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민
[한국심리학신문=안수민 (12sumin12@korea.ac.kr) ]
직장에서 20년을 버텨온 50대 A씨는 혼자 사는 걸 꽤 즐기는 편이었다. 조용한 집, 자신만의 루틴, 누군가에게 맞춰야 하는 부담 없는 일상. 그런 A씨가 어느 날 고양이를 입양했다. 처음엔 반기지도 않던 고양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집 안에 캣타워가 네 개다. 월급의 상당 부분이 고양이 사료와 간식으로 빠져나간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도 어느새 고양이로 바뀌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혀 힘들지 않다.
지친 하루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현관 앞에서 꼬리를 흔들며 달려드는 강아지의 열렬한 환영은 분명 큰 위로가 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대신 묵묵히 곁에 앉아 눈을 천천히 깜빡여주는 고양이의 '거리 있는 다정함'에서 더 깊은 안도감을 찾는다.
왜 그럴까. 왜 어떤 사람들은 관계의 주도권을 자신이 쥐는 강아지보다, 오히려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겨줘야 하는 고양이를 선택하는 걸까. 스스로 '집사'라고 부르면서 불편을 감수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글은 고양이와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통제권의 양도'가 왜 현대인에게 심리적 치유로 작동하는지를 살펴본다.
강아지와의 관계를 한번 생각해보자. 강아지는 주인을 따르고, 주인은 강아지를 훈련시킨다. 부르면 오고, 앉으라 하면 앉는다. 관계 안에서 인간이 명확한 '주도권'을 쥔다. 돌봐주는 쪽(갑)과 돌봄을 받는 쪽(을)의 구조가 비교적 뚜렷하다.
고양이는 다르다. 부른다고 오지 않는다. 쓰다듬으려 손을 내밀었을 때 고양이가 돌아서면, 그냥 돌아선 거다. 이 관계에서 주도권은 고양이에게 있다. 인간이 고양이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 바로 그 점이 핵심이다.
심리학에서는 다른 사람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는 욕구를 '대인 통제 욕구(Interpersonal control)'라고 부른다. 이 욕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일상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타인의 반응을 예측하고, 상황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상대가 내 기대에 맞게 행동해주길 바라는 것. 이런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우리는 피로해지고 관계에서 지친다.
그런데 고양이는 처음부터 그 통제를 허락하지 않는다. 인간-고양이 관계의 수평성을 연구한 학자들은 고양이와 인간이 서로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Forman , 2023). 고양이가 놀이를 시작하고 끝내는 주체는 대부분 고양이 자신이고, 인간은 그 흐름에 따라가는 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가올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고양이다. 인간은 그걸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이 '통제 불가능한 상대'와 함께 사는 경험이 역설적으로 심리적 만족감을 준다. 통제를 내려놓는 연습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은 타인의 자율성을 수용하는 법을 조금씩 익히게 된다. 상대를 바꾸려는 힘을 빼는 것, 그 자체가 관계의 피로를 줄이는 출발점이 된다.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골골송을 안다.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그 낮고 규칙적인 진동음. 무릎에 올라온 고양이에게서 골골송이 시작되면, 이상하게 몸의 긴장이 풀린다.
그런데 이 소리를 인간이 원한다고 해서 만들어낼 수는 없다. 골골송은 고양이가 스스로 원할 때만 나온다. 아무리 쓰다듬어도 고양이가 기분이 아니면 그냥 없는 소리다.
연구에 따르면, 고양이의 골골송은 신경이나 근육의 의도적인 수축 없이도 후두 자체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하는 진동일 수 있다 (Herbst 외, 2023). 즉, 고양이 스스로도 '의지로 켜고 끄는' 소리가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그 소리를 유도한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비슷한 주파수대의 저주파 진동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 연구에서는 혈압 감소, 피부 온도 상승, 뇌파의 알파파 증가 같은 생리적 이완 반응이 나타났다. 알파파는 뇌가 깊은 이완 상태에 있을 때 주로 나타나는 뇌파다 (Lim 외, 2013). 고양이의 골골송 주파수가 이와 유사한 범위에 있다는 점에서, 골골송이 가진 치유적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중요한 건 이 치유가 '강제된 게 아니다'라는 점이다. 인간은 골골송을 통제하는 대신, 그저 고양이가 허락한 순간에 온전히 몸을 맡긴다. 신체와 감정을 억지로 통제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자극에 몸을 내어주는 것. 이 경험이 반복될수록 인간은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감각을 조금씩 익히게 된다.
고양이와 접촉하려면 기다려야 한다. 손을 먼저 내밀면 안 된다는 걸 고양이를 키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배운다. 고양이가 먼저 다가올 때까지, 혹은 고양이가 허락의 신호를 줄 때까지, 인간은 그냥 기다린다.
이 과정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그라운딩(grounding)'과 닮아 있다. 그라운딩이란 지금 이 순간, 내 감각에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걱정이 아닌, 지금 이 공간, 이 온도, 이 감촉에 주의를 두는 것. 고양이를 기다리는 시간은 인간을 자연스럽게 현재로 끌어당긴다. '언제 올까'를 기다리다 보면,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이와 관련해 연구자들은 고양이와의 상호작용에서 인간이 고양이의 페이스에 맞추는 방식이 관계의 질과 긍정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 고양이에게 선택권과 통제권을 주고, 고양이의 신호를 잘 읽으며 접촉을 시도한 경우, 고양이의 친화적 행동이 늘고 긴장이나 공격성이 줄었다는 것이다 (Haywood 외, 2021).
