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서랍을 정리하다가
박정호는 오래된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겉면이 바래 있었고,
손글씨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자신의 글씨였다.
봉투 안에는
사진 몇 장과
접힌 종이들이 들어 있었다.
젊은 시절의 사진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마른 얼굴,
눈빛은 또렷했고
웃음은 가벼웠다.
그는 그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의 나라는 게
선뜻 이어지지 않았다.
]
종이를 펼치자
손글씨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계획표처럼 보였다.
‘서른다섯 이전에
해외 연수 한 번.’
‘마흔 즈음엔
하고 싶은 일로 옮기기.’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된 작은 공간.’
박정호는
그 문장들을
조용히 읽어 내려갔다.
기억이 났다.
이런 생각들을
분명 했었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
아니,
회사에 들어간 직후에도.
하지만
그는 그 꿈들을
포기한 기억이 없었다.
다만
계속 미뤘을 뿐이었다.
나중에.
조금 더 안정되면.
이번 프로젝트 끝나고.
그 ‘나중에’가
이렇게 와 있을 줄은
몰랐다.
김미경이 방 문을 두드렸다.
“뭐 찾아요?”
“옛날 거.”
그는 봉투를 들어 보였다.
“이런 게 있었네.”
김미경은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작게 웃었다.
“이때는
눈이 반짝반짝했네.”
그 말에
박정호는
웃지 못했다.
“나…
이런 생각도 했었어.”
그는 종이를 내밀었다.
김미경은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었다.
“꿈이었네.”
그녀가 말했다.
비웃는 말은 아니었다.
조금 놀란 목소리였다.
“잊고 살았지.”
박정호가 말했다.
잊었다기보다는
덮어두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몰랐다.
그날 오후,
박정호는
혼자 동네를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생각이
발걸음을 이끌었다.
젊었을 때의 자신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불안했지만,
그래도
기대가 더 컸다.
지금의 자신은
안정을 얻었지만
기대는 줄어들어 있었다.
그는 문득
이제 와서
꿈을 떠올리는 게
우스운 일일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그는 다시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종이를 접지 않았다.
책상 위에
그대로 올려두었다.
잊고 살았던 꿈은
사라진 게 아니라,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날 밤,
박정호는
오랜만에
내일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작가의 말 :
우리는 종종
꿈을 포기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잠시 덮어두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15화는 ‘시간 속에 묻혀 있던 욕망’을 꺼내는 이야기입니다.
다음 화에서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에 대한 후회를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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