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소

"요즘 스트레스 받으면 AI한테 말하면서 풀어."
공상 과학 영화 속 대사가 아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ChatGPT, Gemini, Claude 등 다양한 AI 서비스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상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AI를 상담사처럼 활용하는 문화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5~64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요 생성 AI 서비스 관련 U&A 조사’에 따르면, AI가 단순 도구만이 아닌 감정적 교류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응답자의 60.9%가 생성형 AI를 통해 감정적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 답했다. 이러한 기대는 특히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졌다. 감정 교류에 대한 기대감은 10대 43.8%로, 20대 37.4%, 30대 31.5%로 젊은 층 사이에서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언제, 어디서든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우선 심리상담의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정신 건강 문제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심리 상담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많은 지역에서 전문 상담사의 수가 부족한 상황이다. AI 챗봇은 이런 부족 문제를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거라 예상된다.
전통적인 상담에서는 주로 일주일에 1번, 50분~1시간 정도 진행된다. 이 시간을 제외한 일상생활에서 내담자에게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바로 대처하기가 어렵다. AI기술은 이런 점을 보완하여 상황에서 신속한 개입이 가능하다. 사용자와 대화하면서 즉각적인 정서적 지원을 제공해 상담사와의 예약을 기다리지 않고도 즉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긴급 상황에서 즉각적인 지원은 특히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구체적으로 우울증의 주요 증상 중 하나인 극심한 무력감으로 인해 에너지가 고갈되어 상담사 예약, 이동, 대기 등 그 자체가 거대한 장벽이 된다. AI 챗봇은 이 장벽을 없애준다. 침대에 누운 채로, 새벽 3시에도, 단 몇 글자만 입력해도 치료적 개입을 지원받을 수 있다.
불안장애일 경우, 증상 자체가 갑작스럽고 파도처럼 몰아치는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공황발작은 예고도 없이 시작되어 10~20분 동안 최고조에 달하기도 하며, 범불안장애는 훅 올라오는 불안감을 스스로 제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증상들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기에 즉각적인 도움을 받기 어렵다. 즉 증상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24시간 즉각 개입이 가능한 AI 지원이 꼭 필요한 것이다.
이제는 나만의 비밀 일기장이 아니라 나만의 AI 상담사!
사용자에게는 챗봇이 낙인 찍힐 염려 없이 어떤 문제라도 논의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될 수 있다. 즉, 챗봇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우울증, 불안, 트라우마와 같은 감정의 공유나 사용자가 민감한 상황에서 신뢰와 편안함을 제공한다. AI에게 사람들과 대화하기 어려운 내용, 어쩌면 사소한 고민까지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점은 한국 사회에서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전보다는 정신 건강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은 낮다. 요즘 10대들 사이에서 자주 쓰는 신조어인 ‘정병’(정신병을 줄여서 하는 말)을 보더라도 자신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해 알리는 것을 꺼리거나, 전문가의 도움에도 거부감을 보인다. 이렇게 잠재적 내담자의 심리적인 문제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심리 상담사의 ‘대체’가 아닌 ‘도움, 보조’ 역할
상담 영역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 AI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모두가 가장 걱정한 점이 있다. 바로 인간의 직업을 위협하거나 대체한다는 우려이다. 사람들이 인간 전문가보다 AI 챗봇에게 의존하면서 심리학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 했던 예상과는 조금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심리학자 Luxton(2014)은 인공지능 기술이 상담가의 직업을 뺏거나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닌, 오히려 개입의 효과성을 높이고 더 많은 분야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정신 건강 전문가들이 치료적 개입의 개발에 참여하거나, AI를 활용하여 환자나 내담자들의 정신건강 복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심리 인공지능 챗봇 ‘Tess’
TESS(Fulmer, Joerin, Gentile, Lakerink, & Rauws, 2018)는 미국에서 정신건강 지원 및 심리 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심리학적 인공지능 챗봇이다. 사용자들의 감정 표현과 심리적 상태에 대한 내용을 기반으로 전문적인 대화를 제공한다. TESS가 제공하는 치료적 개입은 주로 우울증과 불안장애 등 다양한 정신장애에 대해 효과적인 치료 방법인 CBT가 있다. 더불어 마음챙김 기반 치료, 수용 전념 치료, 정서 중심 치료 등 효과가 검증된 심리 치료 기법에 근거한 다양한 상담이 사용자들에게 제공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심리치료를 보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되었으며, 치료사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Tess와 대화한 75명의 대학생 대상 연구에 따르면 챗봇을 일정 기간 동안 사용한 그룹의 불안감이 eBook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정보만을 제공받은 그룹과 비교했을 때, 유의미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사용자들이 높은 수준의 참여도와 만족도를 보였다. 이렇게 챗봇과의 지속적인 대화는 사람과 대화한 것처럼 유사한 효과를 불러일으켜 사용자의 우울, 불안, 스트레스를 감소시킬 수 있는 것이다.
