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채원
[한국심리학신문=허채원(cheaone1@naver.com)]
출처 : 조선일보
학창시절 혀의 부위별로 느껴지는 맛이 다르다고 배웠다. 혀의 앞부분은 단맛, 좌우 옆부분은 신맛, 뒷부분은 쓴맛을 느낀다는 이른바 ‘혀의 맛지도’는 대한민국 과학 교과서에도 실렸던 공인된 지식이었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잘못된 정보다. 실제로는 혀의 모든 부위에서 모든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오류의 시작은 1901년 독일의 한 연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연구는 혀의 부위별로 특정 맛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점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1940년대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에드윈 보링이 이 내용을 옮기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인간의 혀는 부위별로 각각 다른 맛을 느낀다"라고 내용을 확대해석했고, 이 잘못된 정보가 수정 없이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잘못된 이론이 바로잡힌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1974년이었다. 미국의 과학자 버지니아 콜링 박사는 "맛의 민감도가 혀의 부위에 따라 상대적으로 다르기는 하지만, 그 차이는 미미한 수준"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하지만 2000년대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실렸고, 많은 학생들이 혀의 부위별로 느껴지는 맛이 다르다고 배웠다. 지금은 교과서에서 없어진 내용이지만 수정된 내용이 실제 교과서에 반영되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오랫동안 수많은 학생은 이미 폐기된 이론을 정설로 배우며 자란 것이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의구심이 생길 법한 지점이 있다. 집에서 혀 뒷부분으로 소금을 찍어 먹어봐도 짠맛은 분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구나 집에서 직접 실험을 통해 교과서 내용과 실제 감각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자신의 감각이 틀렸다고 생각하거나, 교과서에 적힌 이론을 정답으로 믿으며 개인적인 의구심을 지워버렸다.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전문가나 공신력 있는 기관의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권위 편향(Authority Bias)이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은 정보의 논리적 타당성을 따지기 전에, 정보를 전달하는 주체의 신뢰도에 먼저 압도당하는 경향이 있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라는 학술적 권위와 국가가 공인한 교과서라는 매체적 권위가 결합하면서, 개인의 생생한 감각보다 권위있는 전문가의 말을 우선시하게 만든 것이다.
전문가가 보증하는 정보는 뇌에서 별도의 검증 절차 없이 사실로 수용되곤 한다. 심지어 권위 있는 정보에 노출되면 실제 지각조차 그에 맞춰 왜곡되기도 하는데, 교과서를 맹신하는 학생이 혀끝에서 단맛을 유독 강하게 느끼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잘못된 정보가 퍼지는 속도에 비해 이를 바로잡는 과정은 지극히 느리다. 1974년에 이미 오류가 입증되었음에도 교육 현장에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몇십년이 걸렸고, 고착된 정보를 폐기하고 새로운 진실을 받아들이는 시스템의 속도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무리 공신력 있는 출처에서 나온 정보라 할지라도 절대적인 진리로 맹신하는 태도는 경계해야한다. 그것이 시대의 한계나 오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보를 수동적으로 습득하는 성실함이 아니라, 당연해 보이는 상식 앞에서도 “정말 그러한가?”라고 묻는 비판적 태도다. 혀 지도가 100년 가까이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중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권위라는 이름의 안경을 쓴 채 자신의 감각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권위 편향에 빠지지 않으려면, ‘누가 말했느냐’라는 이름값보다 ‘그 정보가 어떤 근거를 지니고 있는가’를 먼저 살피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진정한 공부는 교과서 속 문장을 글자 그대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 이면의 진실을 스스로 탐구하고 검증하려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때로는 수만 권의 책보다 지금 내 혀가 느끼는 솔직한 감각 하나가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참고자료-
이영규.["단맛은 혀끝, 쓴맛은 안쪽?"… 100년 넘게 우릴 속인 '혀 지도'의 비밀]. 『조선일보』.(2024.03.26)
윤상석.[인간의 미각과 제5의 맛인 감칠맛].『사이언스타임즈』.(2021.10.22)
장서우.[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도 얼마든지 틀릴 수 있는 이유],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202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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