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배우가, 책임은 작가가"… 역사 왜곡 드라마,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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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사과는 배우가, 책임은 작가가"… 역사 왜곡 드라마,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드라마가 끝났다. 배우들은 사과했다. 그런데 분노는 가라앉지 않는다.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이 종영 후에도 역사 왜곡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아이유와 변우석은 각각 공개 사과문을 올렸지만, 정작 집필한 작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렇게 오래 분노하는 걸까. 단순히 드라마 설정이 잘못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심리학적으로 들여다보면, 역사 왜곡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정체성 위협에 대한 매우 정상적인 반응이다.



역사 왜곡이 분노를 유발하는 이유: 집단 정체성 위협 반응


헨리 타즈펠 전 영국 브리스톨대 사회심리학과 교수가 정립한 '사회 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역사와 문화를 자아의 일부로 인식한다. 집단의 역사가 공격받을 때 개인이 직접 공격당한 것처럼 분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한국처럼 역사적 침략과 문화 약탈의 경험을 가진 사회에서 역사 왜곡에 대한 민감도는 더욱 높다. '천세'를 외치며 중국 제후국을 자처하는 드라마 설정이 단순한 창작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집단 기억에 대한 침해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는 과민 반응이 아니라 심리학적으로 예측 가능한 정체성 방어 기제다.


2023년 퓨 리서치센터가 한국을 포함한 17개국 성인 2만45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인의 82%가 '미디어의 역사 왜곡은 국가 정체성에 해를 끼친다'고 응답했다. 이는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책임 회피의 심리학: 왜 작가는 침묵하고 배우만 사과하는가


이번 사태에서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구조가 있다. 콘텐츠를 직접 만든 작가는 침묵하고, 그 콘텐츠를 연기한 배우들이 전면에 나서서 사과하는 구도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책임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과 '희생양 메커니즘'으로 분석한다.


집단 내에서 잘못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가장 가시적인 대상에게 책임을 귀속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배우는 얼굴이 알려져 있고, 대중의 시선에 직접 노출되어 있으며, 팬덤을 통해 즉각적인 압력을 받는다. 작가는 상대적으로 익명성 뒤에 숨기 쉬운 구조다.


리언 페스팅거 전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의 '인지 부조화 이론'으로도 이 상황을 읽을 수 있다. 작가 입장에서는 '나는 창작의 자유를 행사했을 뿐'이라는 자기 합리화가, 대중의 비판을 회피하게 만드는 심리적 방어막으로 작동한다.



대중의 분노가 칸 출품 소식에 폭발한 이유: 도덕적 면죄부 효과


논란이 극에 달한 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드라마가 칸 국제영화제 마켓에 출품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였다. '나라 망신', '속국 드라마를 어디까지 팔려고 했던 건가'라는 반응이 폭주했다. 이는 단순한 반감이 아니라 '도덕적 면죄부 효과(Moral Licensing Effect)'에 대한 반발로 해석할 수 있다.


크리스토퍼 브라이언 미국 텍사스대 경영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떤 행위가 긍정적 이익을 얻으면 그 행위에 담긴 문제적 요소가 자동으로 정당화된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역사 왜곡이라는 문제 있는 콘텐츠가 국제적 플랫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소비된다는 상황이, 집단 정체성 위협을 더욱 강렬하게 자극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창작자와 플랫폼, 그리고 대중이 함께 콘텐츠 윤리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분노가 식기 전에, 우리가 무엇에 화가 났는지를 정확히 들여다보는 일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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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5-18 17: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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