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찬희
[한국심리학신문=조찬희(byliner_cho@naver.com) ]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건 내가 자유로워지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것 또한 나라는 걸 내 소중한 사람들이 꼭 알아주면 좋겠다.” 백세희 작가의 첫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첫 장에 실린 문장이다. 그는 이미 자신의 책이 대중들에게 어떤 시선을 받게 될지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상대로 굳이 읽을 필요 없다거나, 읽었다가 괜히 우울을 옮을 것 같다는 등의 적지 않은 비난에 직면했다. 한국은 아직 우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그의 우울은 불편한 고백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백세희 작가는 멈추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우울을 이야기했다.
한국 사회는 ‘정서적 결벽증’을 앓고 있다. 정서적 결벽증이란 부정적인 감정을 배척하고 강박적으로 긍정적인 감정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이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우울은 공감의 대상이 되지 못한 채, 개인의 긍정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겨지며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다시 말해서 한국 사회에서 슬픔과 불안은 없어져야 할 골칫덩이로만 취급될 뿐, 존재 자체로 존중받지 못한다.
한국의 유교적 배경 또한 한국 사회가 우울을 배척하는 이유가 된다. 유교에서는 개인의 내면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는 고난을 정신력으로 이겨내는 것이 미덕이었기에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정신력이 좋지 않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다시 말해서 한국 사회에서의 우울 공개는 도움 요청 신호가 아닌 자기 관리 실패의 증거로 인식되었다. 어쩌면 백세희 작가의 글이 대중의 비난을 받은 이유는 감추고 싶었던 그들의 우울 감정을 들춰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우울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던 백세희 작가가 우울을 이야기한 의도는 무엇인가. 첫 도서인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부터 마지막 도서인 「바르셀로나의 유서」까지 한 번도 우울 배척 사회를 비판하거나 바꿔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았다. 단지 단순한 일기와 상담 기록을 공개하면서 우울이라는 감정을 굳이 숨길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혁명이 아닌 작은 태도의 변화를 바랐다.
한국에 우울을 다룬 도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백세희 작가의 도서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기존 우울 서사는 우울의 원인을 분석하고 성장과 회복을 통해 긍정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의 도서에는 완벽한 회복과 우울로부터의 탈출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우울이 회복, 탈출 혹은 극복해야 하는 감정이 아닌 ‘공존’해야 하는 감정이라고 표현한다.
이야기의 초반과 후반에서의 차이는 딱 한 가지, 우울을 대하는 그의 태도이다. 상담 초기에는 우울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계속 밀어내려고 했지만, 후기에는 우울을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부분 또한 항상 고난을 이겨내며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이야기, 즉 해피엔딩 스토리에 익숙한 한국 사회의 정서와 상반되어 있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비난만 받은 것은 아니다. 2018년 8월 2주 ~ 4주차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이는 백세희 작가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우울을 가진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 공감했음을 의미한다. 독자들은 한국 사회에서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우울의 이야기를 접함으로써 동질감과 안도감을 느꼈고, 그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었다.
백세희 작가는 우울을 정당화하거나 무작정 우울하지 않은 사람에게 우울을 이해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단지 우울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기에 숨기지 않고, 공개해도 괜찮은 감정임을 말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우울을 개인의 나약함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을 흔들며 우울과 삶의 공존을 노래했다.
백세희 작가는 2025년 10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공개하면서까지 사회에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우울을 자신 있게 공개할 용기였다. 밝은 빛이 있다면 당연하게 그림자가 존재하듯, 우리의 삶에도 긍정이라는 밝은 빛이 있다면 우울이라는 어두운 면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그림자를 수치스러워하고, 부정하려고 애써왔다. 그는 그 어둠을 외면하고 회피하기보다 어둠과 함께하는 법을 글로 써냈다. 그리고 그 글은 단순한 20대 청년 1의 개인적 고백이 아닌, 밝음과 긍정만을 추구하는 사회에 던진 저항이었다.
그의 문장은 거창한 외침 대신 스스로의 감정을 의심해 온 이들에게 작은 허락이 되었다. ‘이래도 괜찮다’는 단순한 인정은 때로 어떤 해결책보다 강한 힘을 가진다. 우리는 여전히 밝음을 요구받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그의 문장 덕에 적어도 한 번쯤은 자신의 어둠을 돌아보고 이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가 글을 쓰게 된 이유이자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변화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1) 백세희. (2018).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흔.
2) 백세희. (2019).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2. 흔.
3) 백세희. (2025). 바르셀로나의 유서. 워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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