다. 부모의 자유는 통제받지만, 아이의 귀여운 외모와 순수성에 부모의 입을 다물게 만든다. 부모는 시간에 따라 점차 자신보다 아이의 관점으로 접근하며, 소통하게 된다. 아이는 자라서 꿈을 갖기 시작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꿈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생존적 경험치를 꿈으로 포장했을 수도 있다. 개인이 가진 경험에 따라서 나름의 의미가 생기고 삶의 방향을 설정하게 된다. 어릴 적부터 특출난 재능을 알았다거나 확고한 목표 의식이 있었다면 수월하게 목표를 달성했을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노력은 성장의 증명이며, 부모의 지지와 지원은 아이의 삶 속에 기회를 넓혀줄 수 있다. 


깨지고 부서지기를 반복하다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누린다. 어떤 이는 이것을 청춘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는 정답이 없는 세상 속에 각자 나름대로 최고의 정답을 만들며 살아간다. 선택과 집중은 언제나 시간의 흐름을 따라간다. 중요한 결정은 선택과 집중의 결과가 반영된다. 더 나은 선택을 위하여 반면교사를 적용하다 보면 자기 말과 행동을 점검하는 데 도움받을 수 있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을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의식적인 결과이다.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뒤처진 것 같고 느리다고 생각했는데, 앞섰을 수 있다. 한치 예상할 수 없는 혼돈으로 정체가 생기기도 하며, 사회적인 정체성을 찾기도 한다. 필자가 정리한 청춘은 도전과 용기, 그리고 지고지순함을 붙드는 것이다. 부모도 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이 인생의 속도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청춘의 기억은 삶의 활력을 더하고 소중하다고 느끼는 가치를 차근히 헤아릴 수 있다.


우리는 삶에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채우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삶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기에, 가치관이나 노력에 따라 변화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작용한다. 그런데도 삶을 구성하고 만족하는 방식을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하게 된다. 삶은 지독하게 매 순간이 선택이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예비한 포괄적 시선이 필요하다. 도식의 관점에서 고민하는 시간은 자신의 취약성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이며, 타인과 교제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와 같다. 온전한 전진을 위해 자신만의 반응 양식을, 개인차를 고려하면서 가치 기준을 설계하다 보면 존중 의식을 높이고 깊은 내면을 어루만질 수 있다. 유연하게 결정을 좁혀나가면서 과거보다는 현재, 미래를 기반으로 한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현재는 할 수 있는 것들이 매우 많다. 


모든 사람은 가정을 이루는 삶을 선택하거나 삶의 주도권을 가지며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게 된다. 관계 안에서 배움을 확장하기도 하고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일상 틈틈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해서 안정을 느끼기는 경우가 있지만, 포기하는 삶에 익숙해서 엉뚱한 관계에 시간을 들여 더 큰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결혼도 독신도 어느 것이 명확하게 맞다고 할 수는 없다. 가치 기준에 따라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살 뿐이다. 어떠한 선택이든 남모를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을 알아간다.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면 뜬금없는 갈등을 유발하거나 억눌린 감정을 부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하여 주변 사람 혹은 자식의 마음을 다치게 만들기도 한다. 부모도 어느 순간 어른이 되었다. 부모가 어른으로서 완성형이었다고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 마음의 성숙도가 완벽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어려움을 갖고 산다. 어떻게 표현하는지 방법조차 몰라서 억눌린 감정을 서툴게 저항하다 보면 감정의 소진이 금방 찾아올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안온한 마음을 챙기며, 모든 일은 가장 좋은 선택이었음을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두 사람의 보살핌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랑도 있지만 어쩌면 한 사람의 보호만 있을 수도 있다. 정말 또 어쩌면 모두의 부재 시간 속에서 인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 존재에 대한 책임일지 부재에 대한 책임일지 아니면 부재로 둘지는 선택에 따라서 그 무게를 지니며 인생을 살아간다. 그럼에도 변함없는 진리는 생명은 소중하고 탄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귀하다는 것. 하나님은 믿음, 사랑, 소망 그중에서 제일은 사랑을 강조하였다.


