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채원
[한국심리학신문=허채원(cheaone1@naver.com) ]
뮐러-라이어 착시. 출처 : Pinterest
눈으로 분명 선 길이가 달라 보이는데, 막상 자를 대보면 똑같다는 ‘뮐러-라이어의 착시’. 아마 이 그림을 보며 누구나 한 번쯤은 비슷한 행동을 해보았을 것이다. 정답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가락으로 길이를 가늠해 보거나 모니터 옆에 슬쩍 자를 가져다 대보는 일 말이다.
우리는 머리로 알고 있다. 주변에 화살표(<, >)가 어떤 방향으로 붙어 있든 직선의 본체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눈은 여전히 우리를 속인다. 주변 화살표에 따라 멀쩡한 선을 길게도, 혹은 짧게도 보이게 만드는 끈질긴 왜곡.
오늘날 대한민국 직장인들 역시 이 지독한 왜곡 속에 갇여 있다. 우리의 삶이라는 ‘직선’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꼿꼿하게 뻗어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덧붙여진 ‘소셜미디어의 과시’와 ‘타인의 성공 신화’라는 화살표는 가차 없이 그 선을 왜곡한다. 화려하게 뻗어 나가는 남들의 화살표 곁에서, 나의 직선은 실제보다 훨씬 짧고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조급함이라는 틈새를 파고드는 신기루
내 선이 남들보다 짧다는 공포, 즉 낙오에 대한 조급함은 우리 사회의 취약한 고리를 파고든다. 최근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점령한 이른바 ‘성공 팔이’ 비즈니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들은 "평범하게 살아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거나 "직장인은 노예일 뿐이다"라며, 우리가 정직하게 그어온 직선을 가치 없는 것으로 폄하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화려한 수익 인증과 럭셔리한 삶은 뮐러-라이어 그림 속 바깥으로 뻗은 화살표와 같다. 실체는 불분명하지만, 그 화살표가 붙는 순간 청년들의 평범한 일상은 탈출해야 할 지옥으로 둔갑한다. 하지만 그들이 파는 강의와 비법의 실체는 허망하다. 결국 '나처럼 성공한 척해서 다른 사람에게 강의를 파는 법'을 가르치는 기만적인 굴레이기 때문이다. 착시를 이용해 타인의 불안을 현금화하는 약탈적 구조 속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소중한 자산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조급함이 극에 달하면 판단력은 마비된다. 자산 격차를 단숨에 따라잡게 해준다는 고수익 알바나 검증되지 않은 투자 제안은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짧아 보이는 내 선'을 억지로 늘리려다 마주하게 되는 결과는 처참하다.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에 속아 해외로 떠난 청년들이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하게 되거나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비극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200따리는 될 수 없어"라는 결단이 가져온 것은 경제적 자유가 아니라 삶의 파멸이었다. 범죄 조직은 그들을 소모품으로 쓰고 버리지만, 그로 인한 사회적 낙인과 책임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화살표를 떼어내고 '나의 보폭'을 회복할 시간
우리는 어떻게 이 지독한 착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양옆의 화살표를 지우고 오직 '직선의 본체'만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하는 것이다.
성공의 정의를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내부에서 다시 세워야 한다.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에 집중하는 삶이다. 타인의 하이라이트 영상과 나의 비하인드 씬을 비교하는 것은 애초에 공정하지 않은 게임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내 삶의 직선이 작년보다 얼마나 더 단단해졌는지, 그리고 내가 맡은 일에서 어떤 작은 성취를 이루었는지에 대한 주체적인 성장이다.
월급 200만 원, 300만 원은 결코 비하받을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정직한 땀방울이자,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건강한 에너지다. 진정한 자유는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마음에서 시작된다.
당신의 선은 결코 짧지 않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우울함이나 뒤처지는 기분은 당신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단지 당신의 소셜미디어 피드에 너무 크고 화려한 화살표들이 붙어 있을 뿐이다.
이제 그 화살표들을 떼어낼 시간이다. 무분별한 SNS 사용을 줄이고, 타인의 성공 서사 대신 나의 몰입과 일상의 작은 기쁨에 눈을 돌려야 한다. 화살표가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당신은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이 묵묵히 걸어온 그 선의 길이가 결코 남들보다 짧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다웠음을 말이다.
-참고자료-
지식인사이드.(2025. 1. 2.). 통장에 1억 있으면 중산층일까? 30대 직장인의 진짜 평균 재산은... (김경민 대표 1부)
KBS 추적60분.(2026. 1. 16.)."200따리는 될 수 없어" 성공팔이에 혹하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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