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찬희
[한국심리학신문=조찬희(byliner_cho@naver.com)]
야구는 흔히 기록의 스포츠로 불린다. 그러나 기록의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흔들리는 투수의 손끝, 무너지는 자신감, 압박 속 선택의 순간들. 이 연재는 다이아몬드 위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기록이다. |
"김범석은 앞으로 한국 야구의 대명사가 될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지난 2023년 KBO 신인 드래프트 직후, LG 트윈스의 차명석 단장이 남긴 이 한마디는 야구계 전체에 강렬한 파동을 일으켰다. 단순히 한 유망주의 잠재력을 칭찬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 야구라는 거대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이름' 그 자체로 규정해 버린 이 선언은 단장이라는 직책이 가진 무게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단장은 현재의 성적표를 받아 드는 자리가 아니다. 모두가 오늘의 안타와 실책에 일희일비할 때, 홀로 5년 뒤 혹은 10년 뒤의 다이아몬드를 그리며 불확실한 미래에 '확신'이라는 인장을 찍어야 하는 사람이다.
'다이아몬드 위의 심리학자들' 그 세 번째 시선은 더그아웃의 뒤편, 수만 장의 데이터와 차가운 숫자를 투과해 구단의 미래를 설계하는 프런트의 수장, 단장의 심장부로 향한다.
미래라는 불확실성에 베팅하는 고독한 심리
야구 경기장에서 선수가 지금 이 순간의 퍼포먼스를 책임지고 감독이 당장 오늘 경기의 승패를 관리한다면 단장은 구단의 '미래 가치' 그 자체를 결정하는 인물이다. 차명석 단장이 김범석이라는 어린 선수에게 던진 찬사는 단순한 덕담이나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다. 그것은 스카우팅 리포트의 행간을 읽고, 수많은 수치적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도출해 낸 '심리적 확신'의 최종 산물이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확신 뒤에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거대한 압박감이 도사리고 있다. 단장의 책상 위에는 수백억 원이 오가는 FA 계약서와 팀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를 내줘야 하는 트레이드 명단이 놓여 있다.
이 결정 하나에 구단의 운명은 물론, 수만 팬의 염원과 천문학적인 자본의 향방이 결정된다. 단장은 인간이기에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다양한 인지적 오류와 심리적 편향에 맞서, 매 순간 자신의 뇌와 치열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 고독한 베터(Better)인 셈이다.
'과거'의 망령에 발목 잡히지 않는 법: 매몰 비용의 오류
단장이 가장 경계해야 할 첫 번째 심리학적 덫은 바로 ‘매몰 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다. 이는 이미 지불되어 다시는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나 노력에 미련을 두어, 현재와 미래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그르치는 현상을 말한다. 야구 구단 운영에서 이는 매우 빈번하게 나타나는 심리적 기제다.
예를 들어, 과거에 높은 순위로 지명하여 큰 기대를 걸었거나, 막대한 계약금을 안겨주며 영입한 선수가 수년째 기대만큼의 성장을 보여주지 못할 때 단장은 깊은 고뇌에 빠진다. "지금까지 투자한 게 얼마인데, 조금만 더 기다리면 잠재력이 터지지 않을까?"라는 미련은 합리적 판단이 아닌, 과거의 손실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저항이다. 그러나 유능한 단장은 과거의 투자 실패를 뼈아프게 직시하고 이를 냉정하게 인정할 줄 안다.
현재의 객관적 지표가 '아니오'를 가리킬 때, 과거에 쏟아부은 매몰 비용을 과감히 절단하고 팀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대안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단장에게 요구되는 '냉정한 낙관주의'의 첫 번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위험한 유혹: 확증 편향
또한 단장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끊임없이 증명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인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과도 싸워야 한다. 특정 선수에 대해 "이 선수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되는 순간, 단장의 뇌는 그 선수의 장점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만을 선별적으로 수집하고 결점이나 위험 신호는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기 시작한다.
차명석 단장이 김범석 선수에 대해 가졌던 그 강력한 확신이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판단이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인지적 유연성이 필수적이다. 성공한 단장들은 자신의 직관을 믿으면서도, 그 직관이 확증 편향이라는 독에 오염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반대 의견을 경청하고 객관적인 지표와 대조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부정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구단의 미래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심리적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비난의 화살을 견뎌내는 리더십, '냉정한 낙관주의’
단장의 모든 결정은 종종 대중과 팬들의 거센 비난이라는 폭풍우에 직면한다.
팀의 미래를 위해 정든 프랜차이즈 스타를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하거나, 당장의 성적보다 육성에 집중하겠다는 기조를 발표할 때 단장은 순식간에 비난의 표적이 된다. 2회 연재에서 언급했던 감독의 '욕 먹을 용기'가 경기 중 내리는 전술적 판단에 관한 것이라면 단장이 가져야 할 용기는 구단의 10년 대계를 위해 현재의 비난을 묵묵히 감내하는 '인내의 심리학'에 가깝다. 팬들의 야유와 비난은 단장의 뇌에서 '손실 회피 경향(Loss Aversion)'을 자극하여 방어적이고 안정적인 선택을 내리도록 유혹한다
하지만 유능한 단장은 이러한 일시적인 위협에 흔들리지 않는다. 비난을 견디는 힘은 내가 설계한 미래가 반드시 현실이 될 것이라는 확신, 즉 '냉정한 낙관주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단장이 비난을 대신 맞으며 구단의 방향성을 굳건히 유지할 때, 비로소 선수단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경기에만 몰입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확보하게 된다
당신은 지금 당신 인생이라는 구단의 '유능한 단장'인가
우리는 야구장의 담장 밖에서도 매일같이 인생이라는 거대한 구단을 운영하는 단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 역시 과거에 쏟아부은 공부 시간이나 경력이 아까워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차마 놓지 못하고(매몰 비용), 내가 내린 선택이 무조건 정답이라고 믿으며 주변의 경고 신호를 무시하곤 한다(확증 편향). 단장처럼 산다는 것은, 현재 나의 가치와 상황을 차가운 숫자로 직시하는 '냉정함'을 유지하면서도, 내가 설계한 미래가 반드시 승리로 이어질 것이라는 '낙관'을 잃지 않는 것이다. 차명석 단장이 유망주의 미래를 구단의 대명사로 정의했듯, 우리도 우리 자신의 미래에 대해 당당하게 승부수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설령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주변의 비난이 따를지라도, 그것을 견뎌내고 끝내 결과로 증명하는 인내를 가져야 한다. 다이아몬드 밖에서 펼쳐지는 이 치열한 심리전에서 승리하는 법은 명확하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편견에 갇히지 않으며, 나만의 전략을 믿고 뚜벅뚜벅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당신의 인생을 우승으로 이끌 진정한 단장의 심리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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