필자 같은 경우, 어려운 결정이 따를 땐 가치적으로 큰 파이를 고려한다. 아 여기서 초코파이는 고려하지 않았다. 우리는 판단과 감정이 틀릴 때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유머라고 생각했는데 방금 초코파이를 괜히 적었나 싶은 것처럼 말이다. 피식 웃어주셨다면 다행히 성공이다. 확신이 들지 않을 때는 보편적인 기준과 조건을 고려해야 하며, 주변의 조언을 구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자기 마음의 방향이 가리키는 쪽일 것이다. 가치 기준을 세우는 과정은 혼란을 방지하는 지혜이다. 실패도 따른다. 그렇지만 자신만의 가치 기준을 세워두면 나로서 존재하는 방식을 시기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 별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가 성인이 되어서 마음을 어루만져 줄 때도 있고 어제까지만 해도 사랑을 말하던 남자 친구가 다른 마음을 품고 배신할 수 있다. 타인의 감정까지 설계할 수는 없다. 감정의 변화를 느끼고 가치 기준이 달라졌다면 과거가 아닌 현재의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 당장 쌓인 감정보다 더 큰 파이는 본질적인 사랑의 접근, 자신을 믿어주는 것, 그리고 오늘 하루가 클 수 있다. 


필자는 서로 마음이 통하는 상태가 여러 차례 반복되면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일 것이라 믿는 편이다. 다만, 가치관이 비슷하다고 해서,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사람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 가치관이 비슷하게 느껴지면 믿어보려는 의지가 생기겠지만 완전한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있는 그대로의 관점을 가져가되, 경계는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가치관이 비슷하면 마음의 단계를 배울 수 있다는 걸 발견한다. 믿어보는 것이 자신에게도 힘이 될 수 있다. 또 반대로 가치관이 다르다고 생각한 사람과 맞춰갈 때 힘을 얻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가치관이 다른 사람도 경계하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이 다칠 수 있다. 편견은 굳어지고 오히려 대립의 상황이 생겨 난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자신과 비슷한 가치관인지는 갈등의 상황일 때 명확히 보인다. 누구나 기분이 좋으면 하하호호 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갈등 상황을 겪어본 이후에 판단하는 것은 마음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서로를 돕고 갈등을 긍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함께하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진심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것도 어디까지 직감적인 능력과도 같아서 판단의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된다. 긍휼히 여기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긍휼히 돌보아 줄 것을 약속하셨다. 당신의 숨결도 평강으로 닿기를 소망한다.

 

인생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라 자신의 가치 기준을 점진적으로 다뤄야 한다. 성적이나 승진과 같은 큰 성과와 맞물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필자의 가치 기준을 놓고 보면 성과보다 더 큰 파이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성과는 시간 속에서 이뤄진 노력의 산물이며,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면 시험 장소도, 회사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성적과 승진은 2번째 순위이고 사실은 시간이 앞선다. 그 선택을 믿고 시간에 기대를 걸어보고 결정하는 노력의 지점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시간보다 더 큰 파이는 신뢰이다.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성적도 승진도 중요하지 않을 수 있고 시간이나 신뢰와 같은 가치를 아예 배제할 수 있고, 어떤 이는 벼락치기를 공부해서 목표 성적을 넘겨 시간이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어떤 가치에 의미를 부여함에 따라 인생의 가치관은 형성된다. 때론 감정보다 이성적 판단이 맞을 수 있고 어떤 순간에는 감정의 소통을 열어야 하기에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 경험과 지혜가 쌓이면 정답에 가까운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인생의 가치 기준을 정렬한다면 어느 정도는 변수에 대응하고 마음의 방향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가치들에 대해 오해를 본 것일 수도 있어서 세상에서 제시하는 보편적인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는 다르게 보고 바르게 가는 것이 맞는 선택일 수 있다. 이렇든 저렇든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인간관계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다가 우연히 댓글에 '사람을 난로처럼 대하라.'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가까이하면 데이고, 너무 멀면 추워지니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온도를 유지하라는 의미였다. 자신을 해치는 헌신은 세상과의 단절을 유도하기에, 공감이 됐다. 


