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전화는
생각보다 갑작스러웠다.
박정호는
주민센터 게시판을 정리하던 중
휴대폰이 울리는 걸 느꼈다.
화면에는
센터 담당자의 이름이 떠 있었다.
“정호 선생님,
잠깐 통화 괜찮으세요?”
그 말에
그는 괜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
“네.”
“다름이 아니라,
다음 달부터
봉사 프로그램 하나를
새로 맡아주실 수 있을지
여쭤보려고요.”
그 말은
조심스럽게 나왔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역할을 제안하는 전화였다.
박정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입안이 조금 말랐다.
“제가요?”
“네.
정호 선생님이
사람들 잘 챙기시고,
설명도 차분하게 해주셔서요.”
그 말이
기분 좋으면서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바로 결정 안 하셔도 됩니다.
며칠 생각해 보세요.”
전화를 끊고 나서
박정호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선택.
오랜만에
그 단어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발걸음을
조금 늦췄다.
선택은
언제나 두려웠다.
특히
다시 시작하는 선택은.
실수하면 어쩌나,
중간에 그만두고 싶어지면 어쩌나.
예전에는
회사가 대신 선택해 주었다.
지금은
모든 결정이
자기 몫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김미경이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봉사 쪽에서
역할 하나 맡아보지 않겠냐고.”
김미경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아직 모르겠어.”
그 대답에는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섞여 있었다.
“당신이 선택하는 거야.”
김미경은
단정하게 말했다.
“잘할지 말지는
그 다음 문제고.”
그 말이
그의 마음을
조금 가볍게 했다.
그날 밤,
박정호는
혼자 거실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왜 망설이는가.’
그 아래에
천천히 적어 내려갔다.
‘실수할까 봐.’
‘책임이 무거울까 봐.’
‘다시 상처받을까 봐.’
적고 나니
조금 웃음이 났다.
젊었을 때도
비슷한 이유로
망설였다는 걸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잃을 것보다
얻을 게 더 많다는 사실이었다.
박정호는
펜을 내려놓았다.
선택은
정답을 맞히는 일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아직
전화 버튼을 누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손은
도망치지 않고 있었다.
다시
선택 앞에 섰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서 있었다.
작가의 말 :
선택은
언제나 두렵습니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입니다.
27화는 ‘다시 책임을 지는 삶의 문턱’을 담았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그 선택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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