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이후의 시간 20화
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카페 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사람들은 있었지만

각자의 테이블 안에만 머물렀다.


박정호와 오세진도

창가 자리에 마주 앉아 있었다.


“여기 자주 와?”


세진이 물었다.


“아니.

오늘이 처음이야.”


그 대답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처음이라는 말이

요즘 부쩍 늘었다.


커피가 나왔고,

둘은 잠시 말없이 잔을 잡았다.

말을 꺼내지 않아도

불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박정호는

이 자리를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 요즘…

생각이 좀 많아.”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조용히 앉아 있었다.


“퇴직하고 나니까

사람들이

내가 괜찮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더라.”


그는

잔을 내려놓았다.


“나도…

괜찮은 척했고.”


세진은

그를 보며 말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면

아무도 모르게 돼.”


그 말이

그의 가슴을

정확히 찔렀다.


“맞아.

아무도 몰라.”


박정호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집에서도

굳이 말 안 했어.

괜히 분위기 무너뜨릴까 봐.”

“그게 제일 힘들지.”


세진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확신이 있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고,

모른다는 건

도와줄 기회도 없다는 거야.”


박정호는

그 말에

한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껏

자신이 강하다는 걸

증명하려 애써 왔다.


하지만

강하다는 건

버티는 게 아니라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나 사실…

아침에 일어나면

가끔 무서워.”


그 말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오늘은 또

뭘 해야 하지 싶어서.”


세진은

놀라지 않았다.


“나도 그래.”


그 짧은 대답이

그를 안심시켰다.


같은 말을

같은 속도로

말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카페를 나서며

세진이 말했다.


“다음에 또 보자.”

“그래.”


이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집에 돌아온 박정호는

김미경이 거실에 앉아 있는 걸 보았다.


“차 마시고 왔어.”


그는

자연스럽게 말했다.


“누구랑?”

“세진이.”

“어땠어요?”


박정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

요즘 좀 불안해.”


그 말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김미경은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줘서 고마워.”


그 말이

그를

조금 가볍게 만들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말하는 순간부터

관계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는 걸

박정호는

이제야

알아가고 있었다.




작가의 말 :

많은 감정은

사라져서가 아니라

말해지지 않아서

쌓입니다.

20화는 ‘약함을 드러내는 용기’를 다뤘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화해의 문턱에 서게 됩니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11952
  • 기사등록 2026-01-29 08:51:47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