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영
[한국심리학신문=송주영 ]
Robbers Cave 실험 중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흔하게 관찰할 수 있는 집단 역동은 바로 ‘갈등’일 것이다. 개인 간의 갈등을 넘어, 집단이라는 틀이 형성되는 순간 갈등은 더욱 쉽게 발생하고, 또 격화된다. 이러한 집단 간 간 갈등의 메커니즘을 살펴보기 위해 이번 시간엔 사회 심리학의 집단 갈등 연구의 고전으로 꼽히는 Robbers Cave 실험을 살펴보고자 한다.
Robbers Cave 실험
Muzafer Sherif가 주도한 Robbers Cave 실험은 집단 간 갈등과 협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연구다. 연구자들은 3주 간의 아동 여름 캠프 프로그램을 마련해, 성적, 가정환경, 교내 외 활동 등에서 비슷한 수준의 11세 남자아이 22명을 모집했다.
아이들은 ‘방울뱀(Rattlers)’과 ‘독수리(Eagles)’라는 두 집단으로 무작위 배정되어, 첫 일주일 동안 서로를 전혀 모른 채 분리된 생활을 했다. 각 집단은 자체적인 규칙을 만들고, 리더를 선출하며, 집단 이름과 상징을 중심으로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집단 내부의 구조와 응집성은 빠르게 강화되었다.
이후 연구자들은 두 집단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도록 만들고, 경쟁 상황을 도입했다. 아이들은 곧 상대 집단을 ‘그들’, ‘외부 사람들’, ‘저놈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상대와 시합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점차 경쟁이 격화되면서 상대 집단의 깃발을 도둑질하거나 불태우고, 숙소를 습격하거나 심지어는 신체적인 충동까지 발생했다.
주목할 점은 이 아이들 사이에 과거의 악연이나 개인적 갈등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단지 무작위로 집단에 배정된 뒤 경쟁 구조에 높였다는 이유만으로 갈등은 빠르게 심화되었다. 과연 무엇이 ‘우리’와 ‘그들’을 나누고, 이토록 강한 적대감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집단 간 갈등: 우리 대 그들
집단 간 갈등을 설명하기 위해 심리학자들은 다양한 이론을 제시해왔다. 대표적인 설명 중 하나가 현실적 집단 갈등 이론(realistic group conflict theory)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집단 갈등은 제한된 자원에 대한 경쟁으로부터 비롯된다. 갈등이 ‘현실적’일수록 외집단에 대한 적대적 관계는 심화되고, 내집단 동일시는 더욱 강화된다. 집단들은 자원 경쟁을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계층화된 사회에서의 불균등한 자원의 분배는 가진 집단과 가지지 못한 집단 간의 적대감을 심화시켜, 내집단에 대한 긍정적 애착을 강화한다. 사회정체성 이론은 자원 확보에서 상대적으로 열등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불평등을 거부하고 내집단의 긍정적 정체성을 발전시키려 노력할 수록 집단 간 적대는 더욱 격화된다고 설명한다.
Robbers Cave 실험에서도 이러한 양상은 분명희 관찰되었다. 아이들은 게임과 도전 과제를 통해 경쟁하며 영토와 음식 같은 자원을 두고 경쟁했고, 한 집단이 소풍 장소에 늦게 도착했을 때 이미 도착한 다른 집단이 음식을 모두 먹어버리는 상황도 발생했다. 이는 한정된 자원에 대한 경쟁이 곧 외집단의 손실을 전제로 한 이익 추구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환경은 외집단에 대한 적대적 태도와 공격적 행동을 자연스럽게 촉발한다.
한편 불연속 효과(discontinuity effect) 이론은 집단 간 상호작용이 개인 간 상호작용보다 훨씬 더 경쟁적이고 비협조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Wildschut와 Insko(2007)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통해 개인과 집단의 선택을 분석했다. 그 결과, 개인으로서는 협력을 선호하던 사람들도 집단에 합류하자 내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외집단의 이익을 감소시키는 선택을 더 자주했다.
실제로 상호작용 없이 3인이 독립적으로 게임을 진행한 개인들은 단 7.5%만이 경쟁을 선택했지만, 서로 상호작용하는 3인 집단에서는 경쟁 선택 비율이 36.2%로 급증했다. 특히 집단 대표자를 선출했을 때 경쟁성은 53.5%까지 상승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합으로 설명되지 않는 집단 고유의 역동이 있음을 시사한다.
어째서 단순히 ‘집단’이 되는 것만으로 이토록 경쟁이 심화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세 가지 주요 동기로 설명한다. 첫째, 사람들은 개인보다 집단을 더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상대 집단이 우리를 착취하거나 공격할 것이라는 불신과 공포는 집단 안에서 증폭된다. 둘째, 집단 구성원은 익명성을 빌려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유혹에 더 쉽게 빠진다. 셋째, 집단 동일시로 인한 내집단 편애와 집단 의무감은 내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일정한 비용이나 공격성도 정당화하도록 만든다. 또한, 내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이나 사회적 압박 역시 이러한 행동을 야기한다.
집단 간 편향: 우리와 그들의 인식
집단 간 갈등을 강화하는 또 다른 핵심 요인은 집단 간 편향이다. 특히 ‘우리’와 대비되는 ‘그들’의 인식은 두드러진 내집단 편향과 외집단 차별의 주요 원인이라 할 수 있다.