누군가 당신에게 불친절하게 굴었다거나 함부로 대했다면 자신의 잘못으로 몰아가며 관계의 고통을 헤아릴 배려는 멈추었으면 한다. 관계는 두 사람이 함께 갖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을 몰아가기에도 애매한 마찰이 있지만, 안정된 선을 따라갔으면 좋겠다.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관점을 초점에 둔다.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작가인 질리언 튜레키는 말했다. "그 사람의 태도는, 그 사람의 그릇일 뿐이다." 오히려 그걸 깨닫는 순간 그 사람의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하면 인생의 주도권을 찾을 수 있으며, 놓아주는 방법을 알게 된다(인텔리전스, 2025). 용서와는 다른 시각이며,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는 훈련과 같다. 당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당신의 그릇도 빚어나가는 법이다. 반성과 통찰은 자기 성장의 핵심 요건이다. 변화무쌍한 자아는 자신조차도 가늠할 수가 없어서 겸손하게 자유를 다뤄야 한다. 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에서 삶을 관통하는 무아지경의 수단이 글쓰기라고 했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거나 삶의 무거운 짐이 느껴지면 글을 쓰는 작업에서 집중하는 것에 공감이 됐다. 글쓰기를 통해 삶에 어느 순간 꺼내볼 그 시절의 생각을 펼칠 수 있으며, 잘 모르겠을 때를 염두하고 적어둔 걸로 해결하며, 원하는 걸 얻는 것이 글쓰기가 될 수 있다. 메타 인지적 돌봄은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감정 역량을 끌어올린다(스테르담, 2026). 지나고 보니 누군가 모질게 말한다고 해서 기분 나쁠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감정에서 멀어지게 도와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의 파동의 간극을 대비하기 위해 경계의 말들로 지켜준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자유로워진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선과 악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 죽음은 아주 먼 것 같아도 당장 내일도 사고로 인해 어떻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생은 묘하게 책의 챕터와 닮았다. 다음 페이지를 넘길 힘을 내고, 읽으면서 내내 뱉고 들이쉬는 호흡과 내용에 집중하면서 마음의 양식을 기르는 것처럼 인생의 구간마다 가치를 넓히면서 말이다. 삶은 그런 것이다. 순간의 선택은 판단이 중요하지만, 어떨 땐 본능이, 때론 역설적인 관계에서 의외성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인생을 좀 더 살았다고 해서 다 아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부모가 아이를 지키는 것 같지만, 아이가 부모를 지킨 것일 수 있다. 양육은 기대와 내려놓는 과정이 반복된다. 부모의 원망 섞인 대화는 사실은 누군가로부터 마음이 덜 다쳤으면 좋겠기에 더 모질게 한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은 사실 꽃밭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말이다. 부모는 누구보다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본능적인 욕구를 두고 있다. 그러나 부모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이도 그렇다.


살아간다는 것은 숨 쉬고, 대화하고, 의미를 가지려는 시도


기사를 쓸 무렵 집 근처 커피 판매장에서 동네 할아버지들과 잠깐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동네 할아버지와 우연찮게 눈이 마주쳤다. 할아버지에게 기사 쓰는 걸 말씀드리자, 할아버지는 궁금해하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 나가셨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나이를 불문하고 각자 나름의 삶에서 어려움이 있고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주제로 종교 이야기도 해주셨다. 전부 흥미로운 주제였다. 할아버지도 시간 가는지 모르고 이야기를 늘어뜨리셨다. 대화의 막바지가 되자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질문하세요. 다음에 또 만나요. 

숙제. 화요일 오후 3시.”


이름도, 정확히 어디 사는지도 서로 모르는 상태였는데 말이다. 며칠이 지나고 작업을 할 겸 xx 커피 화요일 오후 3시 이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커피 매장에 갔었는데 정말 할아버지 두 분이 계셨다. 계산하시겠다고 카드를 내미셨지만 조금 기다리셨던 것 같아 서둘러 할아버지 두 분께 커피를 대접해 드렸다. 여유가 없을 때긴 했었지만 작은 호의는 값어치를 떠난 보물 같은 기억을 자신에게 선물하는 것이기도 하다. 할아버지께서는 손사래를 치셨지만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또 한 번 인사할 수 있었고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문득 할아버지가 마지막에 말씀하신 의미를 알 것 같았다. 할아버지에게 여쭤보았다. "죽음과 관련한 기사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삶의 죽음이 있다면 전할 문구가 있을까요?" 할아버지는 생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참된 고민의 시간을 가질 성경 구절을 전해주셨다. 


