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원
[한국심리학신문=이예원(happymind09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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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문이 열리고 눈앞에 두 개의 빈자리가 보인다고 가정하자. 하나는 모르는 승객 사이에 낀 중앙 자리이고 다른 하나는 단단한 칸막이가 버티고 있는 끝자리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고민할 것도 없이 본능적으로 후자를 향해 발을 뻗는다.
이 '끝자리 사수 작전'은 자리에 앉은 후에도 멈추지 않는다. 이미 중앙 자리에 앉아 있더라도 옆 승객이 내려 끝자리가 비는 순간,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엉덩이를 옆으로 밀어 자리를 옮긴다.
도대체 그 차가운 플라스틱 칸막이가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토록 간절하게 구석을 탐하는 것일까. 단순히 팔을 걸치기 편해서, 혹은 옆 사람과의 신체 접촉이 싫어서라는 일차적인 이유만으로는 이 집착에 가까운 선호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이러한 한국인의 독특한 행동은 종종 외부인의 시선에서 서글픈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에 거주하는 한 외국인 유튜버는 한국 생활 초기, 지하철에서 겪은 당혹스러운 경험을 공유해 화제가 되었다.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한국인들이 구석 자리가 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를 옮기는 모습을 보며, 이를 자신에 대한 기피나 인종 차별로 오해했다는 고백이다. 하지만 한국 생활이 길어지면서 그는 비로소 진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피한 것은 '옆에 앉은 사람'이 아니라, 사방이 노출된 '불안정한 중간 자리'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처럼 오해를 부를 만큼 한국인의 강력한 끝자리 집착의 배경에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 기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제 그 구체적인 이론들을 하나씩 짚어보자.
지하철 끝자리는 물리적으로 한쪽 면이 벽으로 막혀 있어 타인의 시선이 닿는 면적을 최소화해 준다. 즉, 끝자리를 선택하는 행위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사회적 거울을 피해 심리적 안전지대를 확보하려는 본능적 방어 기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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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홀의 이론에 따르면, 2.1m 이내의 거리에서는 상대방의 세밀한 움직임이 모두 관찰되기에 필연적으로 서로를 강하게 의식할 수밖에 없다. 에드워드 홀은 사회적 거리를 바로 이 2.1m로 구분 짓는다. 2.1m 이내에 접근하는 사람은 ’사회적 거리‘로 규정짓고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만, 낯선 이에게는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하철 구조상 우리는 에드워드 홀의 거리학을 실제 상황에 적용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최대한 타인의 접근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이는 곧 지하철의 ’끝자리‘에 해당되는 것이다.
또한 한국인 특유의 '체면치레'의 피로도를 줄이려는 시도도 이에 포함된다. '치레 체면(체면치레)'은 상대와의 관계에서 최소한의 예의와 의례성을 갖추기 위해 본심과는 다르더라도 행하게 되는 소극적 형태의 체면이다. 모르는 사람들과 밀착하여 앉아야 하는 중간 좌석은 시선 처리나 신체 접촉 등 타인을 의식하며 최소한의 도리를 지켜야 하는 '의례성 치레 체면'의 공간이 된다.
반면, 끝자리에 앉으면 관리해야 할 '옆 사람'이 한 명으로 줄어들면서 이러한 체면 유지에 소모되는 심리적 에너지를 절반으로 아낄 수 있다. 결국 끝자리 선호는 복잡한 대인관계의 피로감을 줄이려는 전략적 선택인 셈이다. '공적 자기'의 보호와 자존심 방어심리학적으로 체면은 사적 자기(private self)보다는 공적 자기(public self)에 해당하며, 남에게 보여지는 '바깥 나'를 관리하는 것과 직결된다. 한국인은 자신의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방어하려는 '자존심 방어 욕구'가 매우 강한 편이다. 지하철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무방비한 모습(조는 모습, 휴대폰 내용 등)이 타인에게 읽히는 것은 곧 체면의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끝자리는 이러한 '자기 이미지'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구석진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타인의 무시나 부정적 평가로부터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심리적 방어지인 셈이다.
이러한 끝자리 선호는 결코 타인에 대한 거부나 이기심의 발로가 아니다. 심리학적으로 체면은 자신을 다스리는 '자기 제어 체제(Self-control system)'로 작동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품격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사방이 트인 중간 좌석에서 끊임없이 타인을 의식하며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는 끝자리라는 물리적 경계를 통해 스스로를 정돈하고 타인에게도 정제된 모습만을 보이려는 한국인만의 사려 깊은 '거리 두기'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인이 지하철 끝자리에 집착하는 현상은 단순한 편의 추구를 넘어, 타인의 시선이 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체면과 자존감을 지키려는 고도의 사회심리학적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타인과 적절한 거리를 둠으로써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려는 이 소박한 시도는, 어쩌면 고단한 하루를 마친 우리 시대의 사회인들이 거칠고 좁은 지하철 속에서 온전한 '나'로 머물 수 있는 작은 안식처를 찾아내려는 소중한 몸짓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1.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760974/ 거리두기의 인간학/ 2020.04.23
2. https://www.youtube.com/watch?v=RFAAF6DRA9Q / (유튜브) 해방촌에 푹 빠져 한국에 남아버린 외노자들|낭만의 외노자
3. 최상진·김기범, "체면의 심리적 구조", 韓國心理學會誌: 社會 및 性格, 2000, Vol. 14, No. 1, 18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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