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C병 팬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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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백채린(qorcofls1028@naver.com) ]


이상할 정도로 쉽게 튀어나오는 말들이 있다. “왜 이렇게 안 나와”, “진짜 느리네”, “아 짜증나.” 상대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마치 아무도 듣지 않는 것처럼 중얼거린다. 그런데 카운터 너머에서 “주문이 많이 밀려서요, 죄송합니다”라는 답이 돌아오면 서둘러 태세를 전환한다. “혼잣말이었는데요?”, “당신한테 한 말 아니에요.”

방금 전까지 분명 누군가를 향해 발화했지만, 정작 그 사람을 대화의 주체로는 인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순간 그 사람은 나에게 상황의 일부였고, 배경이자 기능적인 존재, 말하자면 ‘NPC’에 가까웠다.

 게임 세상 속 NPC와도 같은 타인

NPC란 Non-Player Character의 약어로, 게임 속 플레이어 이외의 캐릭터를 가리킨다. 사람들은 타인을 자기 주관 없이 프로그램에 의해 조종되는 존재, 즉 하나의 자아를 가진 생명체로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속 배경과도 같은 작은 존재로 인지를 한 것이다. 

 

 

배경이 된 사람들


타인을 NPC처럼 대하는 현상은 단순한 예의 부족이나 성격 문제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뇌과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하면, 인간이 타인을 ‘사람’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인지 과정이 작동해야 한다. 표정, 목소리, 맥락과 같은 사회적 단서(social cues)를 감지하고, 그 단서를 바탕으로 “저 사람도 나와 같은 감정을 지닌 존재”라고 추론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과정이 항상 자동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적 단서를 읽는 기능이 약화되면 타인은 감정을 지닌 주체가 아니라 방해물이나 상황의 지연 요인으로 인식된다. 커피가 늦게 나오는 상황에서 분노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지연된 시스템’이 된다. 그 시스템이 말을 걸어오면, 오히려 당황하는 것이다. 자신의 언행이 누군가에게 닿아 보일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작동하지 않고 왜곡된 인식 체계로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스크린이 지운 것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 소통과 온라인 환경이 일상 깊숙이 자리 잡으며 이러한 인식의 왜곡은 더욱 심화됐다. 대상을 사용자가 시스템과 상호작용하게 하는 매개체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I, User Interface) 중 하나로 인지하게 된 것이다. SNS와 커뮤니티의 발달은 인간관계의 효율성을 제고했지만 종시에 중요한 능력을 약화시켰다. 텍스트, 아이콘, 프로필 사진 등의 너머에 실제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뇌는 이를 실감하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하도록 적응해버렸다. 상대에 대한 사회적 단서를 해석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둔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의학적 진단으로서 자폐를 뜻하기보다는, 사회적 인식 방식이 점점 더 자기중심적으로 재편된다는 의미에 가깝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 없는 오늘날 현대 사회의 소통 방식 문제라 볼 수도 있다. 대화가 부족해지는 사회 속에서 상대의 감정을 공감해주지 못하고 자기중심적 인식이 강화돼 타인을 배려하지 못한다. npc를 넘어 하나의 배경이자 도구로까지 인식하기도 한다. 

 

 

반응할 줄 몰랐어요


온라인 공간에서는 종종 이런 장면이 반복된다. 누군가 무심코 또는 장난처럼 공격적인 말을 던지고, 상대가 상처받아 반응하면 돌아오는 말은 비슷하다. “그렇게까지 받아들일 줄 몰랐다”, “그냥 내 생각을 말한 것뿐이다.”라며 발뺌하고 변명한다. 이때 핵심은 악의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상대가 반응하는 주체라는 사실을 상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표현은 했지만 대화는 아니었고, 발화는 있었으나 청자는 NPC로 설정되었다.


특히 알고리즘은 이 인식을 더욱 강화한다. 모든 피드는 ‘나’에게 맞춰져 있고, 불편한 반응은 차단하거나 스크롤로 넘기며 스스로 조정할 수 있다. 그 결과 세계는 점점 더 나의 감정과 취향만이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축소되고 타인의 감정과 언행이 개입할 여지가 사라진다. 모든 것이 ‘본인 맞춤형’으로 설계된 환경에서 타인은 점점 배경이 된다.


 

꺼진 기능을 다시 켜는 일


공감은 착한 사람만이 갖는 미덕이 아니라, 사용해야 유지되는 인지 기능에 가깝다. 사람을 직접 대면하고, 목소리를 듣고, 예상치 못한 반응을 마주하는 경험 속에서 비로소 활성화된다. 타인을 NPC로 대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윤리 교육이 아니다. 시선을 넓혀 현실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타인의 반응 앞에 서보며 공감 기능을 깨우고 성숙해질 수 있다. 

 

저 사람도 하루를 살아가고 있고, 감정을 조절하며 일하고, 한 마디 한 마디에 기뻐하고 슬퍼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해 인식을 전환함으로써 소통의 출발점을 만들 수 있다. 공감은 선천적 성품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하는 능력이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진 오늘날 특히나 요구되는 사항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인식하는 능력은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 조건이다. 게임에는 NPC가 존재하지만, 현실에는 없다.

 

 

<</span>참고문헌>

1) 벤 라인. 『뇌는 왜 친구를 원하는가』. 더퀘스트, 2025

2) 유승무, 최우영, 박수호. (2018). 공감·소통·배려의 사회와 그 적들. 현상과인식, 42(1), 119-144. 10.46349/kjhss.2018.03.42.1.119

3) 허순향 and 남승규. (2019). 공감의 구성요소와 심리적 기제. 예술인문사회 융합 멀티미디어 논문지, 9(3), 939-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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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4-16 10: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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