Robbers Cave 실험에서 방울뱀 팀의 Mills는 식당을 가는 길에 독수리 팀의 Craig를 만나자마자 즉각적으로 그를 ‘독수리 팀원’으로 분류했다. 이는 사회적 범주화(social categorization)가 인간의 기본적이고 적응적인 인지 전략이지만, 동시에 집단 갈등의 인지적 토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Tajfel과 Turner(1986)가 지적했듯, 인간은 단지 서로 다른 집단에 소속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내집단을 선호하고 외집단을 차별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인식은 다양한 오류와 인지적 왜곡을 통해 더욱 공고해진다. 외집단 동질성 편향(outgroup homogeneity bias)은 내집단 구성원은 개성 있고 복잡한 존재로 지각하는 반면, 외집단은 모두가 비슷하고 단순하며 획일적인 특성을 가졌다고 치부하는 경향이다. 이는 외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여, 소수의 사례만으로 집단 전체를 부정적으로 일반화하게 만든다.
궁극적 귀인 오류(ultimate attribution error)는 외집단의 작은 실수는 성격, 유전, 도덕성의 결여와 같이 그들의 본성의 탓으로 돌리고, 그들의 선행은 단지 운이나 상황 덕분이라고 귀인하는 오류이다. 이러한 비대칭적 프레임은 외집단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변화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러한 편향이 해소되지 않고 누적되면 단순한 적대감을 넘어 집단 증오로 발전한다. 집단 증오(Group hate)는 개인적 분노와 달리 쉽게 후회되지 않으며, 외집단의 멸망까지도 정당화할 수 있는 강력한 정서다(Allport, 2954). 이는 상대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부정하는 도덕성 배제와 상대를 비인간적 존재로 격하시키는 비인간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심리적 기제는 외집단을 향한 강력한 부정적 정서를 야기하고, 결국 극단적인 폭력과 학살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토대가 된다.
집단 간 갈등 해소: 우리와 그들의 통합
그렇다면 이렇게 쉽게 생겨난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연구가 보여주듯 갈등은 찰나의 경쟁만으로도 손쉽게 형성되지만,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러가지 해결 방법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대안은 ‘자주 보면 정든다’의 원리에 기반한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이다. 접촉 가설(contact hypothesis)은 이러한 단순 노출 효과를 이용해 구성원의 상호 접촉이 서로에 대한 편견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 가정한다. 하지만 Robbers Cave 실험은 중요한 반전을 보여준다. 정교한 설계 없이 두 집단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두는 것은 오히려 갈등을 촉발하는 역효과를 낳은 것이다.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집단 간의 평등한 지위, 협동, 권위자의 지원, 그리고 공동의 목표 등이 필요하다.
실제로 연구에서도 긍정적 접촉 상황을 조성하는 필수 조건을 세팅하지 않고 두 무리를 접촉 시키는 것은 오히려 아이들 간의 싸움을 촉발했다. 공동의 목표를 도입하지 않은 단순한 접촉은 두 집단 간의 부정적 관계를 줄이는 데 충분하지 않다. 결국 집단 간 갈등의 실타래를 푸는 결정적 열쇠는 함께 해결해야 하는 상위 목표(Superordinate Goal)에 있다.
연구진은 어느 한 집단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두 집단이 반드시 협력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상위 목표’의 과업들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캠프 전체의 급수 시스템 고장이나 식량 트럭의 결함 같은 공동의 위기는 아이들이 갈증과 허기라는 공통의 결핍을 지각하게 만들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상호 의존성을 창출했다.
하지만 상위 목표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몇 가지 세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외집단과 피상적인 협력을 넘어 사적인 유대와 우정이 형성될 수 있는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둘째, 협력의 결과가 실제로 성공적이어야 한다. 만약 공동의 과업이 실패로 끝날 경우, 집단들은 그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며 오히려 갈등이 심화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협조는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오랜 시간 누적되어야 한다.
실제로 단 한 번의 협력만으로는 뿌리 깊은 적대감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첫 상위 목표 활동이었던 ‘음용수 부족 문제’에서는 작업 중 우호적인 교류가 있었으나, 협력 직후에도 식당에서는 여전히 조롱과 싸움이 재발했다. 그러나 ‘트럭 끌기’와 같은 성공적인 협력 경험이 반복적으로 쌓이면서 아이들은 비로소 마음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협력을 통해 상대 집단을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서 개별적인 인격체로 바라보는 탈범주화가 일어나게 되었고, 마침내 갈등은 해소되었다.
셰리프의 연구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갈등은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그 해소는 오직 공동의 목표를 향한 끈질긴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희망이다. 분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비난의 화살이 아니라, 고장난 트럭을 함께 끌어올린 아이들처럼 우리가 함께 맞잡아야 할 공동의 밧줄을 찾는 일이다.
실험의 마지막 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되어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갈등의 진정한 의미를 말해주는 지도 모르겠다.
“같은 버스에 타도 된다는 말을 듣자 일부는 함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버스가 출발하자 좌석에는 집단 간의 구분이 없었다. 많은 소년들이 야영장을 아쉬운 듯 뒤돌아 보았고, 독수리 팀의 윌슨(Wilson)은 캠프가 끝났다는 사실에 결국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였다(Sherif et al., 1961).”
출처
- Sherif, M., Harvey, O. J., White, B. J., Hood, W. R., & Sherif, C. W. (1961). Intergroup conflict and cooperation: The Robbers Cave experiment. Norman, OK: University Book Ex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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