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누군가 당신에게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순간, 당신의 몸속에서는 무언가가 달라진다. 기분 탓이 아니다. 실제로 뇌와 신체가 그 호칭에 반응한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 든 사람을 향해 쏟아지는 말들이 있다. '노인네', '꼰대', '틀딱'…. 온라인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는 이 단어들이 당사자의 건강과 수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알고 있었는가.
베카 레비 미국 예일대 공중보건학과 교수는 1994년부터 25년 이상 노화와 언어의 관계를 추적해왔다. 레비 교수팀이 성인 4765명을 38년간 추적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7.5년 더 일찍 사망했다. 단순한 생각의 차이가 7년 이상의 수명 격차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현상의 핵심은 '고정관념 구현 이론(Stereotype Embodiment Theory)'이다. 사회가 특정 집단에 반복적으로 부정적 낙인을 찍으면, 당사자는 그 낙인을 내면화하고 결국 몸이 그 기대에 맞춰 반응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너는 늙었어'라는 말을 계속 들으면 뇌가 '그렇구나, 나는 늙었지'라고 받아들이고 실제로 노화가 가속화된다는 얘기다.
레비 교수팀의 또 다른 연구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혜롭다', '경험이 풍부하다' 같은 긍정적 단어를 반복적으로 노출시킨 집단이 부정적 단어에 노출된 집단보다 기억력 테스트에서 평균 35.6%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같은 나이, 같은 사람인데 불리는 말이 달라지자 인지 능력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상철 전남대 의과대학 명예교수는 최근 기고문에서 한국 미디어와 일상 언어가 시니어를 향해 끊임없이 부정적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틀딱'이라는 단어가 온라인 공간에서 아무런 제재 없이 유통되고, 나이 든 사람의 실수는 곧장 '꼰대 짓'으로 귀결되는 문화가 일상화됐다는 지적이다.
이는 단순한 세대 갈등의 문제가 아니다. 에린 에이어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심리학과 교수가 2022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연령 차별적 언어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고령자는 코르티솔 수치가 평균 18.3% 높게 유지됐다. 만성적인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심혈관 질환과 인지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 영향이 노인만이 아니라 나이 듦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에게도 되돌아온다는 점이다. 레비 교수는 30대에 노화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진 사람이 40년 후 심혈관 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긍정적 인식을 가진 사람보다 44% 높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남을 '늙었다'고 비하하는 언어 습관이 결국 자신의 미래 건강까지 해치는 셈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으로 설명한다. 주변에서 지속적으로 '당신은 이미 낡았다'는 신호를 보내면, 개인은 의식하지 못한 채로 그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활동을 줄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사회에서 물러난 존재로 규정하게 된다.
반면 일본 오키나와처럼 '우치나팀(Uchinaa)' 문화, 즉 나이 든 구성원을 지혜의 원천으로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80대 이상 인구 비율과 활동적 노년 지표가 세계 최상위권을 기록한다. 언어와 문화가 수명을 바꾼다는 사실이 통계로 증명된 사례다.
결국 '틀딱'이라는 단어 하나, '노인네'라는 호칭 하나가 단순한 언어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공중보건의 문제임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레비 교수는 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세대 간 긍정적 접촉'을 꼽았다. 다른 세대와 함께 무언가를 이루는 경험이 반복될수록 나이 듦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거창한 사회운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단순하다. 온라인에서 연령을 비하하는 표현을 보았을 때 무심코 따라 쓰지 않는 것, 가족 중 나이 든 어른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묻는 것. 그 작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세포 수준에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 당신이 오늘 건네는 언어가 누군가의 수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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