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소은
[한국심리학신문=심소은(zzzz7435@naver.com)]

꽃미남 남자주인공과 어여쁜 여자주인공, 두 주인공의 사랑이 피어나기에 최적화된 아름다운 배경과 운명적인 상황들. 로맨스 드라마나 영화, 웹툰, 소설 등 다양한 매체에서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사랑을 지켜보며 같이 설렘을 느끼고, 슬퍼하기도 하면서 진심으로 몰입하게 된다. 유튜브 '지켜츄' 채널의 '[환승연애4] 환친자 츄인장이 직접 만나본 팀 우지녕' 영상에서 유명 연애 프로그램 환승연애4 출연자 홍지연님께서 하신 말씀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그녀는 이별했을 때 극복하는 방법이 되게 잘생긴 혹은 내 스타일로 생긴 남자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몰아보는 것이라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드라마나 영화를 다 보고 전 남자친구와 찍은 사진들을 보면 '걔를 왜 만났지?'하면서 다 잊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여기서 '어쩌면 이게 정말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고, 그 원천은 바로 '대리 설렘'일 것이라 생각했다.
대리 설렘
'대리 설렘'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대리 설렘'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상황이나 감정을 지켜보면서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감정적으로 몰입하여 설렘을 느끼는 현상을 의미한다. 로맨스물을 좋아하거나 즐기는 사람들은 아마 대리 설렘을 느낀 경험이 많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외모, 작품의 서사, 극적인 연출 등 다양한 요소들이 대리 설렘을 일으킬 수 있다. 로맨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서사를 중심으로, 로맨스 웹툰을 보는 사람들은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의 그림체를 중심으로, 로맨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배우들의 외모와 장시간 펼쳐지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로맨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극적인 연출과 배우들의 외모 혹은 단시간 짧고 굵게 펼쳐지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대리 설렘을 느낄 것이다. 매체마다 특징이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로맨스물에는 사람들이 대리 설렘을 느끼기에 충분한 설렘 포인트들이 많이 존재한다.
당신을 로맨스 세계로 초대합니다.
그렇다면 매체를 통해 타인의 로맨틱한 상황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영화, 드라마, 소설 등의 매체에 몰입하는 과정을 몇 가지 이론 및 개념들을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일시적 자아경계 확장이론(Temporary Ego-Boundary Expansion Theory)은 매체를 통해 특정한 경험을 할 때 일시적으로 자아와 외부 세계 사이의 심리적 경계가 확장되거나 흐려지면서 '나'라는 테두리를 잠시 허물고 작품 속 세상과 자신이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원래 자아와 외부 환경 사이에는 심리적 경계가 존재하지만, 매체에 몰입함으로써 그 경계가 넓어지거나 허물어짐으로써 일시적으로 매체 속의 세상이 곧 나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이론을 접하고 나서 매체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작품 속 세상으로 '초대'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일시적 자아경계 확장이론을 제시한 슬래이터와 그의 동료들은(Slater et al., 2014) 일상생활에서 결핍된 개인의 기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스토리에 참여하고 작품 세계에 몰입하면서 일시적으로 자아경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이 이론이 모든 장르에 적용될 수 있지만 특히 로맨스 장르에 더 적용되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타지 같은 장르는 현실 세계와의 괴리감이 커서 몰입도가 낮아질 수 있는 반면에 로맨스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면서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간의 기본 욕구이면서도 충족되기 어려운 욕구라서 쉽게 몰입하게 되는 것 같다. 이에 따라 실제로 연애를 하지 않고 있거나 이성과의 접촉이 없는 사람들이 로맨스 장르물에 더 잘 몰입하며 대리 설렘을 느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점도 예상할 수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환승연애4 출연자 홍지연님의 발언과도 연결된다. 이별을 겪으면 공허함과 허무함 등 복합적인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데, 이렇게 기본 욕구가 결핍된 상황에서 로맨스물을 감상하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그 작품 속 세계로 들어가서 쉽게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로맨스물의 주인공?
작품에 몰입하여 나와 작품 사이의 경계가 확장되거나 허물어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작품 속 인물들과 나를 '동일시'한다. '동일시'란 작품에 몰입할수록 등장인물의 입장에 집중하게 됨으로써 그 작품의 등장인물 중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과 자신을 동일하게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등장인물의 관점을 같이 공유하며 그들의 상황과 감정을 대리 경험하는 것이다. 일시적 자아경계 확장이론이 내가 작품 속 세계로 들어가는 현상을 설명한 이론이라면, 동일시는 내가 작품 속 특정 등장인물이 되어 그들의 상황을 직접 경험하는 현상을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로맨스 작품 속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면 내가 그 등장인물의 상황에 처한 것으로 인식하면서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그 인물이 겪는 감정을 마치 내가 겪는 것으로 여기며 '대리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동일시를 통해 특정 등장인물의 감정을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품 속 다른 등장인물들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파라소셜 상호작용(parasocial Interaction)', 혹은 '의사사회적 상호작용'이다. 쉽게 말해, 작품 속 등장인물들과 자신이 실제로 사회적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안면이 있거나 친분이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나를 작품 속 특정 등장인물과 동일시하면, 자연스럽게 그 등장인물의 인간관계까지 나와 동일시하여 다른 등장인물들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경험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파라소셜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 혹은 '의사사회적 관계'를 맺는다. 작품 속에서 연애하고 있는 등장인물과 나를 동일시 할 때, 마치 그 등장인물의 연인과 내가 연애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로맨스물을 보면서 '대리 설렘'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연애까지 경험할 수 있다.
솔로지만 가장 편한 연애 중
지금까지 '일시적 자아경계 확장'을 통해 현실 세계를 벗어나 작품 속 세상으로 들어가서, '동일시'를 통해 작품 속 특정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똑같이 경험하고, '파라소셜 상호작용(parasocial Interaction)', 혹은 '의사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작품 속 다른 등장인물과 상호작용을 반복함으로써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봤다. 그리하여 로맨스물을 감상할 때, 작품 세계가 곧 나의 세계가 되고, 내가 특정 등장인물이 되어 '대리 설렘'을 느끼고, 등장인물의 인간관계가 곧 나의 인간관계가 되어 연애까지 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남의 연애가 제일 재미있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연애를 하면 돈, 시간, 감정 등 많은 것들이 소모되니까 로맨스물을 통해 남의 연애를 지켜보면서 대리만족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과연 로맨스물을 감상하는 걸로 대리만족이 되는지 궁금했는데, 심리학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나니 되게 신기하고 놀라웠다. 로맨스물에 몰입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연애'이지 않을까 싶다. 연애를 하고 싶어도 저마다의 이유로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로맨스물로 연애를 경험하는 게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자신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혹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안을 하나는 꼭 마련해 두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나의 내면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서 보다 더 행복하고 긍정적인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1) 정금희, 최윤정. (2025). 의미 있는 미디어 경험 : 드라마 시청 이후 회고적 상상관여가 매개된 경험의 지혜에 미치는 영향. 한국언론학보, 69(6), 53-96. 10.20879/kjjcs.2025.69.6.004
2) YouTube. (n.d.). YouTube video [Video]. https://youtu.be/_Th7SfD2gWc?t=1582
3) 박웅기, 송진경. (2009). 텔레비전 드라마 시청에서의 감정적동일시에 관한 연구. 한국방송학보, 23(3), 233-275.
4) 오용경. "웹 드라마 이용 동기와 매체친숙성이 지속적 시청의도와 추천의도에 미치는 영향." 국내석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대학원, 2018.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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