공감을 흉내 내는 AI, 그 이면의 위험
심리학자들과 의료 윤리학자들은 AI 챗봇이 인간 심리상담사를 완벽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영국 심리학 협회가 발표한 성명문에서는 ‘AI는 실제 인간의 공감능력을 따라할 수 없으며, 유의미한 상호작용을 하기보단 연결되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밝혔다.
2024년, 14살 소년이 캐릭터 ai에서 사용한 챗봇에게 자살 충동에 대해 털어놓자 챗봇은 그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도리어 자살을 권유하는 듯한 내용을 전달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건이 있었다. 이렇게 챗봇을 비롯한 대화형 AI는 감정적인 면에서 더욱 인간의 행동을 더 잘 모방한다. 이로 인해 사용자가 AI 시스템에 강한 유대감과 신뢰를 느끼게 되며, 특히 어린이나 고령층은 감정적으로 취약해 과의존 같은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심리상담의 성공을 이끄는 핵심 요인은 ‘공감’과 ‘치료적 동맹’이라고 한다. 공감은 내담자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주요 기제이다. 치료적 동맹은 상담자와 내담자가 함께 상호작용하면서 쌓아가는 신뢰와 이해를 말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AI가 이 부분에서 인간을 따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개발된 대화형 AI는 공감적인 반응을 보여주지 못하거나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서만 할 수 있다. 결국 상담자가 내담자만의 상황을 이해하고 이에 맞게 가슴 깊이 공감을 표현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교의 AI 윤리학 연구자인 조하 카와자는 AI 챗봇이 공감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연민 같은 몇 가지 요소들만 모방할 뿐이고 진정으로 내담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심리적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AI 심리 상담가를 이용하는 것의 큰 위험 요소 중 하나는 봇에 과의존하여 이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AI를 잘못된 방향으로 쓰게 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우리는 더 외로워졌다.
모든 기술이 그렇듯, AI 상담 역시 양날의 검이다. 24시간 즉각적인 정서적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분명한 강점을 가지지만,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를 대체할 수는 없다. 증상이 심각하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그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지는 결국 우리 스스로의 판단에 달려 있으며, 기술의 편리함 이면에 자리한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서도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조차 어려워진 사회에서, AI는 어쩌면 누군가에게 유일한 비밀 친구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번쯤 물어야 한다. 과연 우리 사회는 건강한가.
[참고문헌]
1) 조주홍. (2025, 11). 생성형 AI, 업무 도구를 넘어 ‘감정 교류하는 친구’로 진화. 넥스트 이코노미,(258), 36-37.
2) 크리스찬 자렛. (2025, 8). REVIEW 근래 AI 챗봇을 개인 심리상담사로 이용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실제 심리 상담가에게 과연 이 현상이 괜찮은지 물었다. BBC 사이언스,, 72-74.
3) 진효진, 차미영. (2024). 대화형 AI의 기회와 과제: 정신건강과 윤리 관점에서의 챗봇의 잠재력. 정보과학회지, 42(1), 21-25.
4) 윤석주, 임상호. (2025). AI 기술과 심리 상담의 융합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고찰. 산업진흥연구, 10(1), 203-216. https://doi.org/10.21186/ipr.2025.10.1.203
5) 김도연, 조민기, 신희천. (2020). 상담 및 심리치료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활용: 국외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32(2), 82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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