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저녁이 조금 늦어졌다.
박정호는
현관 앞에서 잠시 서 있었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괜히 힘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면
김미경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느끼는 기류가 있을 것이다.
그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문을 열었다.
거실 불은 켜져 있었고,
김미경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보는 척만 하고 있다는 걸
박정호는 알았다.
“왔어요?”
그녀가 물었다.
“응.”
짧은 대답.
예전 같았으면
그대로 지나갔을 대화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미경.”
그가
이름을 불렀다.
김미경은
리모컨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나…
요즘 좀 많이 불안해.”
그 말은
이미 한 번 연습한 말이었다.
그래도
입 밖으로 나오자
목이 잠겼다.
김미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말을 끊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고,
다들 나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도
싫고.”
그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떨리는 걸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예민해졌어.”
그 말은
사과의 시작이었다.
김미경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조용히 말했다.
“나도…
당신이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녀의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아니라
솔직함이 담겨 있었다.
“괜히 내가
뭘 해줘야 할 것 같고,
그게 또 부담이 되고.”
박정호는
그제야 알았다.
아내도
자기 방식으로
불안해하고 있었다는 걸.
“미안해.”
그가 말했다.
이번에는
변명 없는 말이었다.
김미경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의 옆으로 이동해 앉았다.
“나도
미안해.”
두 사람 사이에는
말하지 못한 시간이
오래 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그 전부를 꺼낼 필요는 없었다.
“우리…
천천히 가자.”
김미경이 말했다.
“그래.”
박정호는
그 짧은 말에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담았다.
화해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었다.
다만
같은 방향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라는 걸
그는 알게 되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같은 침대에 누웠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서로의 숨소리는
예전보다 가까웠다.
화해는
사과보다
용기가 필요했다.
자기 마음을
내보이는 용기.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다시 받아들이는 용기.
작가의 말 :
화해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이 아니라,
같이 남기로 선택하는 일입니다.
21화는 ‘부부가 다시 같은 편이 되는 순간’을 담았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새로운 관계가 조심스럽게 확장됩니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1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