그들이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나이다 - 사도행전 24:15  


바르게 살지, 악하게 살지는 주어진 시간에 따라 고민하며 사는 것임을 강조하셨다.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은 인생을 만들어가는 가장 큰 프로젝트였다.


교회에서도 다른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교회 내 마련된 카페테리아에서 노트 필기를 열중하던 할아버지분이 계셨다. 화려한 넥타이에 중절모, 반듯한 자세로 글 쓰는 것에 열중이었다. 잠시 또 눈이 마주쳤는데 이내 피하셨다. 그 분에게도 혹시나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하여 여쭤보았다. 종교와 삶과 죽음은 어떤 식으로 풀이할 수 있을지 말이다. "할아버지, 제가 봉사로 글을 쓰고 있는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에 대해서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제가 겪어온 경험이 있지만, 제가 보는 시선이 있고 할아버지의 시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말을 적으면 좋을지 조언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할아버지는 흥미로운 주제라고 하시며, 잠시 멈칫하시더니 이내 말을 이어가셨다.


"안 보이는 걸 믿는다는 것은요. 영원하다는 걸 믿는다는 것은 영생을 얻는 것과 같은 것이지. 죽은 사자는 소망이 없는데 사람은 살아있기에 소망이 있고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선택해서 믿음을 갖는 것." 


뭔지 모르는 이상한 감정이 들었는데 눈물이 날 뻔했다. 감사 인사를 전했고 서로 미소 띤 얼굴로 고개인사를 했다. 다시 각자 할 일에 치중했다. 할아버지께서 머지않아 들썩이며 자리를 뜨려고 하시길래 고개를 떨구면서 다시금 인사를 건네려는데 동시에 할아버지께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주 유익했습니다."


흐뭇하게 다른 쪽을 바라보시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셨다. 목소리 톤은 낮고 대화 내내 정중하며, 따뜻했다. 품격이 느껴졌다.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시고 옆자리에 계시던 할머니 세 분이 궁금해하시더니 이번엔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뭐 쓰는 거예요, 글?" "네, 어떻게 살아갈지와 죽는 것에 대해 글을 쓰는 데 어렵게 느껴져요. 할아버지께 조언을 구했는데 성경 구절을 알려주셨습니다."


"읽어줄래요? 잘 안 보여."


"순간순간 선택하면서 살아. 예수를 믿지만 때로는 악한 생각을 하면서 미워할 때도 많아. 그래서 말씀을 듣고 내가 이런 건 나쁜 거 다 깨달아야 해. 순종과 찔리는 마음도 필요하다."


"가려진 선한 모습들만 보이잖아요. 나는 복지관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아리에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본색이 있어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


"하나님께서 우리 또 이야기하라고 뜻이 있나 보다. 우리 다음에 또 올게. 교구에 가야 해. 말을 계속하고 선포해야 해. 그리고 결혼은? 집에서 몇째야? 학생인 줄 알았어. 고등학생. 되게 어려 보여."


기사를 작성하면서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데 나이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다음이 있다는 것은 시간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정말 필요했다는 걸. 오늘은 하루 내내 교회에 있었다. 집에 돌아가면 푹 잠을 자야겠다. 


*참고 문헌 

1) Gawande, A. (2022). 어떻게 죽을 것인가 (리커버):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부키.

2) 인텔리전스. (2025). 용서가 없이도 자유로워지는 법 [Video]. YouTube. https://youtube.com/shorts/baXFzWKmRCM?si=QgX2oROU_i_fL2TC

3)스테르담. (2026). 무아지경의 글쓰기. PsyTimes.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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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1-28 08:42:06
  • 수정 2026-02-04 14: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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