심리학에는 '취약성 수용(vulnerability acceptance)'이라는 개념이 있다. 상황을 즉각 해결하려는 욕구를 내려놓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태를 그냥 견디는 능력이다. 고양이의 허락을 기다리는 과정은 사실 이 훈련과 매우 비슷하다. 조급함을 억누르고 상대의 리듬을 기다리는 것. 그리고 마침내 고양이가 다가와 몸을 기댈 때의 그 짧은 접촉은, 기다린 시간만큼의 무게로 온다.
강아지는 주인의 눈치를 본다. 주인이 슬프면 강아지도 불안해하고, 주인이 화나면 강아지도 그 분위기를 느낀다. 그 반응이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으로 하여금 '강아지를 걱정시키면 안 된다'는 무의식적인 부담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고양이는 다르다. 인간이 울고 있어도 고양이는 그냥 제 자리에 앉아 있다. 인간의 감정 상태에 맞춰 자신을 조정하지 않는다. 어떤 반응도 기대하지 않는다.
이 '무심함'이 역설적으로 더 깊은 위로가 된다.
우리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사회적 가면'을 쓰고 보낸다. 직장에서는 유능해 보여야 하고, 친구 앞에서는 괜찮아 보여야 하고, 가족 앞에서도 각자의 역할이 있다. 누군가 앞에서 완전히 허물어지는 건 쉽지 않다. 평가받을까봐, 부담줄까봐, 약해 보일까봐.
그런데 고양이 앞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불 속에 파묻혀 울어도 고양이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있다. 무기력하게 멍하니 있어도 고양이는 판단하지 않는다. 감정적 노동을 요구하지 않는 이 관계에서, 인간은 '권력의 공백 상태'를 경험한다. 사회적 역할과 기대치에서 잠시 내려오는 것이다.
개와 고양이와의 관계를 비교한 연구에서는 고양이와의 관계에서 '인지된 비용', 즉 심리적 부담감이 더 낮기 때문에 관계 만족도가 높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Ramirez, 2021). 또한 반려동물과의 상호작용이 '조건 없이 수용받는 경험'을 제공하여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국내 연구도 있다 (김명희, 2023). 슬픔이나 무기력함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공간, 평가 없이 그냥 있어도 되는 상태. 이것이 현대인이 고양이 곁에서 찾는 심리적 안전지대다.
A씨는 오늘도 고양이를 쫓아다닌다. 고양이는 오다가 말고 돌아서고, A씨는 빈손으로 소파에 앉는다. 조금 있으면 고양이가 제 발로 와서 무릎에 올라앉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A씨는 그냥 기다린다.
고양이파가 느끼는 치유는 강아지의 사랑과 차원이 다르다. 강아지의 사랑은 풍성하고 확실하고 즉각적이다. 고양이의 위로는 불확실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때로는 아예 오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 불확실함이 현대인에게 다른 종류의 자유를 준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시간은 결국 하나의 연습이다. 통제하려는 욕구를 내려놓는 연습. 타인의 자율성을 있는 그대로 두는 연습.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걸 얻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을 몸으로 익히는 연습. 그리고 그 연습 끝에, 사회적 권위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운 공간이 생긴다.
집사라는 말이 있다. 고양이를 섬기는 사람. 그런데 어쩌면 그게 진짜 자유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통제를 내려놓는 것, 그것이 고양이파들이 발견한 심리적 안식처다.
<출처>
김명희. "반려동물 보호자의 인간-동물 상호작용, 공감능력, 자기위로능력, 대인관계스트레스 및 대인관계 간의 구조적 관계분석." 국내박사학위논문 부경대학교, 2023. 부산
González-Ramírez, M. T., & Landero-Hernández, R. (2021). Pet–Human Relationships: Dogs versus Cats. Animals, 11(9), 2745. https://doi.org/10.3390/ani11092745
Haywood C, Ripari L, Puzzo J, Foreman-Worsley R and Finka LR (2021) Providing Humans With Practical, Best Practice Handling Guidelines During Human-Cat Interactions Increases Cats' Affiliative Behaviour and Reduces Aggression and Signs of Conflict. Front. Vet. Sci. 8:714143. doi: 10.3389/fvets.2021.714143
Lim, S. Y., Heo, H., Kim, S. H., & Won, B. H. (2013). Physiological and psychological effects of vibroacoustic stimulation to scapular and sacrum of supine position. Journal of the Ergonomics Society of Korea, 32(4), 345–35
Herbst, C. T., Prigge, T., Garcia, M., Weissengruber, G. E., Svec, J. G., & Fitch, W. T. (2023). Domestic cat larynges can produce purring frequencies without neural input. Current Biology, 33(21), 4727–4732.e4
Forman, J., Renner, E. & Leavens, D.A. Fetching felines: a survey of cat owners on the diversity of cat (Felis catus) fetching behaviour. Sci Rep 13, 20456 (2023). https://doi.org/10.1038/s41598-023-47409-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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