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이후의 시간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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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조금 늦어졌다.

박정호는

현관 앞에서 잠시 서 있었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괜히 힘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면

김미경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느끼는 기류가 있을 것이다.


그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문을 열었다.

거실 불은 켜져 있었고,


김미경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보는 척만 하고 있다는 걸

박정호는 알았다.


“왔어요?”


그녀가 물었다.


“응.”


짧은 대답.

예전 같았으면

그대로 지나갔을 대화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미경.”


그가

이름을 불렀다.

김미경은

리모컨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나…

요즘 좀 많이 불안해.”


그 말은

이미 한 번 연습한 말이었다.


그래도

입 밖으로 나오자

목이 잠겼다.


김미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말을 끊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고,

다들 나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도

싫고.”


그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떨리는 걸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예민해졌어.”


그 말은

사과의 시작이었다.


김미경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조용히 말했다.


“나도…

당신이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녀의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아니라

솔직함이 담겨 있었다.


“괜히 내가

뭘 해줘야 할 것 같고,

그게 또 부담이 되고.”


박정호는

그제야 알았다.

아내도

자기 방식으로

불안해하고 있었다는 걸.


“미안해.”


그가 말했다.

이번에는

변명 없는 말이었다.


김미경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의 옆으로 이동해 앉았다.


“나도

미안해.”


두 사람 사이에는

말하지 못한 시간이

오래 쌓여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그 전부를 꺼낼 필요는 없었다.


“우리…

천천히 가자.”


김미경이 말했다.


“그래.”


박정호는

그 짧은 말에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담았다.


화해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었다.

다만

같은 방향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라는 걸

그는 알게 되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같은 침대에 누웠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서로의 숨소리는

예전보다 가까웠다.


화해는

사과보다

용기가 필요했다.


자기 마음을

내보이는 용기.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다시 받아들이는 용기.




작가의 말 :

화해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이 아니라,

같이 남기로 선택하는 일입니다.

21화는 ‘부부가 다시 같은 편이 되는 순간’을 담았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새로운 관계가 조심스럽게 확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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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1-30 08: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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