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현재를 삼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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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이경민]


우리는 일상 대화 속에서 “PTSD 온다.”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사용하곤 한다. 과거의 괴로웠던 경험이 떠오를 때 가벼운 농담처럼 던지기도 하지만 심리학적 관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즉 PTSD는 과거의 충격적인 사건이 현재의 삶을 완전히 압도해 버리는 매우 고통스러운 상태를 의미한다. 실제 미국 기준으로 평생 유병률은 약 6.1%에서 8.3% 사이로 보고되며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약 2배 정도 높은 발생 빈도를 보이는 주요한 심리적 문제다.



영화 속에서 보는 PTSD,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파스텔 톤의 동화 같은 분위기 속에 기억과 해리,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주인공 폴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33세의 피아니스트다. 그는 무의식 속에 억눌린 기억의 파편들로 인해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던 중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서 차와 마들렌을 매개로 자신의 깊은 무의식과 마주하기 시작한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영화는 기억이 통합되고 치료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폴이 치료를 통해 독립적인 자아를 찾아가려 할 때 그를 소유물처럼 대하던 이모들은 오히려 치료자를 공격하며 방해한다. 이는 실제 임상 현상에서도 자주 나타나는데, 위축되어 지내던 아이가 상담을 통해 주체적으로 변할 때 의외로 많은 부모가 이를 반기지 않고 저항하는 모습과 닮아있다. 


특히 치유 과정에서 폴이 핵심 트라우마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소중한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자기파괴적 행동을 보이는 장면은 주목할 만하다. 상담 과정에서 자해나 자살 시도 혹은 폭식과 같은 충동적인 행동이 일시적으로 심해지는 것은 억눌렸던 트라우마가 수면 위로 올라올 때 흔히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왜 누구에게는 PTSD가 되는 것일까


동일한 외상 사건을 겪더라도 모든 사람이 PTSD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학계에서는 왜 이러한 개인차가 발생하는지 밝히는 데 주목하고 있다. 


먼저 과거에 외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외상을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이 있다. 또한, 인생에 대해 과도하게 경직된 신념을 지닌 사람일수록 PTSD에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세상은 안전하다'는 강한 긍정적 신념은 외상 사건에 의해 신념 자체가 박살 나며 심각한 혼란을 일으키고, 반대로 부정적 신념을 지닌 이들은 외상 사건을 통해 자신의 비관적 생각을 확증하며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어떤 설명도 완벽하게 PTSD의 개인차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결국, 생물학적인 부분에서의 연구와 심리적인 부분의 연구가 계속 병행되며 설명력을 높여가야 할 것이다.



신기한 치료법 EMDR과 그 기전


PTSD 치료에서 입증된 효능으로 주목받는 방법이 EMDR, 즉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절차다. 이는 환자가 외상 기억을 떠올리는 동시에 치료자의 손가락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게 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미국 심리학자 프랜신 샤피로가 우연한 관찰을 통해 개발한 이 치료법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그 효과가 증명되었지만 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현재 가장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이론은 ‘작업 기억 가설’이다. 외상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과 안구 운동을 동시에 하는 이중 과제가 시공간 작업 기억의 제한된 자원을 소모함으로써 기억의 생생함과 정서적 강도를 직접적으로 약화시킨다는 설명이다. 


이외에도 EMDR의 안구 운동이 꿈을 꾸는 REM 수면 상태와 유사한 뇌 상태를 유도하여 기억의 재구성을 돕는다는 가설이나 수평적인 안구 운동이 좌우 뇌의 상호작용을 촉진하여 기억 처리를 원활하게 한다는 신경생물학적 모델 등이 논의되고 있다.



우리 곁의 치유의 힘



트라우마는 멀리 있지 않다. 미디어를 통해 재난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대중들 역시 간접 외상을 경험하며 우리 사회 전체의 아픔으로 남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트라우마가 어디에나 있듯 그것을 치유할 힘 또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점이다. 과학이 모든 과정을 완벽히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다면 치유의 여정은 계속될 수 있다.



*참고문헌

1) 이우경, , 학지사, 2023

2) 김준기, <영화로 만나는 트라우마 심리학>, 수오서재, 2021

3) 신우승 (2024), 서강대학교 이상심리학 강의 내용, 개인 수강 기록에 근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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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5-27 18: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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